
회사에서 규정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절차가 필요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하며, 때로는 법령과 지침, 노사관계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조직 안에는 규정보다 더 바꾸기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원래 다 이렇게 해왔어”라는 말로 대표되는 관행이다.
관행은 규정집에 적혀 있지 않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따른다. 공식 매뉴얼보다 전임자의 파일철에 더 많이 남아 있고, 새로 온 직원보다 오래 일한 직원이 더 정확히 알고 있다.
실무를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되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관련 규정이 있나요?”
“규정은 잘 모르겠는데, 전부터 그렇게 해왔어요.”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규정에 없으니 쉽게 바꾸고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명문화된 규정은 개정 절차라도 있다. 하지만 관행은 책임자가 없다. 근거도 모호하고 시작점도 불분명하다. 구전설화처럼 내려올 뿐이다. 그런데도 조직 안에서는 이미 하나의 ‘비공식 규칙’처럼 작동한다.
그렇다면 관행은 왜 이렇게 강력해질까.
첫째, 관행은 판단의 책임을 줄여준다.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곧 판단한다는 뜻이다.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
반면 “전부터 이렇게 해왔습니다”라는 말은 안전하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조직의 기존 방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행은 때로 가장 안전한 의사결정 방식이 된다.
둘째, 관행은 업무를 빠르게 만든다.
매번 처음부터 검토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유효한지,
더 나은 방식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기존 방식을 따르면 빠르다.
특히 바쁘고 인력이 부족한 조직일수록 “일단 하던 대로”는 매우 효율적인 선택지가 된다.
그래서 모든 관행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조직에는 축적된 경험이 필요하다.
문제는 관행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그 관행의 이유를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데도,
그것을 질문하는 일이 불편한 일이 되어버릴 때 발생한다.
셋째, 관행은 조직에서 살아남은 경험의 결과다.
오래 일한 직원이 변화를 싫어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태도는 개인의 성향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다.
누군가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가 일이 더 늘어난 경험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했다가 책임만 떠안은 경험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장면을 반복해서 봤을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조직 안에는 하나의 학습이 생긴다.
“괜히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이 문장은 단순한 소극성이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 된다.
그래서 조직문화의 문제를 특정 세대나 오래 근무한 직원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조직은 그동안 어떤 행동을 안전하게 만들었는가.’
‘어떤 행동을 보상했고, 어떤 행동을 불편하게 만들었는가.’
회의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의 의견이 먼저 결론이 된다면, 직원들은 침묵을 배운다.
혁신을 말하면서도 새로운 시도가 실패했을 때 책임만 묻는다면, 직원들은 전례를 따르는 법을 배운다.
자율을 말하면서도 작은 결정까지 보고를 요구한다면, 직원들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조직문화는 사내 게시판에 적힌 문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직문화는 구성원이 매일 경험하는 보상과 불이익의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다.
무엇을 하면 인정받는지, 무엇을 하면 손해 보는지에 대한 집단적 학습이 곧 문화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 다 이렇게 해왔어”라는 말은 단순한 관성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이 오랜 시간 구성원에게 가르쳐온 일하는 방식의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HR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역할은 비공식 규칙을 드러내는 것이다.
많은 관행은 말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지된다.
예를 들어 중요한 보고는 반드시 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
휴가를 길게 쓰면 눈치가 보이는 분위기,
신규 직원은 회의에서 먼저 의견을 내지 않는 분위기,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더 몰리는 구조 같은 것들이다.
이런 규칙들은 규정집에는 없다. 하지만 직원들은 안다.
그리고 실제 행동은 공식 규정보다 이런 비공식 규칙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HR이 조직문화를 다루려면 먼저 이런 그림자 규칙을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역할은 “왜”를 묻는 일을 허용하는 것이다.
조직문화 개선은 거창한 슬로건에서 시작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이렇게 하고 있나요?”
“지금도 이 방식이 필요한가요?”
“이 관행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누구에게 부담이 되나요?”
“이 방식을 계속 유지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나요?”
건강한 조직은 모든 것을 자주 바꾸는 조직이 아니다. 지금의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조직이다.
반대로 위험한 조직은 오래된 방식을 유지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대화가 멈추는 조직이다.
세 번째 역할은 관행을 구분하는 것이다.
관행은 무조건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어떤 관행은 조직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일 수 있다.
그런 관행은 오히려 공식화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어떤 관행은 더 이상 현재의 목적에 맞지 않거나, 특정 구성원에게만 부담을 주거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관행은 다시 검토해야 한다.
즉 HR의 역할은 모든 비공식 규칙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좋은 관행은 제도로 남기고, 이유를 잃어버린 관행은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조직문화 개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새로운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소통 워크숍, 리더십 교육, 세대공감 프로그램, 조직문화 캠페인 같은 것들이다.
물론 이런 활동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조직에서 아무도 적어두지 않았지만 모두가 따르고 있는 규칙을 살펴보는 일이다.
어쩌면 조직문화 개선의 시작은 새로운 구호를 만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방식 앞에서 한 번쯤 묻는 것.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하고 있죠?”
이 질문을 불편해하지 않는 조직. 그 질문에 “원래 그랬어”가 아니라
“한번 다시 봅시다”라고 답할 수 있는 조직. 조직문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