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주 연쇄 실종 사건’에 대한 보완책이 발표됐다. 앞으로 경찰은 실종자를 직접 만나 확인하고, 경찰관과 실종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지문 인증 등 객관적인 증거를 남기도록 종결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실종자가 자신의 소재를 가족에게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별도의 의사확인서도 받도록 했다. 허위로 ‘만났다’고 기록하는 일을 막기 위한 즉각적인 안전장치라는 점에서는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번 더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절차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같은 일일까.
기업에서도 큰 사고가 발생하면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결재선을 하나 더 만들고, 확인서를 추가하고, 체크리스트의 항목을 늘린다. 당장은 조직이 무언가 조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쉽다. 그러나 모든 업무에 이와 같은 통제를 붙이면 현장의 업무량은 증가하고, 정작 위험도가 높은 업무에 집중해야 할 시간과 자원이 줄어드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이번 대책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단순 가출을 포함한 모든 실종 사건에서 대면과 인증 절차가 늘어나면 한정된 인력이 상대적으로 긴급성이 높은 사건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내부통제에서 중요한 것은 통제의 개수가 아니라 통제가 실패를 실제로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다. 우리는 이미 기업의 횡령과 회계조작 사건에서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아왔다. 2022년 OO은행에서는 본점 직원이 8년에 걸쳐 총 697억3천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확인됐다. 개인의 범죄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금감원은 사고를 예방하거나 조기에 발견해야 할 내부통제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해당 직원은 한 부서에서 10년간 장기 근무했고, 통장과 직인의 관리가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으며, 출고 신청과 결재에 필요한 권한도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었다. 거액의 입출금 거래조차 이상거래 모니터링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나쁜 직원 한 명’에서 그치면 안된다. 한 사람이 기록을 만들고, 권한을 행사하고, 자금을 움직인 뒤 그 결과까지 스스로 정상적인 업무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던 구조를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회계조작도 마찬가지다. 매출이나 비용을 입력한 숫자가 실제 계약서와 거래내역, 입출금 기록과 독립적으로 대조되지 않는다면 조작된 숫자는 결재선을 통과하면서 점차 ‘회사의 공식 실적’이 된다. 결재자가 열 명이어도 모두 같은 자료를 보고 승인한다면 통제는 열 번 작동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오류를 열 번 반복 확인한 것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금융회사와 기업들은 자금의 신청과 승인, 집행과 기록, 보관과 검증을 서로 다른 사람이 맡도록 권한을 분리하고, 장기근무자 순환과 명령휴가를 실시하며, 회계장부와 실제 계좌·증빙을 서로 맞춰보는 절차를 둔다. 특정 거래나 숫자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면 시스템이 이를 별도로 탐지하기도 한다.
따라서 내부통제의 목적은 사람을 믿지 않는 데 있지 않다. 한 사람을 믿어야만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 데 있다. 제주 실종 사건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제조기업은 불량 사고가 발생했다고 모든 직원에게 확인 서명을 한 번 더 받는 데서 끝내지 않는다. 불량품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검사 조건을 시스템에 걸어둔다. 재무에서는 담당자가 “거래를 확인했다”고 입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발주서와 입고 내역, 세금계산서와 실제 지급 정보가 서로 일치하는지를 확인한다.
실종 사건에서도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누가 한 번 더 확인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확인돼야 사건을 끝낼 수 있는가’라는 종결의 정의(Definition of Done)다. 담당자가 ‘통화했다, 만났다, 안전을 확인했다’고 입력하는 것만으로 종결되는 구조라면 관리자가 열 번 결재하더라도 결국 같은 정보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과 별개의 제주 60대 남성 실종 사건에서는 담당자가 실종자와 통화했다고 허위 내용을 입력한 뒤 112시스템에서 상급자 결재까지 거쳐 사건이 종결된 사실이 확인됐다. 결재 단계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내부통제가 작동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실효성 있는 시스템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통화했다고 입력했다면 실제 통화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해야 하고, 대면했다고 입력했다면 이를 입증하는 적법한 증거가 연결돼야 한다. 관리자 역시 담당자가 작성한 보고서를 다시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판단의 근거가 된 원자료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재무 내부통제가 장부에 적힌 숫자만 확인하지 않고 계좌, 계약서, 세금계산서 등 별도의 근거와 교차검증하는 이유와 같다.
