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달리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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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달리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

F1 피트스탑에서 배우는 일과 삶의 정비법. 회사 안과 밖, 두 개의 레이스에 필요한 '준비된 멈춤'을 이야기합니다.
조직문화미드레벨시니어리더
ju
Hyeong-juOct 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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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로 F1에 입문한 뒤 매 시즌을 챙겨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트랙을 질주하는 드라이버와 치열한 순위 경쟁, 그리고 멋진 F1 머신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볼수록 F1은 빠른 머신과 뛰어난 드라이버만으로 승부가 나는 경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타이어로 출발할지, 언제 교체할지, 날씨와 노면이 어떻게 바뀔지까지 미리 읽어야 하는 전략의 경기였습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피트스탑이었습니다.


달리기 위해 멈추는 시간

피트스탑은 레이스 도중 차를 세우고 타이어를 교체하거나 차량을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빠른 차라도 한 세트의 타이어로는 레이스를 끝까지 달리기 어렵습니다. 타이어가 닳으면 접지력이 떨어지고 속도가 줄어듭니다. 무리해서 달리다가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순간에 멈추고, 새 타이어로 갈아 끼운 뒤 다시 트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물론 피트스탑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타이밍을 잘못 잡거나, 장비가 준비되지 않았거나, 교체 과정에서 작은 실수만 생겨도 순위를 내줍니다. 멈추지 않았다면 잃지 않았을 시간까지 잃게 됩니다.

반대로 완벽하게 준비된 피트스탑은 레이스의 흐름을 바꿉니다. 누가 어느 바퀴를 맡을지, 어떤 타이어를 꺼내 둘지, 차가 어디에 멈출지까지 정해져 있다면 불과 몇 초 만에 정비를 마치고 다시 달릴 수 있습니다.

같은 멈춤이라도 준비 여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준비되지 않은 피트스탑은 시간을 잃는 정차에 그치지만, 잘 준비된 피트스탑은 남은 레이스를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전략이 됩니다.

피트스탑의 목적은 쉬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잘 달리기 위해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리는 두 개의 레이스

F1을 보다 보니 우리도 매일 두 개의 레이스를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회사 안의 레이스입니다. 맡은 일을 해내고, 성과를 내고, 동료와 협업하며 커리어를 쌓아 갑니다.

다른 하나는 회사 밖의 레이스입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가꾸고, 건강을 돌보고, 취미를 즐기며 나만의 삶을 꾸려 갑니다.

두 레이스는 다른 트랙에서 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모두 쏟아 내면 회사 밖의 삶을 돌보기 어렵고, 개인의 삶이 흔들리면 일에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한쪽의 상태가 다른 쪽에 그대로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두 레이스 모두에 피트스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바꾸기 위해, 일을 멈춘다는 것

몇 달 전, HR 메가트렌드 세미나에서 서브원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서브원은 AI를 활용한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위해 전사 차원의 피트스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구성원들이 잠시 기존 업무에서 벗어나 지금 하는 일을 다시 들여다보고, 반복적이거나 부가가치가 낮은 업무를 AI로 대체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AI 도구를 하나 더 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왜 일을 바꾸기 위해 일을 멈출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일이 많아지면 우리는 더 빨리 처리하려고 합니다. 회의를 늘리고, 보고서를 더 만들고, 사람을 더 투입합니다. 지금의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 처리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익숙한 방식을 반복합니다. 업무를 멈추고 프로세스를 다시 설계하는 일은 여유 있는 조직만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정말 좋은 성과로 이어질까요? 방향이 틀렸다면 속도를 높일수록 목적지에서 더 빨리 멀어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피트스탑은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지금 하는 일이 정말 필요한지, 관성처럼 반복하는 과정은 없는지, 사람이 할 일과 기술에 맡길 일을 제대로 나누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불필요한 보고서 하나를 없애고, 반복되는 수작업을 자동화하고, 복잡한 결재 단계를 줄이는 것도 피트스탑입니다. 당장은 멈춘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 덕분에 앞으로의 일은 더 빠르고 정확해집니다.


회사 밖의 삶에도 피트스탑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치면 우리는 주말에 늦잠을 자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쉽니다. 그런 휴식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잠시 쉬었다가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피로는 곧 다시 쌓입니다. 왜 지쳤는지, 무엇이 반복해서 내 에너지를 빼앗는지 들여다보지 않고 쉬기만 한다면, 그것은 피트스탑보다는 잠깐의 정차에 가깝습니다.

개인의 피트스탑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수면 시간을 되찾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운동을 시작하거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달리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삶과 맞는지,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쉬는 방식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나에게 필요한 정비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휴가를 간다는 사실보다 휴가로 무엇을 회복할지가, 일을 내려놓는 것보다 돌아와서 무엇을 바꿀지가 더 중요합니다.


멈춘다고 모두 피트스탑은 아닙니다

F1의 피트스탑은 짧지만 결코 즉흥적이지 않습니다. 차가 들어오기 전부터 타이어와 장비가 준비되어 있고,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정해져 있습니다. 수없이 반복한 연습이 있기에 몇 초 만에 차를 정비해 트랙으로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피트스탑도 그래야 합니다. 회사가 업무를 잠시 멈춘다고 일하는 방식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점검할지, 무엇을 없애거나 바꿀지, 다시 시작했을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삶도 같습니다. 목적 없이 멈추면 레이스의 시간만 흘러갑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을 정비하고,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한다면 그 멈춤은 남은 레이스를 바꾸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멈추는 것을 뒤처지는 일로 여깁니다. 회사에서는 성과가 늦어질 것 같고, 개인의 삶에서는 쉬는 동안 남들이 앞서 나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닳은 타이어로 계속 달리는 차가 끝까지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습니다.

잘 달린다는 것은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알고, 그 시간에 무엇을 점검하고 바꿔야 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회사 안의 레이스도, 회사 밖의 레이스도 길게 이어집니다.
지금 내가 달리는 두 레이스에는 어떤 피트스탑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그 멈춤을 더 나은 출발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ju
Hyeong-ju
ESFJ / HR / 9년차 / 사람 좋아하는 사람
완벽하진 않지만 멈추기는 싫어서, 오늘도 쉼 없이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가다 보면 어디든 닿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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