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느려지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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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느려지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람이 늘면 왜 일이 느려지는지, 그리고 AI는 그 계산을 어떻게 바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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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
조성민Jul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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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굴러가던 조직이 어느 시점부터 느려진다. 예전 같으면 2주면 끝났을 일이 두 달을 끌고, 회의는 늘었는데 유효한 의사 결정은 줄어든다. 이럴 때 조직은 대개 사람(범인)을 찾는다. 저 팀장이 문제인가, 저 사람 역량이 부족한가, 요즘 사람들이 예전 같지 않은가.

그런데 아무도 잘못하지 않아도 조직은 느려진다는 설명이 있다. 구글에서 크롬 웹플랫폼을, 이후 스트라이프에서 기업전략을 맡았던 알렉스 코모로스케(Alex Komoroske)가 2021년에 공개한 「Coordination Headwind」다. 우리말로 옮기면 조직이 커질 때 맞바람처럼 따라붙는 조율 비용쯤 된다. 이 자료는 조직이 느려지는 이유를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문제로 설명한다.

뇌가 없는 생물이 만든 노선도

이 자료는 조직을 점균에 빗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점균은 뇌도 신경도 없는, 아메바에 가까운 생물이다. 누가 지시하지 않는데 개체 하나하나가 먹이를 향해 뻗어나가다 보면 짧고 튼튼한 경로만 남는다.

2010년 사이언스에 실린 실험이 이 성질을 보여준다. 일본과 영국 연구팀이 도쿄 주변 도시의 위치에 맞춰 먹이 36개를 놓고 이 생물을 키웠더니,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다듬어온 실제 도쿄 철도망과 비용도 효율도 견줄 만한 망이 만들어졌다. 코모로스케가 이 실험을 첫머리에 끌어온 이유는 조직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조직도에는 위아래가 그려져 있지만, 실제 일은 각자 알아서 판단하며 굴러간다.

각자 99%씩 해내도 열 명이면 90%가 된다

저자는 조직이 느려지는 이유를 곱셈으로 설명한다.

열 사람의 몫이 모두 채워져야 끝나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자. 각자가 99퍼센트의 확률로 제 몫을 해낸다 해도, 0.99를 열 번 곱하면 90퍼센트다. 열 명 모두 거의 완벽한데 프로젝트는 열 번에 한 번 어긋난다.

여기에 조건 하나만 나빠져도 숫자는 빠르게 떨어진다. 내가 들인 노력이 어떤 평가로 돌아올지 불확실해 각자의 확률이 95퍼센트로 내려가면 전체는 60퍼센트가 된다. 여러 일을 맡아 우선순위를 계속 바꿔야 해서 90퍼센트가 되면 35퍼센트까지 내려간다.

한 사람의 확률이 99%에서 95%, 90%로 내려갈 때 열 명의 결과

사람 열 명이 모이면 챙길 관계가 45개다

사람이 한 명 늘 때 실제로 늘어나는 것은 사람 수가 아니라 챙겨야 할 관계의 수다. 열 명이면 두 사람씩 짝지을 수 있는 경우가 45가지다. 저자는 이 숫자가 사람 수의 제곱에 가깝게 늘어난다고 말한다.

조직도상의 거리도 영향을 준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문제가 생길 확률은 한 층 멀어질 때마다 그 이상으로 뛴다. 다른 본부와 맞추는 일이 옆자리 동료와 맞추는 일보다 훨씬 자주 어긋나는 이유다.

여기에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겹친다. 남이 늦으면 그 사람이 문제라고 보고, 자기가 늦으면 상황이 문제라고 본다. 다툼을 줄이려고 중간에 관리자를 세우면 이번엔 관리자들 사이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 층이 하나 늘 때마다 문제를 위로 올리는 데 드는 부담이 커지고, 문제를 꺼낸 사람이 책임까지 지게 되면 모두가 문제를 덮기 시작한다.

그래서 저자는 흔히 쓰는 두 가지 방법을 오히려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쪽으로 본다. 한 명이 영웅처럼 밀어붙여 막힌 곳을 뚫는 방식과, 위에서 통제를 더 얹는 방식이다. 앞은 그 사람이 지치는 순간 무너지고, 뒤는 결정 하나에 동의받을 곳만 늘린다.

