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에서 가장 핫했던 소식을 꼽으라면, 단연 글로벌 AI 혁명을 이끄는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내한일 것입니다. 기업 투어에 따른 주가 등락만큼이나,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또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똑똑한 사람만 뽑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특별히 눈여겨보는 게 있냐"는 질문에 대해, 젠슨 황은 깊은 여운과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지능은 상품이나 다름없습니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너무 많죠. 수많은 훌륭한 대학이 있고, 수백만 명의 훌륭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엄청난 양의 지능을 생산합니다. 지능은 이제 흔한 상품이고 어디에나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AI까지 있지 않습니까."
그가 이어서 꼽은 대체 불가능한 기준은 바로 '인간성'이었습니다. 그는 함께할 사람을 구한다면 베풀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성공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성’이란 어떠한 성질인지, 무엇을 ‘인간적이다’고 할 수 있는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무척 추상적이고 넓은 개념이지만,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인간을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학습하고 정답을 도출하는 지능의 영역을 AI가 보완해 주는 시대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한 가치를 저는 크게 세 가지로 꼽고 싶습니다.
첫째, '공감과 이타심'으로 대표되는 감정적인 요소들입니다.
둘째, '교류와 연대'로 대표되는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요소들입니다.
셋째, 명확한 정답이 없는 모호한 문제 앞에서도 주도적으로 길을 개척하는 '결정과 창조'의 능력입니다.
이는 젠슨 황이 언급했던 '베풀 줄 아는 마음', '상대의 성공을 바라고 거기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것'과 닿아있기도 합니다. 기계적인 연산으로는 결코, 최소한 아직까지는 도달할 수 없는 ‘서로를 향한 관심’, ‘방치가 아닌 동행과 연대’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인간성입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 또한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동료들의 현재 상황에 다정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리더.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을 넘어 동료들의 성장을 함께 고민하며 곁에서 보조하는 리더.
본인 스스로는 물론, 동료들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선택과 창조'를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리더.
이들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리더이자, AI 시대에 걸맞은 리더십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리더십’은 필시 ‘지속적인 소통’에 후행합니다. 타인의 성공을 돕고 창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접촉과 이해의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리더십이 조직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라는 사실은 AI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갑작스럽게 전환된 패러다임이 아닙니다. AI 혁신 이전에도 인간적인 리더십은 조직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가치였습니다. 일찍이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팀과 리더의 공통점을 추적해온, 구글의 조직문화 연구 결과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2012년부터 4년간 구글이 진행한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Project Aristotle)'는 탁월한 성과를 내는 팀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연구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뛰어난 스펙의 천재들이 모인 조합이나, 완벽한 프로세스를 그 비결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최고의 성과를 낸 팀들의 공통점 1순위는 바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었습니다. 팀 내에서 혼자 남겨지거나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의견과 질문, 걱정, 그리고 실수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적 환경이 팀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신뢰성(Dependability), 목표와 역할의 구조와 명확성(Structure & Clarity), 일의 의미(Meaning)와 영향력(Impact)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스스로와 동료, 일과 조직을 이해하고 믿는 것’으로 요약되는 해당 핵심 요소들은 결국 ‘지속적인 소통’ 후에야 비로소 탄생하고, 단단해질 수 있는 관계적 자산입니다.
구글의 또 다른 연구인 '옥시전 프로젝트(Project Oxygen)' 역시 리더십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조직에 관리자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하여, 좋은 관리자의 요건을 데이터로 밝혀냈습니다.
흥미롭게도,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구글에서 밝혀낸 '좋은 리더'의 첫 번째 조건은 뛰어난 실무 역량이나 지능이 아니었습니다. 1위는 다름 아닌 '좋은 코치(A good coach)'였습니다.
이어서 팀에 권한을 부여하고 마이크로매니징 하지 않는 것, 팀원의 성공과 성장, 행복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 그리고 경력 개발을 돕는 것이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실무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핵심 기술력 역시 중요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가장 마지막 순위에 위치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데이터와 기술을 가장 선도적으로 다루는 기업에서조차, 조직을 움직이고 성과를 폭발시키는 핵심은 '기술적 역량'이나 '정답을 꿰뚫는 지능'이 아니었습니다.
