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건 바로 옆자리 동료들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갈등의 순간
임원이 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진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설렘이 컸는데, 막상 겪어보니 가장 힘든 것은 위아래 관계가 아니라 바로 옆에 앉은 동료 임원들과의 관계였습니다.
지난주 있었던 전략회의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영업마케팅 담당 본부장과 정면으로 부딪쳤거든요. 저희 본부 예산의 30%를 마케팅 쪽으로 넘기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반대하자니 너무 이기적으로 보일 것 같고, 찬성하자니 저희 팀원들에게 뭐라고 설명하지?'
그때 느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예산 싸움이 아니라, 임원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구나 하고 말입니다.
경쟁에서 협력으로, 제 마음가짐부터 바꾸기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저도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들이 예산을 가져가면 저희가 손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회사 전체가 망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접근 방식을 바꿨습니다. 세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1. 서로의 공통 목표부터 찾자
예전에는 "마케팅 예산이 늘어나면 우리 R&D 예산이 줄어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신제품을 성공시키려면 마케팅과 R&D가 어떻게 힘을 합칠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실제로 지난달에도 영업은 "빨리 제품 내놓으라", 개발은 "품질 보장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계속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런데 함께 고객사에 가서 직접 피드백을 들어보니, 결국 저희 모두의 목표가 '고객 만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서로 이해하는 폭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2. 서로 이익이 되는 구조 만들기
이제는 본부별 개별 목표 외에 공동으로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설정합니다.
재무팀 김 이사와 함께 '수익성 개선 TF'를 만든 것도 그런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재무팀은 숫자의 분석 전문성을, 저희 기획팀은 실행에서 타본부와 소통을 통한 실행력을 제공했더니 둘 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도 높아져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요청하는 데에 원활해졌습니다
3. 정보는 나누면 커집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독점하려 했습니다. '정보가 곧 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결국 혼자만 고립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정보를 공유합니다. 물론 모든 정보를 다 오픈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유했을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나눕니다.
동료 임원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아는 것을 먼저하고
각기 다른 스타일을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적극 협력파 - 남 이사 이분과는 매우 잘 맞습니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는 더 공고히 해서 조직 내에서 함께 영향력을 키워나가려 합니다.
경쟁 의식 강한 파 - 김이사 성과에 대한 욕심이 무척 강합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건전한 경쟁 상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매월 한 번씩 비공식적으로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고민을 나눕니다.
업무에서는 경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로를 지지하는 그런 관계입니다.
소극적 성향 - 임 이사 크게 반대하지도, 적극 찬성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분들과는 작은 성공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의 관심사와 강점을 파악해서 조금씩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산 회의를 했을 때
가장 치열한 전쟁터가 바로 예산 회의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름의 전략이 생겼습니다.
회의 전 준비가 반입니다
다른 본부가 뭘 요청할지 미리 파악하고, 누가 제 편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와 '이 정도는 타협 가능하다'를 명확히 구분해둡니다.
회사 전체 관점에서 말하기
"저희 본부에 돈이 필요해요"가 아니라 "회사 전체 수익을 위해서는 이 투자가 필요합니다"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정량적 데이터로 뒷받침합니다.
창의적 해결책 제시하기
예산 총액 자체를 늘릴 방법은 없을까요? 단계별로 투자하거나 성과에 따라 추가 투자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본부 간 리소스를 공유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대안들을 미리 준비해둡니다.
솔직히 아직도 어렵습니다. 매일이 배움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달라진 것은, 이제는 동료 임원들을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성장할 파트너'로 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상론만으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전략적으로 한 발 물러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방향은 분명합니다.
함께 더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임원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