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회사는 왜 갑자기 무너지는가 - 남기웅 교수 『역량 붕괴』 저자 강연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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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회사는 왜 갑자기 무너지는가 - 남기웅 교수 『역량 붕괴』 저자 강연 정리

강한 조직은 어떻게 역량을 지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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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피스트 officialAug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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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남기웅 교수(코칭 전문가, 前 넥슨 CHO, 現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가 자신의 저서 『역량 붕괴』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삼성, 네이버, 넥슨, 하이브 등 여러 기업의 인사·경영 요직을 거치고 3,200시간이 넘는 임원 코칭을 해 온 저자가, 잘 나가던 조직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과정을 인터뷰 기반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강연에서 나온 핵심 메시지를 정리했다.

책을 쓰게 된 계기

이 책은 원래 논문을 쓰기 위해 여러 리더급·임원급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나온 결과물이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없던 경영 이론과 용어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지도교수로부터 "논문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라는 피드백을 받고 몇 년간 묻어두었다가, 작년 말 짧은 기간에 정리해 출간했다.

특정 회사를 겨냥해 쓴 글이 아니라, 금융·제조 등 다양한 업종의 리더 십여 명을 인터뷰하며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를 하나의 시나리오로 엮은 것이라고 저자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여담이지만,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K사"를 두고 실제 여러 회사에서 "우리 얘기 아니냐"는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어느 조직에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핵심 통찰: 회사는 몰라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알고도 무시해서 무너진다

강연에서 가장 강조된 지점은 이것이다. 임원급 인터뷰이들의 공통된 증언은 "회사가 안 좋아질 때, 몰랐던 게 아니라 알면서도 무시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미 누군가는 조직의 문제를 알고 있는데, 그것을 말할 수 없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 자체가 붕괴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이 어느 순간 급격히 나빠지면 사람들은 흔히 외부 환경(경기 침체, 위기 등) 탓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변화 대응 역량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기에 위기 상황에서 버티지 못한 것뿐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역량은 사람이 아니라 '관계'에 저장된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은 조직의 역량이 어디에 저장되는가이다. 흔히 인사·HRD에서 말하는 역량(지식·스킬·태도)은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실제로 비즈니스 성과를 만드는 암묵적인 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신의, 즉 관계 자본에 훨씬 많이 저장된다는 것이다.

이 신뢰의 핵심 키워드로 저자는 '선의(善意)'를 꼽았다. 잘 되는 조직의 임원들은 영업·마케팅·IT 본부장이 치열하게 다투더라도, 그 다툼이 "우리 부서만 잘되자"가 아니라 "회사 전체가 잘되자"는 공동의 믿음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서로 갖고 있다. 대표이사의 결정이 자기 부서의 안과 다르더라도 "치열하게 논의했지만 다른 의견이 더 타당해 수용했다"고 팀에 설명하고, 다시 그 방향으로 뛸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관계 역량이 쌓이는 과정이다. 반대로 돌아가서 "쟤네가 뭘 알아"라며 뒷담화를 하는 리더는, 팀 단위의 역량은 지킬 수 있어도 전사적 역량은 무너뜨리게 된다.

'점령군 리더십'이 조직을 어떻게 갉아먹는가

새로운 CEO나 본부장이 오면 왜 항상 임원부터, 자기 사람부터 바꾸려 할까? 저자는 이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경영인은 보통 2~3년 계약이기 때문에, 조직의 장기적 역량을 키우기보다 빠르게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이 이미 검증한 방식과 사람을 빠르게 이식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물어보면 당사자들도 "내 회사였다면 그렇게 안 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새로 온 리더가 대개 "문제부터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문제를 발굴하고 부각시켜 보고하면, 그것이 곧 그 리더의 능력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역시 사람을 바꾸길 잘했다"는 인식). 그렇게 조직이 잘게 쪼개지고 재편되는 동안, 실무진은 "이 회사에서 나는 성장할 수 없겠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서로 일을 미루기 시작한다. 강연에서 소개된 사례는 15년 넘게 회사를 키워온 임원급 실장이, 새 경영진 아래서 자신의 발언권이 사라졌다고 느낀 순간 조용히 퇴사를 결심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윤리 붕괴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저자가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들은 것 중 하나는 '경계의 실종'이었다. 예컨대 업무용으로만 쓰던 회사 차량을 임원 한 명이 개인 용도로 쓰기 시작하면, 그 소식은 조직 내에 빠르게 퍼지고 "저 사람도 쓰는데 나도 써도 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확산된다. 규정에는 없지만 조직이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선이 한 번 무너지면, 그 이후엔 부끄러움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위에서는 조직을 빠르게 장악했다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 선을 지우고, 아래에서는 "내가 이 회사에서 더 얻을 게 없다"는 상실감이 선을 넘게 만든다. 결국 윤리 기준의 흐려짐은 역량 붕괴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핵심 인재가 떠나는 진짜 이유: 절대 보상이 아니라 '상대적 공정성'

