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봐, 해봤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이다. 어려운 일을 앞에 놓고 주저하는 회사 간부들을 질책할 때 주로 썼다고 한다. 그는 모두들 안된다고 포기하는 어려운 일에 솔선수범해서 나섰고, 잘 안되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찾아 해결하는 근성의 소유자였다. 이런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일단 실행해보고 판단하라는 의미를 담아 이 말을 자주 했다고 본다.
고 정주영 회장의 이 어록은 리더의 실행력을 신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바이블처럼 떠받들여졌다. 이들에게 리더란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이고, 미적미적거리는 꼴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행태였다. 효과적인 리더십은 전략, 실행, 사람이라는 세가지 요인을 균형적으로 갖추는 것이지만, 이들에게는 일단 빨리 뭐라도 해놓고 보는 실행력만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과연 그럴까? 고 정주영 회장의 "이봐, 해봤어?" 정신 하나로 지금 이 시대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일단 서로 상반되는 두 조직의 사례를 살펴보자.
한 사업부가 신규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고객의 요구는 어느 정도 확인됐고, 경쟁사도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을 움직임을 보였다. 시장 진입 시점을 놓치지 않으려면 빠른 판단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담당 리더는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시장 데이터를 조금 더 살펴봅시다.”
“실패 가능성을 다시 검토해 주세요.”
“관련 부서의 의견을 모두 받은 뒤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회의는 반복됐고 보고서는 점점 두꺼워졌다. 리더가 새로운 질문을 할 때마다 추가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리더는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구성원들은 리더가 결정을 미룬다고 느꼈다. 미적대는 동안 경쟁사는 먼저 시장에 들어갔다. 조직에는 체념과 원망만 남았다.
한 조직에서 구성원 몰입도 조사 결과가 전사 평균보다 낮게 나왔다. 결과를 보고받은 리더는 그 자리에서 대책을 쏟아냈다.
“보고 단계를 바로 줄입시다.”
“다음 주부터 매주 타운홀 미팅을 하죠.”
“팀의 R&R과 평가 방식도 함께 손보는 게 좋겠어요.”
문제를 발견하자마자 움직였다는 점에서 리더는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정작 구성원들이 왜 몰입하지 못하는지는 충분히 듣지 않았다. 과도한 업무량, 불분명한 역할, 성장 기회의 부족, 리더에 대한 불신 가운데 무엇이 핵심 원인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여러 제도가 한꺼번에 바뀌면서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회의는 늘었고 새로운 보고까지 생겼다. 몇 달이 지나자 상당수 조치는 흐지부지 중단됐다. 구성원들은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잖아" 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실행력이 부족한 리더의 모습은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정을 미루고, 계속해서 추가 정보를 요구하며, 실패 가능성이 사라질 때까지 출발하지 않는다. 완벽한 계획을 매만지다가 정작 적절한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신중함이 길어지면 우유부단함이 되고, 치밀한 분석은 때론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변한다.
실행력의 남용은 조금 다르다. 강한 추진력이나 결단력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원인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해법부터 제시하고, 긴급성을 강조하며 구성원을 몰아붙인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답답한 반대 의견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여러 과제를 동시에 시작한 뒤 조직이 감당하지 못하면 다시 새로운 지시를 내린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사자성어다. 모든 일에 있어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큼이나 좋지 않으니 '중용(中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리더십 역량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자신 있는 역량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행동 지향성도 지나치면 조급함과 독단으로 흐를 수 있다. 속도에 대한 집착은 재작업과 피로를 남긴다. 리더십의 강점은 크기보다 조절 능력에서 완성된다.
얼마나 빨리 움직였는지를 가지고만 실행력을 평가하면 안된다. 어디를 향해 움직였는지, 언제 출발했는지, 그 과정에서 누구를 참여시켰는지, 결과를 어떻게 확인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성숙한 실행력에는 방향, 결단, 학습이 함께 필요하다. 방향을 정하고, 적절한 순간에 움직이며, 결과를 보고 다시 조정하는 과정 전체가 실행력이다.
