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을 사람이 줄었습니다

점심 먹을 사람이 줄었습니다

낯빛이 어두운 사람 명단이 짧아지고 있다
조직문화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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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Aug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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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팀에는 이런 루틴이 있습니다.

주간미팅에서 구성원들 중에 신경쓰이는 사람들과 관련있는 팀원들이 점심약속을 잡는 것을 논의합니다. 최근 이동이 있었거나 낯빛이 어두워 보이거나 출산 등 이벤트가 있었던 구성원을 대상으로 합니다. 거창한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밥 한 끼 먹으면서 요즘 어떠신지 묻는 정도죠.

그런데 올해 들어 이 명단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짚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저희 팀은 올해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1:1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베이보다 직접 만나서 듣자는 취지였습니다. 인터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팀원들이 하는 말은 일관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훨씬 잘 알게 됐다는 겁니다. 구성원들 쪽에서도 피플팀을 조금 편하게 느끼기 시작했고요. 요즘은 인터뷰를 더 자주 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구성원을 이해하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하다 보니 듣는 행위 자체가 이미 개입이었습니다.

참가하고 있는 독서모임 8월 지정도서인 『레드 헬리콥터』라는 책을 읽다가 이 점심 명단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두려고 이 글을 씁니다.


AI 이야기는 짧게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AI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안 쓰는 HRer는 이제 없다고 봅니다.

다만 AI가 우리 일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이 우리를 거치지 않게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규정 문의는 챗봇이 하고 있습니다. 연차 잔여일수, 증명서 발급, 근태 정정 같은 일들은 이미 구성원이 직접 확인하고 직접 처리합니다. 최근 나오는 서비스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질문에 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러 시스템을 오가며 프로세스를 끝까지 실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이런 솔루션이 지금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 회사에 안 들어왔더라도, 곧 들어옵니다.

그러면 남는 질문은 이겁니다.

구성원이 더 이상 '몰라서' 우리를 찾지 않게 될 때, 그래도 우리를 찾을 이유가 남아 있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다정함'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상태는 지표보다 복도에서 먼저 보입니다

건강한 조직에서 감지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회의실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복도를 걷는 당당한 걸음걸이, 그리고 솔톤의 목소리입니다. 심리적으로 안전한 사람의 목소리는 한 톤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솔톤은 즐거움을 전합니다.

반대로 눈치를 보는 조직은 목소리가 낮아지고, 말끝이 흐려지고, 걸음이 빨라집니다. 손드는 횟수가 줄고, "일단 해보겠습니다"가 "확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로 바뀝니다.

이게 서베이 점수에 반영되기까지는 두 분기쯤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직률에 나타나기까지는 더 걸리고요.

우리는 그걸 두 분기 먼저 압니다. ‘감’이죠. 어쩌면 이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비대칭 정보 아닐까요? 그리고 이건 대시보드가 아니라 만나야 얻어지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다정함'이라는 단어, 어색합니다

HR에게 다정함을 요구하는 건 대체로 좋은 신호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궂은 소리 대신 해주는 사람, 화난 사람 달래는 사람, 분위기 맞춰주는 사람. 그렇게 소비되어 온 역사가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다정함은 감정노동이 아닙니다.

감정노동은 내 감정을 숨기고 상대에게 맞추는 일입니다. 다정함은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사실을 전달하는 일이고요. 둘은 오히려 반대편에 있습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평가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저희가 평가에서 지키려는 원칙도 같습니다. 낮은 평가가 한 사람을 규정하는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평가가 좋은 말로만 흐르면 성장의 신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자고 정직하게 짚는 변별력을 지키려 합니다.

이건 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근거와 판단과 책임을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다정함을 구체적인 action으로 분석해볼까요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네 가지 정도가 떠오릅니다.

1. 타이밍 - 나쁜 소식을 미루지 않습니다

다정함의 8할은 타이밍입니다. 늦게 전한 배려는 대체로 배신으로 기억됩니다.

→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지금 논의되는 방향은 이렇습니다. 확정되면 가장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2. 사실과 의미 -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합니다

뭉개는 것과 배려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실은 그대로 두되,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 같이 말해주는 것이죠.

→ "이번 평가는 기대 수준 대비 미달입니다. 이유는 세 가지고요.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하면 되는지도 같이 정리해보겠습니다.”

3. 기준 - 결과보다 기준과 맥락을 공유합니다

보상에서 갈등은 대개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그 결정을 납득할 수 있느냐에서 비롯됩니다. 납득 가능성은 숫자를 다 공개하는 데서 오지 않고, 어떤 기준으로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설명하는 데서 옵니다.

