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기업에서 임원의 구성원에 대한 1on1이 늘고 있다. 구성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서다. 현장의 어려움을 알고 싶고, 조직문화의 온도를 느끼고 싶고, 구성원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원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는 또 하나의 물음을 조용히 데리고 온다. 임원이 구성원과 너무 가까워지면 팀장의 리더십은 어떻게 되는가. 구성원은 팀장이 아니라 임원을 더 신뢰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위임은 결국 그만큼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 많은 조직은 이 물음을 위임과 신뢰의 문제로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정말 위임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가 같은 맥락을 공유하지 못한 문제일까.
많은 리더는 위임을 일을 맡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팀장에게 맡기겠습니다." "알아서 해보세요." 그러나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은 다른 것이다. "대표님이 생각하신 방향이 그게 아니었나요." "왜 그렇게 판단했어요." 팀장은 최선을 다했다. 대표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결과는 서로에 대한 실망으로 돌아온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신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서로가 같은 세상을 보고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대표는 전략의 맥락에서 판단했고, 팀장은 실행의 맥락에서 판단했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다만 같은 맥락은 아니었을 뿐이다.
자기결정성이론은 사람이 몰입하고 성장하기 위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리더는 자율성을 "알아서 하세요"로 이해하지만, 진짜 자율성은 방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유된 목적 안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다. 맥락이 없는 자율성은 혼란을 만들고, 맥락이 공유된 자율성은 비로소 책임감을 만든다. 그래서 좋은 임원의 1on1은 구성원에게 답을 주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 우리 조직이 지금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어야 한다.
최근 리더십 연구에서는 리더-리더 교환(Leader–Leader Exchange)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리더가 또 다른 리더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가 조직의 성과를 좌우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임원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구성원만이 아니다. 팀장 역시 임원의 고객이다. 그래서 좋은 임원은 구성원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않는다. 구성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되, 그 문제를 팀장이 더 잘 풀어갈 수 있도록 질문하고 곁에서 지원한다. 구성원을 통해 팀장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을 통해 팀장을 더 좋은 리더로 키워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위임이다.
피터 호킨스의 시스템 팀코칭은 여기에 더 넓은 시야를 보태준다. 그는 문제를 사람에게서 찾지 않는다. 관계와 시스템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구성원이 임원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하자. 많은 임원은 곧바로 해결책을 내놓지만, 시스템적으로 사고하는 리더는 다르게 묻는다. 왜 이 구성원은 팀장이 아니라 나에게 이야기했을까. 우리 팀에서는 어떤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보내는 신호인가. 그 물음이 던져지는 순간, 1on1은 개인 상담을 넘어 조직 전체를 들여다보는 창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임원의 1on1이 관계를 확장하는 시간이 아니라 관계를 연결하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되 팀장을 더 신뢰하도록 만들고, 팀장을 지원하되 구성원의 자율성을 잃지 않게 하며, 문제를 대신 해결하기보다 서로가 같은 맥락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다. 좋은 임원은 구성원을 직접 이끌지 않는다. 팀장이 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좋은 팀장 역시 구성원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 않는다. 구성원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질문을 건넨다. 좋은 조직은 이 두 관계가 서로를 떠받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AI 시대에는 이 균형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AI는 정보를 연결한다. 업무를 자동화하고, 보고서를 요약하고, 의사결정을 거들어준다. 그러나 AI는 맥락을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 나누어주지는 못한다. 왜 이 결정이 중요한지, 왜 이 가치가 조직에 의미가 있는지, 왜 이 방향을 함께 선택해야 하는지는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만 빚어진다. 그래서 앞으로 임원의 역할은 더 많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맥락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좋은 리더와 리더의 관계는 위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먼저 공유된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 위에서 공유된 맥락이 만들어진다. 맥락이 공유될 때 비로소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위임이 가능해진다. 위임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다.
결국 좋은 임원의 1on1은 구성원을 관리하기 위한 시간도, 팀장의 리더십을 우회하기 위한 시간도 아니다. 팀장과 구성원이 같은 목적을 보고, 같은 맥락을 이해하며, 서로를 더 신뢰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시간이다. AI 시대에도 조직의 경쟁력은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술은 정보를 연결하지만, 리더는 맥락을 연결한다. 그리고 그 맥락을 함께 이해할 때, 위임은 통제가 아니라 성장의 시작이 된다.
좋은 임원은 일을 위임하는 사람이 아니다. 먼저 같은 세상을 보게 하는 사람이다. 같은 맥락을 공유할 때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위임은 리더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