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장면을 마주한다. 여러 사람이 몇 달 동안 함께 만든 프로젝트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 사람의 성과처럼 기억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는 데이터를 분석했고,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냈다. 또 누군가는 현업을 설득하고, 자료를 수없이 고쳤다. 그런데 마지막 발표에는 한 사람이 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져, OOO가 담당했던 프로젝트 말이지?”
물론 조직에서는 누군가가 성과를 대표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무대에 설 수도 없고, 성과를 외부에 알리는 역할도 필요하다. 자신이 한 일을 설명하고 전문성을 보여주는 것 역시 직장인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문제는 ‘우리가 만든 성과’가 어느 순간 ‘내가 만든 성과’로 바뀔 때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우리의 사회생활을 하나의 공연에 비유했다. 우리는 누구나 상황에 따라 자신을 조금씩 다르게 보여준다. 회의에서는 자신감을 보이고, 면접에서는 강점을 강조하고, 외부 발표에서는 전문성을 드러낸다. 고프만에게 이런 자기표현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자신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에는 무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대 뒤에는 그 공연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 무대에는 한 사람만 서 있을지 몰라도, 그 성과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결과일 수 있다.
조직의 일은 대부분 그렇다. 혼자 완성되는 성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가장 잘 보이는 사람을 가장 많이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발표를 많이 한 사람, 보고를 맡은 사람, 외부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성과의 주인공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여주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성과는 알려져야 하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기여를 설명하지 못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는 실제로 한 일과 돌아가는 인정의 크기가 너무 달라질 때다.
열 사람이 함께 만든 결과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통찰로 설명된다. 함께 고민한 아이디어도 누군가의 개인적인 성과처럼 남는다. 외부 사람들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같이 일한 사람들은 안다. 외부에서는 최종 발표와 결과만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그 결과가 만들어진 과정까지 보인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고, 누가 문제를 해결했으며, 누가 실제로 일을 떠받쳤는지 알고 있는 정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두고 외부의 평판과 내부의 평가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조직 연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자신의 강점과 성과를 알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실제보다 자신을 과장해서 보여줄수록 함께 일하는 동료의 신뢰가 낮아질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평판과 내부에서 쌓이는 신뢰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 셈이다. 밖에서는 뛰어난 전문가로 인정받더라도,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성과의 인정은 단순히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 안에서는 공정성과 신뢰의 문제가 된다. “결국 일하는 사람 따로, 인정받는 사람 따로네.” 이런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다음번에도 기꺼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시간을 내놓을까. 누군가의 무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힘을 보태고 싶을까. 무대 위에 선 사람의 평판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기여가 계속 사라진다면 조직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손실이 쌓인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자기PR, 또는 셀프브랜딩을 잘하는 개인에게만 돌릴 수도 없다. 조직 역시 누가 더 잘 말하고 더 눈에 띄는지를, 누가 실제로 더 많이 기여했는지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성과가 얼마나 잘 전달되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각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성과를 이야기할 때 한 가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를 지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제가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기보다 “우리가 함께 만들었고, 저는 이 부분을 맡았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자신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는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사내 발표부터 컨퍼런스, 인터뷰, SNS까지 자신의 경험과 성과를 이야기할 기회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자신을 덜 드러내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성과를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일에 가깝다.
누군가의 화려한 성과를 볼 때뿐 아니라, 나 자신의 성과를 이야기할 때도 한 번쯤 물어볼 수 있다.
지금 내가 ‘나의 성과’라고 말하고 있는 것 안에는 누구의 일이 함께 들어 있을까.
일한 사람과 인정받는 사람이 가능한 한 가까워지는 조직. 그리고 자신을 알리는 것과 함께한 사람을 인정하는 일이 충돌하지 않는 조직. 어쩌면 좋은 조직은 그런 작은 장면에서부터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