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실 화면에는 CEO와 임원진의 얼굴이 가득했다.
"3~6개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드리는 최종 보고입니다."
나는 그들 앞에 조직 구조도, 성과관리 시스템, 리더십 로드맵, 변화관리 계획안을 펼쳐 놓았다. 모두 최고의 설계였다. 컨설팅 교과서에 나올 법한 프레임, 최신 해외 사례, 우리 회사의 맥락에 맞춘 커스터마이징, 그런데 6개월이 지난 후 CEO의 전화가 울렸다.
"코치님, 이 구조... 현장에서 안 맞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이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설계한 것은 조직이 아니라 조직 형태였다는 것을, 구조도는 있었지만 책임이 없었다. 제도는 있었지만 그 제도가 실제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지 없었다. 성과관리 시스템은 있었지만 무엇을 책임지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임원들은 현장이 이해를 못 한다고 했고, 현장은 경영진이 우리를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문제는 현장의 이해도도, 경영진의 통찰력도 아니었다. 설계 자체에 사람이 서 있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조직도를 그리기 전에, 먼저 이 질문을 던졌다.
l 이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결과는 무엇인가?
l 그 결과를 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의 단위는 무엇인가?
l 그 일을 책임지는 사람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조직도를 보면 보인다. 일을 보면 사람의 역할이 정의된다. 그런데 내가 실수했던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조직이 설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결심의 문제였다.
한 중소기업의 CFO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조직도에 있는 자리 중에 그 사람이 아니면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자리가 3개 있어요. 근데 그 3명은 다 오래된 멤버거든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좋은 조직 설계는 어떤 구조가 효율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가 무엇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조직을 설계한다는 건 미래를 그리는 게 아니다. 현재의 편함을 버리는 것이다.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때로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 CEO는 결국 그 3명과 대화했다. 그리고 새로운 역할을 제시했다. 누군가는 받아들였고, 누군가는 떠났다. 그 이후 조직은 바뀌었다. 구조도는 그 다음이었다.
최근 AI 도입을 두고 기업들이 묻는 질문이 바뀌고 있다.
작년엔 AI 도구를 뭘 써야 해였다. 올해는 AI를 도입하는데 우리 조직은 준비가 됐나가 됐다.
이 질문 자체가 발전이다. 왜냐하면 기업들이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술은 변하지만, 조직 설계의 본질은 같다는 것을, AI가 업무 처리 속도를 높인다고 해서 조직이 자동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역할과 책임이 불명확한 조직은 AI로 인해 더 혼란스러워진다. 목표와 성과 기준이 약한 조직은 AI에 의존하다가 기회를 놓친다. 그래서 내가 요즘 기업 리더들에게 드리는 조언은 이것이다.
AI를 도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지 마세요. 그 대신 이것을 질문해보세요.
1. 우리 조직에서 각 직무의 책임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는가?
2. 성과의 기준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정의되어 있는가?
3. 그 기준에 따라 자리를 배치할 결심이 있는가?
10년간 나는 좋은 조직 설계를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구성원들의 기대는 충만했지만, 컨설팅 보고서는 기업 안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통과하며 나는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왜 컨설팅을 하는가?’ 그 질문의 답은 명확했다. 컨설팅 보고서가 기업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도록 리더를 설득하고, 구성원을 코칭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 깨달음이 나를 외부 컨설턴트에서 내부 코칭 파트너로 전환시켰다. 결과는 달라졌다. CEO의 결심이 있고, 리더의 실행이 따르고, 구성원들이 실제로 변하였다. 그 때 비로소 나는 알았다. 조직설계는 기술이 아니라 결단이라는 것을 그 성과들이 조금씩 성과가 보여지고 구성원들이 변화되는 과정이 조직개발이 설계되는 근거가 되었다.
설계는 기술이지만, 변화는 결단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그 결단 위에 세워지는 AI 시대의 조직설계 5가지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왜냐하면 설계 없이는 결단이 허공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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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 조직개발·성과관리 컨설턴트
중소중견기업의조직개발, 성과관리, 인재육성시스템구축에 15년간참여했습니다. 특히 장기프로젝트를 통해조직설계의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리더의 결심과 문화변화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기업들이 설계를 넘어 결단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