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의지의 문제지. 의지를 좀 더 가지고 해봐.”
안그래도 자기 비난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반발심과 반항감을 일으키는 말이 또 있을까요? (설사 내 입장에선 틀린 말이 아닐지라도!)
특히, 하이퍼포머에게는 더더욱 치명적입니다.
다른 한 쪽 에서 다 알 수 없는 맥락과 현황을 공유하기도 전에,
성과 결과를 그 사람 자체와 동일 시 해버리는 이 말.
성과 미달성 = 개인의 의지 부족.

그런데 이 의지력(자제력)도 사실은 소모되는 비싼 에너지입니다.
1996년, 미국의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다이앤 타이스가 의지력과 관련한 실험을 했습니다.
'해결이 불가능한 퍼즐 과제 전에 먹는 음식이 의지력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에 대한 실험*이었죠.
(*로이 F. 바우마이스터 , 존 티어니의 저서, ‘의지력의 재발견’ )
초콜릿 쿠키 냄새가 가득한 방에 두 그룹이 퍼즐 문제를 풀기 전에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그룹에게 먹을 것을 주었어요.
한 그룹에게는 무,
한 그룹에게는 초콜릿 쿠키.
결과는 어땠을까요?
짐작하셨겠지만, 무를 먹은 그룹의 결과보다,
초콜릿 쿠키를 먹은 그룹이 해결 과제를 위해 더 많이 시도하고, 더 오랜 시간 몰두했습니다.
근데, 왜 그랬을까요?
연구를 진행한 두 학자는 이를 '자아의 고갈'로 설명했습니다.
방 안에 가득 찼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참으면서 기다리는 동안
의지력, 자제력이라는 에너지 자원을 상당히 소진한 거죠.
그러니까, ‘무 그룹’ 사람들의 자제력은 금방 한계점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의지력’ 혹은 ‘자기 통제력’은 측정하기 어려운 정신적 요소라
개인의 태도와 마인드셋으로 쉽게 치환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이마저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소모될 수 있다는 측면을 드러낸 연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해 평가할 때,
우리의 에너지 자원인 의지력이 어떤 환경에 놓였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난 의지박약이야’ 혹은 ‘넌 끈기가 없어’라고 가혹하게 단정짓지는 말자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 연구는 더 나아가
이런 의지력 사용이 ‘결정하기, 계획하기, 주도성 발휘’와 같은 자원도 깎아먹는다고 제시했고,
더 나아가서는 ‘포도당’과의 연결고리 가설로도 발전하여
몸과 마음이 얼마나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결국 의지력은 공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몰아서 하거나,
유혹 혹은 방해가 많은 환경에서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는 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루 내내 사소한 승인·답변 요청이 흩어져 오는 상황,
메신저와 데스크탑에서 탭/알림이 많은 책상에서 몰입이 필요한 기획서를 작성하는 일,
점심 시간전, 저녁 퇴근 전 갑작스러운 업무 요청,
거기에 더해 ‘휴가’ 사용이 ‘의지 부족’으로 보일까 두려워하는 업무 환경이라면
개인의 의지력이나 제어력이 이미 많이 소진되어 있는 상황일 겁니다.
우리는 이미 목표 달성과 과업 수행을 위해
아주 많은 신체적, 정신적 자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성원이 이 신체적, 정신적 자원을 사용할 때,
동료로서, 리더로서, 팀원으로서, 인담자로서
우리 팀과 그 사람의 의지력 자원을 최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관찰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그런 환경을 조성하려고 고민하고 있는지 생각볼만한 지점이지 않을까요.
*물론, 1990–2000년대 ‘자아 고갈(ego depletion)’ 연구는 큰 영향이 있었지만,
후속 대규모 재현에서 여러 혼합된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다만 핵심 메시지 ‘의지력은 환경·자원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조직 설계 관점에서 여전히 실용적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더 몰아붙이기”보다 방해를 덜고, 자원을 채우고, 결정을 구조화하는 접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가정은 언어를 통해 대부분 드러납니다.
“의지를 좀 더 가져봐.” 라고 말하기 보다
“지금 자원이 많이 새고 있어 보여. 줄일 수 있는 방해요인과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로,
“넌 끈기가 없어.” 라고 말하기 보다
“이번 스프린트에서 몰입에 방해가 된 환경 신호가 뭐였는지 같이 찾아보자.”
라고 대화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을 입체적이고, 역동적이고, 다면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리고 구성원의 가능성과 역량의 발현을 정말 원한다면,
관찰과 관심, 지원과 지지는 나와 그가 ‘연결’되어야만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