저자가 권하는 것은 팀을 작게 유지하고, 위에서 끼어드는 횟수를 줄이고, 3~5년짜리 방향을 정해둔 뒤 안전한 한 걸음씩 반복하게 두는 쪽이다. 리더는 지시하는 대신 각자 일할 조건을 만든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는 것이 이 자료의 결론이다.

AI는 이 계산의 어느 부분을 바꾸는가

여기까지가 5년 전 자료의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이 계산에서 연결선이 사람 수의 제곱으로 늘어난다는 부분이 AI에서는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한다.

2026년 2월 공개된 「The Headless Firm」(arXiv:2602.21401)이 대표적이다. 이 논문은 사람이나 부서가 서로 직접 맞물릴 때는 맞춰야 할 것이 제곱으로 늘어나지만, 정해진 규약으로만 주고받는 AI 사이에서는 그 수가 사람 수만큼으로 줄어든다고 본다. 저자들은 이 때문에 회사를 크게 유지할 이유가 줄고, 변화가 빠른 분야일수록 조직이 잘게 나뉠 것으로 예측한다. 다만 이 논문은 측정 결과가 아니라 수식으로 세운 모형이고 검증은 아직 남아 있다.

서로 직접 맞물릴 때는 45개, 정해진 방식을 거치면 10개

관리 범위는 이미 넓어지는 중이다. 갤럽이 확인하는 관리자 한 명당 인원은 2013년 첫 측정 이후 약 50퍼센트 늘어 2025년 12.1명이 됐다. 가트너는 2026년 7월, 소규모 개발팀을 전사에 도입한 회사가 15퍼센트에서 2029년 60퍼센트로 늘 것으로 봤다. 가트너가 말하는 작은 팀은 보통 네댓 명이다. 다만 같은 자료는 AI가 소프트웨어 인력 수요를 늘린다고도 봤다.

2025년 11월 공개된 「AI Spillover is Different」(arXiv:2511.02099)는 미국 기업 1만 6천여 곳의 경력 기록 4억 6천만 건을 봤다. AI 인재를 뽑았을 때 회사 전체 생산성이 오르는 폭은 과거 IT 인재의 두세 배였는데, 조건이 붙었다. 관리 계층이 얇고 린 스타트업 방식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을 뽑았을 때만 그 효과가 나타났다. 저자들은 그런 회사가 여러 일을 두루 하는 사람을 길러내기 때문으로 본다.

AI끼리 두면 잘될 것 같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답은 하나로 보일 수 있다. 관리 계층을 줄이고 팀을 작게 만들면 된다.

2026년 4월 공개된 「OrgAgent」(arXiv:2604.01020)는 여러 AI에게 일을 나눠 시킬 때 회사 조직도를 그대로 붙여봤다. CEO·CTO 같은 결정 역할, 초안을 쓰고 검토하는 실행 역할, 규정을 보는 역할로 층을 나눴다. 모든 AI를 같은 층에 두고 자유롭게 주고받게 했을 때와 비교하니, 표준 시험 하나에서는 정확도가 두 배 넘게 올랐고 토큰 비용은 절반 안팎에서 8할까지 줄었다. 사람 조직에서 문제로 지목됐던 위아래 구조가 AI 쪽에서는 오히려 나은 결과를 냈다.

실패하는 이유도 익숙하다. 버클리 연구팀이 일곱 개 도구를 표준 시험 과제에 돌려 얻은 실행 기록 1,642건을 분석한 연구(arXiv:2503.13657)에서 실패율은 41퍼센트에서 86.7퍼센트에 이르렀다. 두 번째로 큰 원인이 AI들끼리 서로 다른 전제로 움직인 것으로 전체의 37퍼센트였다. 지시가 불분명하고, 서로 어긋나고, 검토가 부실해서 일이 틀어진다.

물론 이 결과를 사람 조직에 그대로 가져와 "AI 시대에도 위아래가 있어야 한다"고 읽는 것은 지나치다. OrgAgent가 다룬 것은 AI에게 어떤 역할을 지정해 줄지의 문제이지 사람의 보고 체계가 아니다. 앞의 「The Headless Firm」이 수식으로 세운 예측인 데 비해 이쪽은 실제로 돌려본 결과다.

