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장애인을 돕는 기술을 만드는 한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것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눈앞을 비추면 인공지능이 그 장면을 말로 설명해 주는 앱입니다. 명함과 책의 글자를 읽어 주고, 전자레인지 버튼과 택배 송장을 읽어 줍니다. 앞에 선 사람이 웃는지 찡그리는지, 지폐가 얼마짜리인지도 알려 줍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리모컨 하나를 찾으려면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사람이, 이제는 카메라를 한 번 비춰 스스로 찾을 수 있습니다.
시작은 2018년 초였습니다. 함께 일하던 개발자의 친구가 갑자기 시력을 잃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세계가 하루아침에 어두워지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무엇을 만들면 이런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오래 고민한 끝에 다다른 답은, 시각장애인이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눈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들은 그것을 또 하나의 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회사에서 방법이 바뀌는 결정적 순간은 사용자를 지켜보는 데서 왔습니다. 시각 장애인의 앞에 선 사람의 나이와 표정을 읽어 주는 얼굴 인식 기능을 넣었더니, 사용자들이 자꾸 카메라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자기 얼굴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 기능은 바깥세상을 읽는 도구가 아니라 처음으로 자신을 마주하는 창이었습니다. 회사는 이 모습을 보고 카메라를 반전해 자기 얼굴도 확인할 수 있게 기능을 고쳤습니다. 무엇을 만들지는 그들의 계획이 아니라 사용자의 손끝이 정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특정 앱을 만드는 회사라고도, 어떤 기술을 파는 회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붙든 것은 시각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세상이었습니다. 제품의 형태는 바뀔 수 있고, 기술도 갈아 끼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다는 사실만은 그 어떤 자리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중심축이었습니다.
돕는 것과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은 다릅니다. 눈을 대신 봐 주는 서비스는 친절하지만 사용자를 계속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스스로 하게 하는 서비스는 처음에는 어렵지만 사용자를 더 자유롭게 합니다. 이 회사가 붙든 본질은 뒤쪽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능 하나를 넣을지 뺄지 정할 때마다 같은 질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건 사용자를 더 의존하게 만드는가, 더 자립하게 만드는가?
본질을 이렇게 명확히 세워 두자, 나머지는 놀랄 만큼 과감하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앱도, 기술도, 수익 구조도, 언어도 전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간다는 그 하나만은 어느 자리에서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판단 기준은 결국 한 가지 입니다. 이걸 접어도 우리가 여전히 우리인가?
학습민첩성을 이야기 할 때 가장 중요한 키우드는 fast와 flexible 입니다. 빠르고 유연하게 변화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 또는 기업이 갖는 놀라운 특징은, 흔들리지 않는 본질을 명확히 갖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들이, 이런 기업이야말로 과감히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ference
임창현(2026). 실패를 설계하는 사람들, 창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