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이도가 하늘나라로 돌아가기 몇 개월 전에 국무총리 황희와의 아름다웠던(美) 동행을 마무리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 이도에게 황희는 멘토였습니다. 그는 이도가 왕이 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이도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멘토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도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국가경영전략을 짰습니다. 그 사람과 동행을 마무리할 때가 찾아왔음을 직감하던 때에, 세종 이도가 느꼈을 멘토의 소중함을 함께 느껴 보시기를 권합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가끔씩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어떤 사람으로 늙어가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산다. 세상에는 어떤 사람, 어떤 노인은 없다. 나이 값을 하는 그런 노인과 나이 값을 못하는 그저 그런 노인, 두 부류가 있을 뿐이다. 내가 만난 황희는 그렇게 살아온 “그런 노인이다” 황희는 나보다 34살이나 많다.
그와 나는 신하와 왕으로 만나서 노인으로 이별하는 오늘이 찾아왔다. 그렇게 세상을 순리대로 살아내고 받아들였다는 것이 즐겁지 않은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산다는 것이 다 그렇지 않은가. 살아보니 왕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더라. 왕도 끼니 때가 되면 밥 먹고, 밥 먹으면 화장실에 간다. 단지 왕은 옷입고(衣) 밥먹고(食) 잠자는(住) 의식주 걱정을 내가 안 해도 된다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1449년 10월 5일, 황희(87살)를 퇴직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황희는 최근 몇 년 동안은 집에 누워서 일 처리를 해왔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다. 그의 건강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정이지만, 황희를 대체할 만한 국무총리 적임자를 찾지 못했기에 나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또한 황희와 영영 이별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황희와는 에피소드가 참 많다. 그 중에서도 국무총리를 맡기 싫다고 나를 피해 다니고, 국무총리가 되어서도 기회만 생기면 사직서를 내는 등 내속을 참 많이 썩였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신하를 통틀어서 사직서를 제일 많이 냈었다. 올해 5월에도 사직서를 냈었다.
그렇지만 국무총리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항상 너그러움과 여유가 담긴 말로 상대와 대화했고, 나라가 시끄러우면 언제나 맨 앞에서 여론을 진정시켰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황희를 진짜(眞) 국무총리라고 칭송했다. 백성이 관리에게 “당신이 진짜(眞) 관리다”라고 불러준 사람은 내가 아는 한 황희가 처음이었다. 그는 20년 가까이 내 국무총리이면서 동시에 백성의 국무총리였던 것이다. 한 관리가 동시에 두 왕을 섬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내 곁에 있어 줘서 내가 백성에게 돋보였고, 행복한 왕이 될 수 있었다. 황희와 비교하면 나는 30여년 동안 백성을 섬겼지만, 신하가 70살이 넘어도 퇴직시키지 않고 관직에 붙잡아두고 일만 시키고 원망을 쌓았으니, 황희가 나보다 한수 위다.
황희가 10년 전에 허리가 굽고 병이 들어서 사직서를 보내왔을 때, 비서실장을 통해 “그럼 집에 누워서 일하면 된다”라는 냉정한 말을 전달하고, 지금까지 필요할 때마다 재택근무를 허락했다. 돌아보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당시 황희보다 일곱 여덟 살 어리고 건강했던 허조와 조말생은 지금 이세상 사람이 아닌데, 황희가 아직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황희가 없었다면, 나는 몸이 아파도 하루도 편히 쉴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눈병이 심해졌던 1436년 이후로 거의 모든 일 처리는, 황희가 이끄는 국무총리실에서 검토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국무총리실의 판단에 의지하고 그대로 따랐을 뿐이다.(從) 황희의 생각은 탁월하고 친절하다.
퇴직 서류에 결재를 하고 보니, 오늘이 노인 황희와 아름다웠던(美) 동행에 마침표를 찍은 날인 듯하다. 나도 누워지내고 황희도 누워지내는 처지이다 보니, 얼굴 한번 보러 오라는 말을 전하는 것도 미안하다. 오늘따라 주저리주저리 혼자 읊조리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그가 강원도 도지사 재직 시절이었던 1424년에 나라 전체에 오랫동안 독버섯처럼 퍼졌던 분식회계를 적발하고 바로잡는 조치를 한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그때 분식회계를 바로잡고 대비하지 못했더라면, 조선은 파산했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나조차도 처벌과 인정(人情) 사이에서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때였다. 황희는 차분히 설명하고 또 내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줬었다. 그때 황희가 없었다면, ….. 지금도 아찔해진다. 상상하기조차 싫다. 그래서 국무총리는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다음 국무총리는 세자와 합이 맞는 신하로 정해야 하는데, 눈에 띄는 신하가 없다. 관직 서열 순서를 따르면, 국무총리 바로 아래인 부총리(좌의정) 하연이 국무총리(영의정)를 맡아야 하는데, 하연(74살) 또한 나이가 적지 않고 최근에 누군가가 새 문자인 훈민정음으로 “하 부총리야 공사를 망령되게 하지 마라”라고 벽에다 써서 비난한 일이 있어서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관례대로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하연이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꾸준한 관리이기도 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내 마음 속에는 김종서가 있다. 그렇지만 그는 앞으로도 국방에 전념해야 하고, 지난해처럼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함경도 국경으로 달려가야 하기에, 김종서는 적임자가 아니다. 여진족과의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김종서를 함경도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쯤 국무총리가 되어있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 되어있을 것이다.
황희의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또 일 생각을 하게 되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