핵심 인재 이탈에 대한 통찰도 흥미롭다. 핵심 인재는 자신이 얼마를 받느냐보다, 나보다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나보다 많이 받는다는 사실에 훨씬 크게 반응한다. 인재 전쟁이 치열해지며 경력직 신규 입사자의 처우가 기존 구성원보다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흔해졌는데, 이것이 조직 내부에 조용한 불신을 쌓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핵심 인재를 붙잡는 방법 역시 제도나 프로세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저자가 넥슨 재직 시절 목격한 일화 ‘회사를 떠나려던 핵심 개발자를 당시 회장이 개인적으로 찾아가, 업무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이 밤새 레고를 함께 조립하며 마음을 돌린 이야기’는 결국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붙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어졌다.

해법: 문제 중심 경영에서 강점 중심 경영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은 명확하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단기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 '문제 중심 경영'을 택한다 . 문제를 찾고, 원인을 부각시키고, 그것을 없애는 데 집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제가 되지 않으면 그냥 두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오히려 "우리 조직이 지금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 역량은 누구 안에, 어떤 관계 속에 쌓여 있는가"를 먼저 파악하고 강화하는 강점·해결 중심 접근을 제안한다.

목표 설정 방식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폈다. 3~5년 뒤의 원대한 목표(Z)를 세우고 현재(A)를 그 기준으로 분석하면, 지금의 조직은 늘 부족하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대신 저자는 자라(ZARA), H&M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채택한 전략을 빌려 'A-B-Z' 전략을 제시한다. 5년 뒤 목표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다음 한 걸음(B)을 빠르게 내딛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방향(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거기에 시점을 못 박고 장기 계획에 매몰되는 순간 오히려 문제 중심적 사고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새로운 붕괴: '판단력의 공동화'

강연 후반부는 AI가 조직 역량에 미치는 영향으로 이어졌다. 저자가 소개한 사례는 이렇다. 한 게임 회사에서 원화(콘셉트 아트) 파트장이 "AI 툴 두 개만 구독시켜주면 8명분의 작업을 한 달 안에 해내겠다"고 제안했고, 실제로 블라인드 평가에서 AI가 만든 결과물의 만족도가 더 높게 나왔다. AI는 기획자의 기획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그림을 만들어내는 반면, 사람은 자기 나름의 해석과 상상을 거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던 사람이 퇴사하는 순간, 그동안 AI를 다루며 축적된 판단의 맥락이 통째로 사라진다. 저자는 이를 '판단력의 공동화'라 명명했다. 도구를 잘 다뤄 얻은 성과가, 그 개인이 조직을 떠나는 순간 조직의 역량으로 남지 않고 함께 증발해버리는 현상이다. 이는 결국 앞서 말한 '관계에 저장되는 역량'의 문제와 같은 맥락으로, AI 시대에도 여전히 핵심 과제는 개인의 역량을 조직의 지식과 관계로 어떻게 확산시키느냐에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실제로 AI 에이전트 수십 개를 운용하며 관찰한 결과, 에이전트를 잘게 쪼개 지시하는 전통적 '딜리게이션(위임)' 방식보다, 에이전트에게 권한과 맥락을 넘겨 스스로 하위 조직을 구성하게 하는 '임파워먼트(권한부여)' 방식이 훨씬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신입사원보다 20년 차 이상의 경영 경험자가 훨씬 잘 다룬다고 지적했다. 의사결정 구조를 설계하는 감각 자체가 오랜 조직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AI 리터러시 교육의 우선순위를 실무진이 아니라 오히려 경영진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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