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는 없었다, 나쁜 상황이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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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과자는 없었다, 나쁜 상황이 있었을 뿐.

바꿔야 할 것은 그 사람의 성격, 기질 또는 의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조직문화성과관리인사기획리더임원
rk
Grace ParkAug 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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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저성과자'로, 또 누군가를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으로 분류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낙인이 찍혔던 사람이 팀을 옮기거나, 리더가 바뀌거나, 역할이 달라지는 것만으로 갑자기 눈부신 성과를 내고 훌륭한 리더로 거듭나는 장면을 목격하곤 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요.

저는 오랫동안 이것을 직감으로만 느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 혼자의 감(感)이 아니라 김경일 교수가 세바시 강의에서 말씀하신 인지심리학자들의 오래된 공통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은 위안과 확신을 얻었습니다.

"성격(기질)보다 상황이다."

바꿔야 할 것은 그 사람의 성격, 기질 또는 의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이라는 김경일 교수의 세바시 강의 내용은 저에게 엄청나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문을 열면, 나쁜 습관이 걸어 나온다

김경일 인지심리학자는 세바시 2115회의 <나를 망쳐가는 나쁜 습관으로부터 탈출하는 법>에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웬디 우드(Wendy Wood) 교수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열거하게 하고, 그 강도를 기록하게 한 뒤 4주간 관찰했습니다. 앞의 2주는 중간고사 기간(스트레스가 높은 시기), 뒤의 2주는 시험이 끝난 시기(스트레스가 낮은 시기)였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다리를 꼬고, 상대의 말을 끊고,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나쁜 습관들이 앞다투어 튀어나왔습니다. 오른손잡이에게 왼손만 쓰게 하는, 인위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한 상황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쁜 습관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지만,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그 습관은 스스로 문을 열고 걸어 나옵니다.

여기서 조직이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웬디 우드의 실험에서 스트레스는 나쁜 습관만 끌어낸 것이 아니라, 좋은 습관도 함께 더 강하게 끌어냈다는 점입니다. 즉 스트레스는 그 사람의 기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 안에 자리 잡은 '자동 반응'을 증폭시키는 방아쇠일 뿐입니다.

한국은 '괴로운 사회', 고각성 스트레스 사회

김경일 교수님은 또한 해당 세바시 영상에서 “일본을 '외로운 사회'라 부른다면, 한국은 '괴로운 사회', 즉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계속 만나야 하는 고각성(高覺醒) 스트레스 사회”라고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높은 환경에서는 자동 반응으로서의 나쁜 습관이 발현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직에서 목격하는 어떤 직원의 '부족한 태도', '낮은 성과', '까칠한 리더십'은 그 사람의 본질일까요, 아니면 고스트레스 상황이 끌어낸 자동 반응일까요. 우리는 너무 자주 상황의 산물을 기질의 문제로 오독(誤讀)합니다.

창의적 인재가 아니라, 자신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아는 사람

인지심리학자들이 실제로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창의적인 인재'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아는 사람'입니다. 타고난 기질과 능력은 좀처럼 바뀌지 않지만, 상황의 힘은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리더와 HR의 역할도 분명해집니다. 우리의 일은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좋은 습관과 강점을 자동으로 꺼낼 수 있는 상황을 설계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상황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의지가 아니라 설계다 — If-then-when

그렇다면 좋은 습관은 어떻게 만들까요. 우드 교수와 아트 마크먼(Art Markman) 교수의 통찰은 한결같습니다. 의지력에 기대는 습관 형성은 이미 나쁜 상황에 놓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핵심은 육하원칙의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뇌가 '중요한 정보'로 인식하는 구체적인 조건 설계,

If-then-when(만약 ~하고 나면, 그때 ~한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오고, 8시 알람이 울리면, 그때 영양제를 먹고 탈모제를 바른다."

김경일 교수는 위와 같이 if-then-when에 근거한 루틴을 뇌과학적으로 설계했다고 본인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언제', '무엇을 하고 나면', '그것을 한다'는 구체적 단서가 뇌를 좋은 상황에 데려다 놓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직 언어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구성원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의지를 요구하는 대신, 행동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트리거(상황·순서·시점)를 함께 설계해 주어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좋은 습관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날이 '기분이 아주 좋은 날'도, '아주 나쁜 날'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 아주 힘들고 지친 날에는 새것을 시작하지 말고, 이미 가진 좋은 습관을 꺼내 강화하는 날로 삼습니다.

  •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은 굳이 변화를 원하지 않기에 새 습관이 붙지 않습니다.

  • 살짝 애매하게 기분이 그런 날이야말로 If-then-when으로 작은 시도를 심기에 가장 좋은 출발점입니다.

김경일 교수는 본인 사례에 더해서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 작가의 사례를 덧붙였습니다. 조정래 작가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날 아침에 일어나 원고지 30매를 꾸역꾸역 써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기 그릇에 맞는 속도로 시작한 작은 시도가 10년, 20년 쌓여 위대한 결과가 됩니다. 남보다 줄여서 시작하는 것이,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언제나 낫다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자책하기, 조직에도 필요한 언어

마지막으로 리더와 HR이 조직에 심어야 할 문화적 언어가 있습니다. 김경일 교수의 언어로 '지혜로운 자책'입니다. 결과가 나빴을 때 "나는(우리는) 왜 이것도 못 할까?"라고 존재를 탓하는 것은 바보 같은 자책이라고 합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책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상황을 묻는 것입니다.

"○○아, 너는 왜 좋은 습관을 꺼낼 수 있는 시점과 상황을 아직도 못 찾고 있는 거야?"

"○○아, 너에게 맞는 상황적 단서를 왜 아직 기록해 두지 않은 거야?"

실패조차 자책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상황 데이터'가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 성과가 잘 나고, 어떤 조건에서 몰입이 무너지는지를 기록해 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데이터 기반 HR이 개인의 성장 관리에 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선물입니다.

리더와 HR을 위한 실행 인사이트

  • 평가하기 전에 상황부터 진단하라. 저성과의 원인을 개인의 기질로 결론짓기 전에, 스트레스 수준·리더·역할·팀 조합이라는 '상황 변수'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 재배치는 처벌이 아니라 설계다. 상황(팀·리더·직무)을 바꾸는 것만으로 잠재력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바꾸려 하기 전에 판을 바꿔 보십시오.

  • 의지 요구를 시스템 설계로 바꿔라. "더 하라"는 독려 대신, If-then-when 구조(언제·무엇 다음·무엇을)를 업무 루틴에 심어 주십시오.

  • 고스트레스 시기엔 신규 과제를 얹지 마라. 조직이 극도의 압박에 있을 때는 새 습관·새 제도를 시작하기보다, 이미 작동하는 강점과 좋은 루틴을 강화하는 편이 현명합니다.

  • 자책이 아니라 기록의 문화를 만들라. 실패를 '상황 데이터'로 전환하는 회고 언어를 팀에 심으면, 사람은 위축되지 않고 성장합니다.

결국 우리의 일은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장 좋은 모습이 자동으로 걸어 나오도록 상황의 문을 설계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질보다 상황을 믿는 조직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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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Park
인사/교육/문화 + @ 디지털/AI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20년 동안 사람의 성장을 설계해 온 HR 전문가입니다. 채용/육성/조직문화/코칭까지 HR의 전 과정을 직접 이끌었고, 최근에는 HR Analytics와 조직/리더십 진단으로 성장의 방향을 더 정교하게 잡는 일을 합니다. 제도와 콘텐츠를 연결해 배움이 성과로 이어지는 조직을 현실에서 구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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