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직속 상사는 임원이고, 주요 이해관계자들도 타 부서의 임원들이다.
그의 시간을 원하는 사람은 많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캘린더를 열어 미팅 시간을 찾다 보면 빈칸보다 회의가 더 많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의가 빼곡하다.
보다 보면 진짜 궁금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언제 일을 하는 걸까…
#흔한 임원의 일상

나는 이메일을 꼼꼼하게 쓰는 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어떤 배경이 있는지,
지금까지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최대한 적어 놓는다.
누군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면, 맥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메일을 쓰다 보면 생각보다 길어진다.
그런데 임원들은 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직속 상사도 그렇고,
내가 일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다른 임원들도 비슷하다.
한국도, 아시아도, 글로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결론을 먼저 보고 싶어 한다.
핵심만 말해달라고 한다.
한 페이지로 줄여달라고 한다.
세 줄로 요약해 달라고 한다.

물론, 왜 그런지 안다.
임원은 원래 그런 자리라는 것도 안다.
하루 종일 회의가 있고,
수많은 이메일이 들어오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보고는 짧아야 하고,
결론부터 이야기해야 하고,
핵심이 눈에 띄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나도 이미 수없이 들었다.
그래도 어렵다.
나는 자꾸 설명하고 싶다.
이 결론이 왜 나왔는지,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무엇을 고민했는지.
나에게는 그런 맥락이 중요하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 맥락보다 먼저 결정을 해야 한다.
나는 설명하고 싶고,
그들은 판단해야 한다.
어쩌면 그 차이가 내가 임원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볼드체도 넣어 보고,
색깔도 넣어 보고,
중요한 문장은 맨 위로 올려도 본다.
그래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이건 좀 읽어주지..."
솔직히 2분이면 읽을 수 있는 내용인데.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다.
내 받은 편지함에도 읽지 못한 이메일이 쌓인다.
Teams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할 때도 있다.
하물며 임원들은 어떨까.
내가 보내는 이메일은 그들의 오늘 업무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늘 가장 중요한 업무일 수 있다.
그 차이가 종종 나를 서운하게 만든다.

요즘은 좋은 내용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좋은 내용을 만드는 능력보다, 누군가의 시선이 잠시라도 머물게 만드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이상한 일이다.
예전에는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경쟁력이었다.
지금은 정보를 압축해서 전달하는 사람이 경쟁력이 된다.
설명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핵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유리하다.
길게 쓰는 것보다, 짧게 쓰는 것이 더 어렵다.
2026년은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니라, 정보가 넘치는 시대다.

아직도 이메일과 보고내용을 몇 번씩 줄인다.
이 문장은 지워도 될까.
제목은 더 짧게 쓸 수 없을까.
첫 문장만 보고도 이해할 수 있을까.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아직 주니어 회사원인 나에게 임원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안다.
원래 그런 자리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안다고 해서 쉬워지는 건 아니다.
임원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