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담당자 일기] 면접관이라는 자리의 무게](https://cdn.offpiste.ai/images/articles/1666/cover/c896371e-02be-4d9f-a10a-992f3aaaab7b_오프피스트 사진(채용담당자 마인드셋)_260617.jpg)
오늘 Sales Team에 국내 영업 담당자를 채용하는 면접이 있었다.
나와 함께 면접에 참여한 팀원은 면접이 끝나고 사무실로 이동하는 복도에서 후보자에 대해 이런저런 본인의 평가 의견을 늘어놓았다. 나름 열심히 면접관으로 임했다는 어필 같기도 했다. 그 시니어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의견이 많았다.
'면접 준비를 제대로 안 하신 것 같더라구요'
'아까 그 질문에 그런 답변은 좀 어이 없지 않았어요?'
'우리 회사와 성향이 안 맞을 것 같던데요?'
'본인 전 직장 에피소드를 TMI로 얘기하셔서 당황스러웠어요. 하하하' 등.
그러한 평을 하는 동안 그 팀원은 매우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어딘가 불편했다.
참고로 후보자의 나이는 50이 넘었고, 면접관인 우리 팀원은 20대였다.
드라마로 제작되어 더 많이 알려진 웹툰 명작 '미생'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상사(商社) 대기업에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주인공 '장그래'가 그 회사에 수주를 받기 위해 방문한 중소기업 임원과의 미팅 후 본인의 상사에게 그 임원이 안쓰럽다는 소감을 전했다가, 상사인 '오차장'에게 쓴소리를 듣는 장면이 있다.



*이미지 출처 : 웹툰 「미생」 중 (윤태호 작가)
팀원은 아버지뻘 나이가 되는 후보자도 평가할 수 있는 매우 높은(?) 자리에 본인이 있음을 확인하며 만족감을 얻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면접관이라는 역할이 주는 우월감을 즐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내 마음의 불편함이 단순히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해서만은 아니었다. 나이가 적어도 회사에서 본인의 역할이 있다면 응당 해야할 일이다. 나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주니어 시절이 있었고, 팀원에게 투영된 과거의 내 모습이 뒤섞여 더 불편했던지도 모르겠다.
이슬람 식문화에는 '할랄푸드(Halal Food)'라는 것이 있다. 내가 대학생 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우리 학교에 유학 온 후배가 있어 일찌감치 '할랄'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이슬람인들은 종교의 율법에 의해 고기를 먹을 때 할랄 인증이 된 음식만 먹는데, 음식 재료로서 고기를 도축할 때 도축자가 그 동물에게 일종의 기도 의식을 치른 것을 의미한다. '내가 너를 죽이지만, 그것은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도축하는 과정도 동물이 고통을 가장 적게 느끼는 방법을 택한다.
보고싶다, 모하메드 셰이크(Mohamed Shaikh)! 잘 지내겠지?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국영기업에서 한국 상대 비즈니스를 하고 있을 터이다. 어느날 이슬람 문화를 소개해 주겠다며 나를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으로 초대해 도네르 케밥을 맛보게 하고 양고기 요리를 대접했다. 그 낯설고도 내 입맛의 지평을 넓혀준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본인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유학생이었을텐데, 지금 생각하니 더 고맙다.
아! 다시 채용 면접으로 돌아와서, 나는 면접관은 할랄푸드를 만드는 그 도축자의 마음가짐과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 제가 당신을 평가하는 것은 당신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 회사에서 제가 그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라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오늘 나와 함께 면접관으로 참여한 팀원의 모습은 달랐을 것이다. 할랄푸드의 그 도축자는 본인 손으로 동물의 명을 달리할 때 결코 신나지 않을 것이다. 숙연할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본인 앞의 생명을 배려할 것이다.
HR 업무 중에 채용은 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입사 전에는 나도 한 명의 입사지원자로서 면접 자리에 앉아 면접관에게 최대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며, 다수의 경우에는 회사에 대해 '을'의 입장에 처해진다. 하지만 합격 후 내가 채용담당자가 되는 순간 면접관 자리에 앉아서 누군가를 평가한다. '갑'으로 입장이 역전되는 것이다. 그 '갑'이 되었음에 너무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권력을 가졌을 때 좀 더 본성이 나온다. 더 정확히는, 원래 가지고 있던 태도가 확대되어 드러난다. 사람을 존중하던 사람은 더 존중하게 되고, 사람을 서열로 보던 사람은 더 쉽게 타인을 내려다본다. 채용 면접은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자리 중 하나다.
