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6일 네팔 트리슐리강 일대를 거대한 물과 토사가 휩쓸고 지나갔다. 집과 다리가 무너지고 마을의 모습이 사라진 자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진흙 한가운데 서 있는 ‘청록색 집’이었다. 당시 집 안에 있던 가족은 위층으로 피신했고, 건물은 아래층 벽 일부가 뜯겨나갔음에도 골조를 유지했다. 이 모습은 SNS에서 ‘기적의 집’으로 퍼졌다. 하지만 이 집이 왜 버텼는지를 살펴보면 기적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설계다.
전문가들은 아직 정식 구조안전 진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건물은 암반 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고,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소유주 측 설명에 따르면 수십 년 전부터 강 주변이라는 지리적 위험을 고려해 기초를 깊게 만들고 튼튼한 철골과 재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아래층 벽이 무너지면서 오히려 급류가 건물 내부를 통과해 구조체에 가해지는 압력이 줄었을 가능성도 있다. 위치상 가장 강한 물살에서 조금 비켜나 있었다는 조건도 작용했다. 결국 이 모든 정보는 하나로 귀결된다. 이 집이 홍수가 발생한 뒤 갑자기 강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소에는 다른 집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더 깊은 기초, 더 많은 철근, 예상보다 튼튼한 구조는 평상시에는 비용일 뿐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동안에는 ‘왜 이렇게까지 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는 평소 보이지 않던 설계의 차이를 한순간에 드러낸다.
조직도 다르지 않다. 기업의 위기관리 체계, 내부통제, 데이터 백업, 안전관리, 대체 공급망, 권한 위임 구조는 평상시에는 비용처럼 보인다. 사고가 없으면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효율화를 명분으로 여유 인력을 줄이고, 승인 단계를 단순화하고, 재고와 백업을 최소화한다. 문제는 효율성을 극단까지 높인 조직은 충격을 흡수할 공간까지 함께 없애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시스템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시스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고가 일어나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를 조직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성경의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는 비유 역시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두 집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물이 불어나고, 바람이 부딪쳤을 때 비로소 무엇 위에 지었는지가 드러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문화가 좋은지, 내부통제가 작동하는지, 안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리더가 사람을 존중하는지는 홈페이지의 가치체계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위기관리의 핵심은 ‘사고 여부’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난다는 가정 아래 우리는 무엇 위에 조직을 세우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 조직에는 평상시에는 불필요해 보이지만 위기 때 조직을 지탱해 줄 ‘깊은 기초’가 있는가. 비용 절감을 위해 제거한 것 가운데 사실은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여유(safety margin)는 없었는가. 한 부서나 한 사람의 실패가 조직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구조가 설계되어 있는가. 우리는 이 관점에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네팔의 청록색 집이 남긴 장면은 기적 이상의 메시지를 남겼다. 좋은 설계의 가치는 평온할 때 잘 보이지 않는다. 조직이 무엇 위에 세워졌는지는 결국 흔들릴 때 드러난다.
위기를 이겨내는 것, 과연 구조만 잘 설계하면 끝나는 문제일까. 아무리 잘 설계된 시스템도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람의 판단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 다음 편에서는 재난 현장에 끝까지 남아 동료를 먼저 대피시킨 한 책임자의 모습을 통해, 위기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조건을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