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 직후 네팔 정부의 결정 가운데 논란이 된 것이 있었다. 여러 나라가 자국 구조대를 파견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네팔 정부는 초기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네팔군과 경찰 등 자국의 구조 역량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수많은 사람이 실종된 국가가 왜 더 많은 구조 인력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네팔 정부가 밝힌 배경에는 2015년 대지진의 경험이 있었다. 당시 세계 각국의 구조팀과 지원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현장에서는 조정과 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했다. 특히 어려운 상황을 이용한 착취와 SNS 소비에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네팔 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자국 군과 경찰이 익숙한 지형에서 초기 구조를 지휘하며, 외부 지원은 하나의 창구로 관리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며칠 뒤 네팔 정부는 터널 구조 전문가와 법의학 인력, DNA 분석, 특수장비와 드론 등 자국이 필요로 하는 전문 역량을 구체적으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인도·중국·한국 등의 전문팀도 구조와 신원 확인에 참여했다. 즉 외부 지원 자체를 거절했다기보다 현장의 필요에 따라 지원의 종류와 투입 방식을 선택한 것에 가까웠다. 이는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네팔 정부가 국민을 최우선에 두고 있음은 시신 처리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시신 처리 문제는 더 어려운 선택이었다. 대규모로 수습되는 시신을 모두 냉동 보관할 시설이 부족해지자 당국은 신원 미상의 시신에서 DNA를 채취하고 위치를 기록한 뒤 임시 매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신원이 확인되면 다시 발굴해 가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힌두교 장례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족과 시민들 사이에서는 강한 반발도 일어났다. 이 장면은 위기관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위기는 ‘옳은 것과 틀린 것’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네팔 참사에서는 생명을 최대한 빨리 구조해야 한고, 현장을 통제해야 한다. 유가족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공중보건과 신원확인 절차도 지켜야 한다. 내부 자원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땐 외부의 도움도 활용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이 모두가 중요하다. 문제는 자원과 시간이 제한된 순간에는 이 가치들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기관리의 본질은 가치의 나열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결정에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동시에 구성원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윤리를 지키는 것 역시 대부분의 기업이 중요하게 삼고 있는 가치다. 그런데 생산 일정과 안전이 충돌하면 무엇을 선택하는가. 매출과 고객 보호가 충돌하면 어느 쪽을 먼저 보는가. 빠른 사고 수습과 정확한 사실 공개가 충돌하면 어떤 원칙으로 판단하는가. 첨예하게 가치와 가치가 부딪히는 그 순간 기업이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드러난다.
만약 가치의 우선순위가 정해졌다면 이를 조직 전체에 공유되어야 하는 점도 중요하다. 위기가 시작된 뒤 경영진에게 하나하나 물어봐야 한다면 이미 늦다. 현장 담당자도 “이 상황에서는 무엇이 먼저인가”를 알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치와 전략의 정렬(alignment)이다.
이번 네팔 정부의 대응을 무조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초기 외국 구조팀 제한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고, 임시 매장 방식 역시 유족과 사회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오히려 이것이 중요한 대목이다. 옳은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 그것이 우선인지 이해관계자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까지 위기관리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가치체계는 홈페이지에 적혀 있을 때보다 서로 중요한 두 가지를 동시에 지킬 수 없을 때 더 정확하게 확인된다. 그래서 위기에 강한 조직은 모든 것을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고, 그것이 충돌하는 순간 어떤 순서로 판단해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 놓는다.
‘위기는 무엇을 드러내는가‘라는 주제로 세 가지 장면을 살펴 보았다. 세 장면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평소 무엇을 준비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맡기며,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는가. 좋은 설계, 책임지는 리더, 명확한 우선순위는 위기가 발생한 뒤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흔들리는 순간 비로소 드러날 뿐이다. 위기는 조직을 바꾸기 전에, 그 조직이 원래 무엇 위에 서 있었는지를 먼저 보여준다. 이번 글을 통해 우리가 서 있는 곳,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을 점검하며,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는 기업과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