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RD 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의 필요성을 평가하기가 까다로워서? 구성원의 만족도를 끌어올려야 해서? 아니면 실제 업무 성과로 이어졌는지 측정할 명확한 지표가 없기 때문에?
HR 업무를 시작한 지 채 1년이 안 된 주니어로서, 최근 첫 사내 워크숍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조금 달랐다. HRD가 진짜 어려운 이유는, 기획자의 '선한 의도'가 현장에서 전혀 다른 온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스타트업에서 HR 관련 업무라면 가리지 않고 부딪히고 있는 주니어다.
얼마 전, 긍정적인 의사소통과 협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생애 첫 사내 조직 문화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도구로는 애니어그램, TCI, 버크만 등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첫 프로그램인 만큼 구성원들이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DISC 진단’을 선택했다. 처음으로 외부 강사를 섭외하는 일이다 보니 사내에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전혀 없었다.
다행히 강사님을 확정한 후에는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단순히 정해진 커리큘럼을 전달받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조직의 특성에 맞게 내용을 조금씩 커스터마이징하며 소통을 이어갔다. 담당자가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일수록, 평범했던 교육 내용이 우리 회사만의 색깔을 띤 재미있고 풍성한 시간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묘한 뿌듯함도 느꼈다.
만족도 조사 결과는 5점 만점에 4.4점. 첫 행사 치고는 꽤 성공적인 숫자였다. 진짜 문제는,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고 안도하던 그 직후에 터졌다.
"인사팀은 사측이잖아."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일 것 같다. 근로자인 동시에 업무상 기밀 사항을 취급하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관여해야 하는 인사팀의 모호한 경계선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DISC 진단 결과의 활용 방안'이었다. 사측(경영진)은 향후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개개인의 결과 및 활동지 내용을 전사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하기를 원했다. 반면, 구성원들은 이 결과가 개인의 성향을 단편적으로 평가하거나 향후 인사 평가에서 불리한 자료로 악용될까 우려했다.
재미있는 건, 구성원들의 이런 진짜 속마음이 공식적인 채널이 아닌, 인사팀 막내인 나에게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속속들이 전해졌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 교육을 기획한 목적은 선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더 건강하게 소통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교육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그 이면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을 마냥 탓할 수는 없었다. 과거의 크고 작은 경험들이 쌓여 만든 방어 기제라는 것을 나 역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길게 고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양측의 입장을 조율할 중간 지점을 찾아 실행에 옮겼다.
첫째, 공유의 범위를 나눴다. 기초적인 1차 검사 결과 정도만 전사에 공유하고, 민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지와 심층 결과는 '전사'가 아닌 '팀 내'에서만 자체적으로 공유하도록 장려했다.
둘째, 텍스트가 아닌 '태도'로 소통했다. 메신저에 딱딱한 한두 줄의 공지를 띄우는 것만으로는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구성원들의 불만을 귀 기울여 듣고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그들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이 교육의 진짜 목적을 거듭 설명했다.
셋째, 명확한 가이드를 제공했다. 경영진을 포함한 전체 구성원이 모여 있는 전사 공유방에, 이 진단 결과를 어떻게 활용해야 바람직한지, 절대 해서는 안 될 유의사항은 무엇인지(결과를 바탕으로 단편적인 선입견 갖기 금지 등)를 담은 '1 Page 활용 가이드'를 직접 제작해 배포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는 HR의 진짜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HR은 그럴듯한 제도를 만들고 행사를 기획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제도와 사람, 사측과 구성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을 좁히고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겠구나 생각했다.
스타트업의 HR 주니어로 일한다는 것은 매일같이 정해진 매뉴얼이 없는 길을 걷는 것 같다. 누군가 닦아놓은 안전한 슬로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오프피스트 3기에 합류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답이 없는 환경 속에서, 나만의 궤도를 만들며 현장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돌파하는 힘을 기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완벽한 제도를 꿈꾸기보다(무엇보다도 그런 건 있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구성원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여는 연습을 하며 나만의 궤적을 그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