이것은 채용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정기 평가 시에도 마찬가지다. 경력이 쌓이고, 조직에서 성과를 인정받다 보면 언젠가 리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면 리더는 구성원들을 평가도 해야 한다. 물론 평가라는 것이 조직의 구성원들을 회사의 경영 방향에 정렬시키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팀장이 팀원들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수하여 평가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가를 해야 하는 위치에 있어서 하는 것이다. 그 평가권으로 권위를 과시하는 리더들이 여전히 있다. 회의 중에 '너 이렇게 하면 연말에 좋은 평가 못 줘'라고 면박주고 윽박지르던 팀장이 나의 회사생활에도 여럿 있었다. 내가 '앗! 큰일났다' 할 줄 알았나 보다. 그런 방법이 통하는 사람도 있지만(그런 언급을 하는 사람이 보통 본인의 평가에 목숨 건다), 나는 내 일의 의미와 조직에서 나의 쓰임(존재감)이 동기를 주는 사람이었는데, 그저 '상사에게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받은 것 같아 오히려 일할 맛이 떨어졌다. 이렇게 ‘조직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에 대해서만도 한참이나 이야기할 거리가 있지만, 다음으로 미뤄두고 다시 채용 주제로 돌아가자.
사람의 마음가짐만으로 좋은 면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권력에 취할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감(感)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조직은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시스템을 만든다. 면접관이 권력자가 되지 않게 하려면 면접을 구조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 면접마다 후보자로부터 반드시 검증하고 판단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사전 정리를 해 두면 도움이 된다. 실무면접, 컬쳐핏면접, 임원면접 등 각 단계별로 우리 회사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지, 실무면접에서는 각 직무별로도 어떤 역량과 성과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각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며, 어떤 답에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주어야 할지 프레임을 짜두면 좋다. 면접 질문 라이브러리(Interview Question Library)를 만들어 두자는 것이다.
아래는 내가 다녔던 회사의 한 사례다.
신입사원 공채 시 임원면접에서 후보자의 ‘조직관’에 대한 질문과 답변 예시이다.
[질문] 최근 많은 기업에서 내부 문제를 외부에 게시하고 고발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변]
높은 점수 : 외부 고발에 앞서 회사와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며, 외부 고발에 의존하기 보다는 조직 내부적으로 먼저 합리적 개선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함.
낮은 점수 : 궁극적으로 회사는 조직에 문제가 없도록 만들고 직원들이 더 좋은 조건에서 근무토록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회사 자체적으로는 개선하기 어려우므로 외부에 공론화 하여 해결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함.
해당 질문에 대한 답변의 선호도는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 본 예시의 반대가 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답변이 모범 답변이 될 수도 있다. 그 회사 문화에 적합한 모범 답변과 비선호 답변의 방향을 정리해 두어 누가 면접을 보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채용 면접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 중에 하나가 질문과 답변은 동일한데 A면접관이 들어가면 합격이고, B면접관이 들어가면 불합격이 되는 사례이다. HR은 조직이 개인기에 의해 돌아가지 않고 시스템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면접 질문 라이브러리는 지원자 평가 수준을 상향 평준화 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면접관 스스로를 절제하게 만드는 장치다. 여기에 면접관 교육이나 면접 후 면접관 토론(Calibration) 프로세스까지 운영하면 면접 질문 라이브러리는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오늘 일기도 두서가 없다. 채용 면접으로 시작해서 웹툰 얘기에, 할랄에, 평가까지. 난 나 자신에게 한 가지 마음가짐을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 거만해지지 말고, 남들보다 우월하다 생각말고, 큰 권한만큼 크게 책임지며, 그저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여 조직 성과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HR 담당자로서 그것을 업무로 확대 적용해 보자면 현업 리더들도 그렇게 만들어야 하겠다.
회사에서 면접관으로 임하게 되면 많은 입사지원자들을 만난다. 그들 중 누군가는 우리 회사 동료가 되고, 누군가는 다른 회사에서 더 잘 어울리는 자리를 찾을 것이다. 탈락한 사람이 부족해서 탈락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와 덜 어울렸을 뿐이다. 면접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을 고른다는 1차원적 목적 실행 이전에,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다. 할랄푸드의 도축자가 생명을 대하듯, 면접관 역시 누군가의 커리어 앞에서 조금은 숙연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밤이 깊었다. 내일 출근해서 할 일을 생각을 좀 하다가 자야겠다. 우리 회사의 면접 질문 라이브러리 제작을 시작하는 것과 오늘 일에 대해 팀원에게 피드백을 주는 일. 그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평가하는 자리에 오래 앉게 될 사람이니까.
※ 본 글은 생성형 AI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