동료의 안부를 묻고, 성장을 돕고, 서로의 시행착오를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결국 '지속적인 소통과 좋은 코칭',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조직문화적 환경'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연결고리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최고의 리더십입니다.
‘인간적인 리더십’의 중요성은 AI라는 압도적 기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으며, 중요성이 커지는 속도 또한 점점 빨라질 것입니다. 일찍이 20세기에 제시되었던 코완의 역설(Cowan's Paradox), 이른바 '세탁기의 배신'이라 불리는 현상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세탁기, 청소기 같은 혁신적인 가전제품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 획기적인 발명품들이 인간을 고단한 가사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세탁 시간은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가사 노동에 들이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나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면의 원인은 꽤나 분명했습니다. 기계가 일을 수월하게 만들어준 만큼, 사람들의 '기대치'와 '기준치'가 함께 높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하던 세탁을 매일 같이 하게 되었고, 매일 옷을 갈아입으며 더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새로운 표준이 되었습니다. 기술의 진전이 무조건적인 자유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의 빈도와 강도를 높인 셈입니다.
세탁기와 AI가 완벽히 같지는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업무 환경의 변화와 꽤나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 배경이 가정에서 시장으로 넓어지고, 아우르는 노동의 범위가 비표준화의 방향으로 넓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거대한 역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AI가 닿기 어려웠던 정보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기획서 초안을 순식간에 작성해 준다고 해서 구성원들의 업무가 단순히 편안해지기만 할까요? 현실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만큼, 기업과 시장이 요구하는 기준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구성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며,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더 높은 차원의 목표를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기계가 수많은 대안과 초안을 쏟아낼수록, 인간은 몸을 가누기 어려운 속도 속에서 더 중요하고 복잡한 결정과 선택을 끊임없이 내려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에게 새로운 형태의 혼란과 극심한 번아웃을 유발하며, 조직 차원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동반하게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AI 시대에 리더의 '인간적인 역할'이 더욱 절실해지는 순간입니다. 기술이 실무를 다수 덜어준다고 해서 리더가 안심하고 뒤로 물러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속도가 빨라지고 파도가 높아질수록, 리더는 개인들과 더 많이 접촉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기계가 덜어준 실무의 빈자리를, 동료가 겪는 새로운 혼란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이 마주한 어려운 선택의 무게를 나누어 들며, '더 듣고, 더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채워야 합니다.
모든 것이 고도화되는 기술의 시대일수록, 역설적이게도 동료의 마음을 살피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가장 인간적인 리더십'만이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는 유일한 닻이 되는 것입니다.
젠슨 황은 인터뷰 말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성공을 기뻐하는 관대한 사람들을 주변에 채워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던 진행자 유재석 씨는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개인화되고 개인의 취향이 더욱 중요해지는 세상이지만, 결국 '함께'라는 가치와 함께 만드는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짧은 대화는 혼란스러운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짚어줍니다. 고도화된 AI가 내 모니터 속에서 그럴싸한 정답과 개인화된 솔루션을 제시해 주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우리는 홀로 고립되어서는 안 되며, '함께 소통’하고 ‘연대’할 때만 더 큰 성장과 성공에 닿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예측 불가능한 대격변의 시기, 우리 조직에 진정으로 필요한 리더십은 동료의 안부를 묻는 세심함, 성장을 곁에서 응원하는 관대함, 그리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맞잡는 '지속적인 소통'입니다.
지능이 흔한 상품처럼 평준화된 시대, 당신의 곁에는 타인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인간적인 리더'가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동료를 위해 기꺼이 그런 사람이 되어줄 준비가 되셨습니까?
차가운 기술이 세상을 압도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를 흔들림 없이 선두로 이끄는 것은 결국 가장 따뜻하고 인간적인 '연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