먼저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지,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순위가 없는 조직에서는 모든 일이 급해지고, 구성원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음은 결단이다. 경영 현장에서 모든 정보가 완벽하게 갖춰지는 순간은 거의 없다. 어느 시점에는 남아 있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출발해야 한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선택지가 줄어드는 사안도 많다. 신중하게 생각할 시간과 결정을 내려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
마지막은 학습이다. 실행의 결과를 확인하고 판단을 수정해야 한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무엇을 잘못 보았는지, 어떤 가정이 맞지 않았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꿀 것인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처음 세운 계획을 끝까지 고수하는 태도는 강인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변화한 현실을 외면하는 외골수일 가능성이 더 크다.

모든 사안을 같은 무게로 다루면 조직은 느려진다. 반대로 모든 사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려 하면 큰 실수를 피하기 어렵다.
조직 개편, 대규모 투자, 핵심 인사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에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이 크고 여러 사람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회의 방식 개선,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시범 서비스, 단기 프로젝트의 운영 방식처럼 수정이 가능한 사안은 빠르게 시험해 볼 수 있다. 시행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거나 다른 방법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
리더는 본인이 내린 결정이 되돌릴 수 있는 것인지, 실패했을 때 회복 비용은 어는 정도인지를 자문해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이 의사결정의 속도를 정해 준다. 실행력이 뛰어난 리더는 상황과 결정의 무게에 따라 속도를 달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정보를 더 모으면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그러나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 추가 정보는 판단의 질을 높이기보다 결정을 미루는 명분이 되어버린다.
추가 정보가 선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 그렇다면 기다릴 가치가 있다. 하지만 어떤 정보가 추가되더라도 선택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면 바로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
완벽한 데이터가 확보되어야 탁월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론에 영향을 미칠 핵심 정보를 골라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분석의 양보다 분석의 초점이 실행의 품질을 좌우한다.
실행력 부족과 과잉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작은 실험이다. 위험을 완전히 없애려 노력하는 대신, 감당 가능한 크기로 리스크를 분할하고 그 안에서 학습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조직 전체의 제도를 한 번에 바꾸기보다 일부 조직에서 먼저 시험해 볼 수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전면 출시하기 전에 특정 고객군을 대상으로 검증할 수도 있다. 기간과 범위를 제한하고, 성공 여부를 판단할 기준을 미리 정해 두면 위험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작은 실험은 신중함과 행동을 함께 담아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논쟁만 이어가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고, 검증되지 않은 해법을 전면적으로 밀어붙이는 위험도 피할 수 있다. 회의실에서 세운 가정은 작은 실험 이후 현장의 반응을 통해 구체적인 정보로 바뀐다.
행동 지향성이 높은 리더는 자신이 앞장서면 조직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구성원이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견을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실행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리더는 적어도 세 가지를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왜 지금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는 무엇인가. 누가 어떤 역할과 책임을 맡는가.
의견을 듣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의 완전한 동의를 기다리면 결정이 늦어진다. 반대로 필요한 논의를 건너뛰면 실행 과정에서 저항이 발생하고 심지어 재작업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리더는 참여해야 할 사람을 정하고, 핵심 쟁점을 좁히며, 논의를 끝낼 시점을 제시해야 한다.
지속적인 실행력은 여러 사람이 목적을 공유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일 때 만들어진다. 리더 개인의 속도보다 조직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

리더의 실행력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과 닮았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스티어링휠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도로의 상태를 살피고, 방향을 정하며, 필요할 때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출발을 계속 미루면 기회를 놓치고, 앞을 살피지 않은 채 질주하면 사고가 난다. 급가속과 급정거를 반복하면 동승자들은 멀미가 나고 차도 금방 망가진다.
생각은 행동의 방향을 세워 주며, 행동은 생각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두 과정이 연결될 때 조직은 시행착오를 줄이면서도 멈추지 않을 수 있다. 실행력이 뛰어난 리더는 상황에 맞는 속도를 선택한다. 충분히 생각하면서도 결정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리더, 과감하게 움직인 뒤에는 결과를 살피고 방향을 조정하는 리더가 실행력이 강한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