그래도 사람끼리 맞추느라 들던 시간이 줄어든 만큼, 사람과 AI 사이에서 맞춰야 할 일이 새로 생긴다. 그러면 이 자료가 지적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막힌 곳을 한 사람의 분투로 뚫던 조직이, 이제 그 자리에 AI를 앉힌다.

HR이 확인해 볼 것

1. 일이 늦어진 이유를 사람에게서만 찾으면 틀릴 수 밖에 없다.

열 명이 각자 99퍼센트로 일해도 열 번에 한 번은 어긋나는데, 그 한 번을 놓고 조직은 대개 담당자를 찾는다. 부서 간 조율 때문에 밀린 일정이 개인의 성과 미달로 기록되고, 그 기록이 다음 해 평가와 배치를 정한다. 우리 평가 제도는 조율 때문에 늦은 것과 개인이 못한 것을 구분해 적을 수 있는가. 구분할 칸이 아예 없다면 앞으로도 계속 사람 탓으로 남는다.

2. 사람 수로 규모를 키우던 방식이 흔들린다.

조직을 크게 만든 이유는 단순하다. 큰일을 하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 AI가 맞추는 일을 일부 대신 하면서 인원과 성과가 나란히 늘어야 한다는 전제가 흔들린다. 총원을 줄이라는 말은 아니다. 앞서 본 가트너도 인력 수요 자체는 늘어난다고 봤다. 바뀌는 것은 내년 인력 계획을 세울 때 쓰는 기준이다. 몇 명 더 뽑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이 일을 사람으로 할 것인가 AI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하나 더 붙는다.

3. 사람끼리 줄어든 조율은 사람과 AI 사이에서 다시 생긴다.

관리 계층을 없앤다고 조율할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중간 관리자가 하던 조율은 남은 사람에게 넘어간다. 콘페리의 2025년 글로벌 조사에서 관리 계층이 줄었다는 응답이 41퍼센트였고, 리더들이 서로 방향을 맞추지 못한다는 응답도 43퍼센트였다. 관리자 한 명이 맡는 인원이 12명을 넘고 거기에 AI까지 붙으면, 그 자리는 챙길 것이 훨씬 많은 자리가 된다. AI를 몇 개 도입했는지보다 그 뒤에 누가 무엇을 더 맡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마무리

뇌가 없는 생물이 철도망에 견줄 만한 망을 만든 실험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 생물의 능력이 아니다. 연구팀이 한 일은 먹이를 놓고 빛으로 지형을 흉내 낸 것뿐이다. 조건을 깔아두자 길이 생겼다.

사람을 많이 뽑아야 큰일을 할 수 있던 조건이 바뀌는 중이라면, 조직이 내세울 것도 사람 수보다는 각자 알아서 판단할 수 있게 깔아둔 조건 쪽이다. 다만 리더가 할 일이 줄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하던 질문을 이제 AI에게도 해야 하니 오히려 늘었다. 어디까지 정해주고 어디부터 알아서 하게 둘 것인가. 사람에게도 AI에게도 같은 질문이고, 지금 이 질문에 답을 갖고 있는 조직은 아직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 Alex Komoroske, Coordination Headwind — How Organizations Are Like Slime Molds, 2021.

  • florent, 「조직 체계화의 역풍: 조직은 곰팡이와 같다」, 브런치, 2024.

  • Tero et al., Rules for Biologically Inspired Adaptive Network Design, Science 327(5964), 2010-01-22.

  • Klein & Wieczorek, The Headless Firm: How AI Reshapes Enterprise Boundaries, arXiv:2602.21401, 2026.

  • Wang, Feng & Sun, AI Spillover is Different: Flat and Lean Firms as Engines of AI Diffusion and Productivity Gain, arXiv:2511.02099, 2025.

  • Wang, Shen, Han, Backes, Chen & Ho, OrgAgent: Organize Your Multi-Agent System like a Company, arXiv:2604.01020, 2026.

  • Cemri et al., Why Do Multi-Agent LLM Systems Fail?, arXiv:2503.13657, NeurIPS 2025.

  • Gallup, Span of Control: What's the Optimal Team Size for Managers?, 2026-01-13.

  • Korn Ferry, Workforce 2025: Power Shifts, 2025-04.

  • Gartner, Gartner Predicts 60% of Organizations Will Adopt Smaller Software Engineering Teams by 2029,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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