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을 잘해 성과를 내고 조직을 이끌어갈 잠재력을 증명한 사람에게
어느 순간 ‘리더’라는 기회가 주어진다.
나 역시 그랬다. 팀원으로 일할 때는 비교적 명확했다.
매니저와 합을 맞추고,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피드백을 받고, 다음에는 조금 더 잘하면 됐다.
내가 잘하면 내 성과가 좋아졌다.
그런데 리더의 자리에 서는 순간부터 게임의 규칙이 달라졌다.
방향을 직접 설정해야 했고,
본사의 기대와 한국 조직의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무엇보다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페이스를 조율해야 했다.
누군가는 빨리 가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 누군가는 왜 가야 하는지부터 납득하고 싶어 한다.
그 사이에서 리더는 혼자 먼저 답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돌아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일을 얼마나 잘했는가’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 찾아온다. 나는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HR로 수많은 리더를 만나고, 조직의 다양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완벽한 리더는 없다는 것.
성과가 뛰어난 리더가 반드시 좋은 리더인 것도 아니었고,
사람을 잘 챙기는 리더가 언제나 좋은 성과를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리더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 강했고,
어떤 리더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 강했다.
어떤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누구보다 단단했고,
어떤 리더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구성원의 성장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런데도 리더가 된 사람들은 끊임없이
100점짜리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KPI만 잘 관리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역량 평가, 360도 다면평가, 구성원 몰입도, 조직문화 지표….
리더에게는 수많은 성적표가 따라온다.
나 역시 그 성적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좋은 리더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조금 더 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리더는 어느새 자신을 끊임없이 채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100점짜리 리더가 되는 것보다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계속 성장하는 리더가 더 좋은 리더가 아닐까.
팀원일 때는 나의 성과가 중요했다.
하지만 리더가 된 순간부터 성적표의 주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해냈는가’에서 ‘내가 함께한 사람들이 무엇을 해낼 수 있게 되었는가’로.
이 변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성과를 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그렇다.
문제가 보이면 해결하고 싶고, 답을 알고 있으면 알려주고 싶고, 속도가 느리면 직접 끌고 가고 싶어진다.
나도 그랬다. 빨리 해결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고, 좋은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빨리 답을 주면 구성원은 자신의 답을 찾을 기회를 잃는다.
리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조직은 편해 보이지만 오래 성장하기는 어렵다.
리더가 조금 뒤로 물러났을 때 비로소 구성원이 앞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의 성적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가 아니라
내가 없어도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가로 다시 쓰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의식적으로 연습하는 것은 질문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대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보기에는 이 방법이 좋은데요.” 대신 “가능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정답을 알고 있어도 한 번 더 기다려본다.
물론 쉽지는 않다. 내 기준으로 보면 너무 느리고,
이미 알고 있는 답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조급함과 싸운다. 하지만 기다림은 방임이 아니다.
상대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일이다.
질문은 상대에게 생각할 공간을 주고, 기다림은 그 사람이 성장할 시간을 준다.
그렇게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
나는 그것이 리더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원하는 리더는 항상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어려운 순간에 찾아갔을 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내가 흔들릴 때 함께 방향을 찾아주는 사람.
잘못했을 때는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나를 사람으로서 존중해주는 사람.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믿어주고 때로는 내가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
그런 리더에게 우리는 기대게 된다.
나는 ‘인정받는 리더’보다 ‘기대고 싶은 리더’가 되고 싶다.
지금은 AI와 첨단 시스템이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답을 내놓는 시대다.
퇴사를 예측하고, 성과를 분석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그럴수록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은 오히려 숫자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데이터 이면에 있는 사람의 맥락. 같은 숫자 80점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최선을 다한 80점이고, 누군가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80점일 수 있다.
같은 ‘퇴사’라는 결과에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리더에게는 차가운 데이터를 읽는 능력만큼 사람의 마음의 온도를 읽는 힘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Warmness, 온기라고 부르고 싶다.
온기가 있다는 것은 무조건 다정하다는 뜻이 아니다.
원칙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성과에 눈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원칙을 지키되 그 원칙을 적용받는 사람이 어떤 마음과 맥락에 서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리더의 자리에 올라가면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순간이 찾아온다.
모든 이야기를 구성원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모든 고민을 위에 그대로 가져갈 수도 없다.
때로는 혼자 결정하고 혼자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 외로움을 ‘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책임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외로움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지켜야 할 원칙을 분명히 하고,
그 안에서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온기를 잃지 않는 것.
내 안의 냉철함은 제도와 기준을 지키는 힘으로 쓰고, 내 안의 선한 마음은 사람과 조직에 온기를 더하는 에너지로 쓰는 것.
어쩌면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리더가 나이 들어가며 배워야 할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인정받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성과를 만들고, 능력을 증명하고, 조직에서 신뢰받는 사람.
물론 지금도 그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커리어를 돌아보고 리더십을 다시 공부하면서 조금 다른 욕심이 생겼다.
언젠가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이 나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해준다면 좋겠다.
“그 사람과 일하면서 나는 조금 더 나다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힘든 순간에는 “그 사람에게 가면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다.” 그 정도의 사람이면 좋겠다.
완벽한 리더가 아니라 기대고 싶은 리더.
모든 답을 주는 리더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리더.
강하지만 차갑지 않고, 따뜻하지만 무르지 않은 사람.
그렇게 일과 사람 사이에 온기를 더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
어쩌면 리더십의 마지막 목적은 사람을 나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없어도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
나는 이제 그런 리더를 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