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조직에서 전 팀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주려고 애썼다. 나 스스로도 직무에서 자율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팀원들도 알아서 일을 주도해 나가길 바랐다. 주니어 팀원들이 아니기도 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그런데 늘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가끔은 팀원들과 부딪히기도 했고, 어떤 팀원들은 이 자율성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지" 물어오며, 내가 생각했던 자율성의 범위와는 다른 질문들을 던질 때도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일의 범위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건 자율성이라고 보기 어려웠지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자율성을 준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직에서 구성원에게 자율성을 줄 때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1. 구성원이 자율성을 얼마나 원하는가? (동기적 메커니즘: 특성 기반)
자율성 욕구 (Need for Autonomy): 구성원마다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다르다. 자율성을 강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자율성을 주면 신나게 일하지만, 자율성보다 명확한 지시를 더 선호하는 사람에게 자율성을 주면 오히려 스트레스받고 동기가 떨어질 수 있다.
성취 욕구 (Need for Achievement):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율성을 주었을 때 더 큰 동기를 얻을 수 있다.
2. 구성원이 자율성을 '유용하다'고 생각하는가? (동기적 메커니즘: 상태 기반)
인식된 유용성 (Perceived Utility): 구성원이 '이 자율성이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 혹시 손해가 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논문은 제시한다. 자율성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거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책임만 늘고 스트레스만 커진다고 생각하면 동기가 떨어진다고 논문은 설명한다.
팁: 자율성을 주면서 성과에 대한 보상을 명확히 하거나(예: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자율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개인적인 성장 기회를 강조하면 유용성 인식을 높일 수 있다.
자기 효능감 (Self-Efficacy): '내가 이 자율성을 가지고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자신감을 의미한다. 능숙한 베테랑은 자신감이 있으니 자율성을 원하지만, 경험 없는 신입은 불안해서 명확한 지시를 더 선호할 수 있다.
팁: 충분한 훈련, 명확한 피드백, 롤모델 제시 등을 통해 구성원의 자신감을 높여준 후에 자율성을 주는 것이 좋다.
3. 구성원이 상사보다 해당 업무를 더 잘 아는가? (정보적 메커니즘)
정보 비대칭 (Information Asymmetries): 과업을 직접 수행하는 구성원이 상사보다 그 일에 대한 더 많고 정확한 정보(노하우, 최신 기술 등)를 가지고 있을 때 자율성을 주면 성과가 향상된다고 논문은 설명한다. 구성원이 자신의 고유한 지식을 활용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팁: 구성원이 가진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면, 무턱대고 자율성을 주기보다는 정보 공유를 통해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우선이다.
4. 업무가 얼마나 복잡한가? (정보적 메커니즘: 조절 변수)
과업 복잡성 (Complexity of the Task): 일이 복잡할수록 자율성 부여로 인한 (인지적 분산)이 커질 수 있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즉,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지적 자원이 분산되어 일의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팁: 복잡하거나 실수가 치명적인 업무(예: 안전 관련 업무)의 경우, 자율성 부여가 오히려 성과를 해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5. 업무가 다른 팀원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 (구조적 메커니즘: 과업 상호의존성)
과업 상호의존성 (Task Interdependence): 업무가 다른 팀원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즉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인지를 나타낸다.
팁:
상호의존성이 낮을 때 (독립적 업무): 각자 독립적으로 일해도 되는 업무(예: 개인별 보고서 작성)에는 자율성을 많이 주면 좋다고 논문은 제안한다. 구성원이 자신의 방식대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성이 높을 때 (협력적 업무): 서로의 업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업무(예: 개발 프로젝트, 생산 라인)에는 무작정 자율성을 많이 주면 (프로세스 손실)이 커진다고 논문은 설명한다. 즉, 각자 자기 맘대로 움직이다가 엇박자가 나고 전체 팀워크가 깨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경우에는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팀 전체의 조율과 협력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6. 업무 내용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구조적 메커니즘: 과업 가변성)
과업 가변성 (Task Variability): 업무 내용이나 절차가 얼마나 자주 바뀌고, 예외적인 상황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를 나타낸다.
팁:
가변성이 높을 때 (변화무쌍한 업무): 새로운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정해진 절차가 없는 업무(예: R&D, 스타트업의 신규 사업)에는 자율성이 필수적이라고 논문은 강조한다. 구성원이 스스로 판단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효율적인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변성이 낮을 때 (반복적인 업무): 절차가 명확하고 반복적인 업무(예: 단순 데이터 입력, 생산직)에는 자율성의 필요성이 낮다고 논문은 언급한다. 자율성이 없어도 성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7. 조직 내 규칙과 절차가 얼마나 엄격한가? (구조적 메커니즘: 공식화)
공식화 (Formalization): 조직에 정해진 규칙, 절차, 매뉴얼 등이 얼마나 많고 엄격한지를 나타낸다.
팁:
공식화가 낮을 때 (유연한 환경): 규칙이 적고 유연한 조직에서는 자율성을 주었을 때 구성원이 새로운 방법을 탐색하고 성과를 낼 기회가 많다고 논문은 설명한다.
공식화가 높을 때 (엄격한 환경): 규칙과 절차가 매우 엄격한 조직(예: 공공기관, 대기업의 특정 부서)에서 자율성을 무리하게 주면, 구성원이 규칙을 위반하게 되어 불이익을 받거나(예: 징계) 동기가 저하될 수 있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율성보다는 명확한 지침과 규칙 준수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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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이전 조직은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공식화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일을 진행하려면 리더와 여러 차례 논의해야 했고, 그래서인지 그 조직에서는 '싱크(Sync)', '얼라인(Align)', '컨센서스(Consensus)' 같은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이해관계 부서가 있다면 사전에 충분한 논의가 필수적이었고, 공식 회의나 미팅을 진행하기 전에는 해당 부서의 리더나 책임자에게 비공식적인 루트로 미리 언질(Heads-up)을 주는 것도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었다.
이렇다 보니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다른 조직에서는 금방 실행될 만한 일조차도, 이전 조직에서는 여러 차례 검토하고, 논의하고, 합의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다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파급력이 큰 일이라 신중함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리더의 지나친 분주함으로 인해 적시에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제대로 된 권한 위임(Empowerment)이 부족했다. 리더는 자신의 지위에 비해 중요도가 낮은 의사결정(예: 교육 공지문 디자인)까지도 자신을 거치지 않으면 매우 불편해했다.
더 나아가, 내 직속 리더는 자신을 건너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