기업의 리스크 관리도 모든 거래를 같은 수준으로 감사하지 않는다. 거래금액이 크거나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고, 평소와 다른 거래가 발생했을 때 더 높은 수준의 승인과 검증이 작동한다. 실종 사건 역시 연령과 취약성, 실종 경위, 시간 경과, 범죄 피해 가능성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도를 구분하고, 위험도가 높은 사건에서는 더 강한 확인과 상급자의 개입이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담당자의 직감만으로 위험 수준을 임의로 낮출 수 없도록 최소한의 기준을 시스템 안에 두는 것이다.
OO은행 횡령 사건에서 거액의 입출금 거래가 이상거래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됐다면 사고를 훨씬 일찍 발견할 가능성이 있었다. 실종 사건도 마찬가지다. 특정 담당자의 종결 속도가 동료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거나, 한 사람이 처리한 사건에서 특정 종결 사유가 반복되거나, 미결 사건이 갑자기 크게 감소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이상 신호가 될 수 있다. AX를 적용한다면 AI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사람을 대신해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평소에는 발견하기 어려운 이상 패턴을 찾아내 “왜 이 사건들은 이렇게 빨리 끝났는가”라고 질문하도록 만드는 것에 가깝다.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수록 미결 건수가 늘고, 빨리 종결할수록 성과가 좋아 보이는 구조라면 아무리 좋은 매뉴얼을 만들어도 현장에서는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에서도 영업실적만 강조하면 무리한 판매가 발생하고, 원가절감만 강조하면 안전이나 품질이 희생될 수 있다. 조직이 사람에게 무엇을 평가하고 보상하는지가 결국 현장의 행동을 만든다. 따라서 미처리 사건 수, 담당자별 업무량, 사건 위험도, 평균 처리시간 등을 함께 보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업무 재배분이나 관리자 개입이 이루어지는 구조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기업에서 말하는 내부통제의 핵심이다. 사람에게 더 조심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위험한 판단을 혼자 내릴 수 없게 만들고 잘못된 데이터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업무 자체를 설계하는 것. 이번 사건에서 사진 한 장을 더 남기는 것은 필요한 응급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해법은 사진을 찍는 절차를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사진 역시 누군가 보관하고 확인해야 하는 또 하나의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근본적인 변화는 ‘확인했다’는 사람의 말을 기록하는 시스템에서, ‘확인됐다는 사실’이 서로 다른 근거와 권한을 통해 검증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이다. 금융사에서 직원 한 명이 수백억원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권한을 분리하고, 제조공정에서 불량품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품질 게이트를 만드는 이유도 결국 같다. 좋은 시스템은 사람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 실수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심지어 의도적으로 규칙을 어기더라도 그 한 사람의 판단이 곧바로 조직의 사실과 최종 결과가 되지 못하도록 여러 겹의 독립적인 방어선을 만든다. 그것이 재발방지의 출발점일 것이다. 이번 ‘제주 연쇄 실종 사건’은 국가에게도 기업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라 생각한다. 특정 누군가의 안타까운 일로 그치지 않고, 사회안전망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래본다.
한 사람이 신청하고, 승인하고, 기록하거나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는 업무는 없는가?
사고가 날 때마다 새로운 체크리스트와 결재선을 추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위험도가 높은 업무를 구분해 통제를 집중하는 구조가 있는가?
우리 시스템은 업무 기록을 위한 목적인가, 평소와 다른 이상 패턴을 발견하고 알려주는 목적인가?
좋은 내부통제는 사람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데이터가 조직의 사실이 되지 못하도록
권한과 정보, 시스템이 서로를 검증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