→ "얼마를 어떻게 나눴는가보다, 어떤 기준과 맥락에서 이렇게 결정했는지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4. f/u - 한 번의 대화를 한 번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관계를 기록으로 바꾸는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3주 뒤에 한 번 더 묻는 것이요.

→ "지난번에 말씀하신 그 건, 어떻게 됐어요?"

네 가지를 보시면 아실 텐데, 어느 것도 AI가 못 해서 남는 게 아닙니다. 책임질 수 있는 주체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남는 겁니다.

AI는 이미 충분히 친절합니다. 24시간 대기하고, 화내지 않고, 판단하지 않죠. 어떤 고민은 사람보다 AI에게 털어놓는 게 편합니다. 그러니 '친절함' 자체는 더 이상 우리의 차별점이 아닙니다.

하지만 AI와 대화하고 나서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나 loyalty가 차오르지는 않습니다. 웃음소리는 혼자서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무엇부터 바꿔볼까요?

거창한 걸 제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도 지금 해보고 있는 것들입니다.

AI로 아낀 시간의 용처를 미리 정해두기. 자동화의 목적을 '일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잡으면, 도입 명분도 서고 방향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표에 없는 신호를 기록해두기. 회의실 웃음소리, 질문의 빈도, 낯빛. 보고서에는 못 넣지만 이걸 보고 있는 사람이 조직에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면담 후 3주 알림 걸어두기. 캘린더에 등록만 해두면 됩니다. 가장 쉽고, 효과는 가장 큽니다.

마지막으로

AI가 정보와 처리를 대신할수록, 사람을 찾는 이유는 결국 사람 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 피플팀을 만나고 나면 회사에 대한 loyalty가 조금 충전되고, 기분이 나아지고, 고민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경험. 드라마틱한 변화까지는 아니어도, 만나고 나면 그래도 좀 나아지는 사람.

2027년의 HR은 가장 좋은 제도를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잘 되고 있다는 신호는 대시보드보다 먼저, 점심 명단에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글에 담지 못한 개념들을 아쉬운 마음에 남겨봅니다.

1. 심리적 안전감 (Psychological Safety)

‘두려움 없는 조직’으로 유명한 Amy Edmondson이 정립한 개념으로, 처벌이나 망신을 걱정하지 않고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목소리 톤과 손드는 빈도는 이 지표의 가장 빠른 선행지표입니다.
적용 예시: 회의록에 '반대 의견이 나왔는가'를 항목으로 넣기

2. 감정노동과 표면행위·내면행위 (Emotional Labor / Surface & Deep Acting)

Arlie Hochschild가 제시한 구분입니다. 감정을 숨기고 겉으로만 맞추는 표면행위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 실제 감정을 조정하는 내면행위로 나뉩니다. 이후 후속 연구들에서는 표면행위가 소진으로 이어지는 반면 내면행위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반복확인되고 있습니다. HR의 다정함이 지속 가능하려면 후자여야 합니다.
적용 예시: "참아야지"가 아니라 "이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만하다"로 프레이밍하기

3. 절차 공정성 (Procedural Justice)

John Thibaut와 Laurens Walker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사람은 결과의 유불리만이 아니라 그 결과가 정해진 과정의 공정성에 크게 반응합니다. 보상 갈등이 금액보다 납득에서 비롯되는 이유입니다.
적용 예시: 보상 안내 시 금액보다 배분 기준과 판단 맥락을 먼저 설명하기

4. MUM 효과 (MUM Effect)

Sidney Rosen과 Abraham Tesser가 1970년에 보고한 현상으로, 사람은 나쁜 소식의 전달을 꺼리고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쁜 소식이 늦게 도착하는 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편향에 가깝습니다.
적용 예시: 통보 시점을 담당자 재량에 맡기지 않고 프로세스에 못 박기

5. 절정-종점 법칙 (Peak-End Rule)

Daniel Kahneman과 Barbara Fredrickson 등의 연구로, 사람은 경험 전체가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으로 그 경험을 기억합니다. 퇴사 면담이 재직 경험 전체의 기억을 결정하는 이유입니다. 제 경험상 초두효과보다 pead-end 효과가 훨씬 강렬합니다.
적용 예시: 오프보딩 프로세스를 온보딩만큼 정교하게 설계하기


rk
Mark
#새로움 #텐션 #성장
당신에게는 늘 새로운 내일이 있고, 어제보다 성장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성장하는 당신을 응원하는 Mar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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