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고객경험은 직원에게서 시작된다

좋은 고객경험은 직원에게서 시작된다

고객경험(CX)과 직원경험(EX)이 만나는 지점
조직문화전체
오윤
오윤Aug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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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약국에 들렀다. 필요한 약 몇 가지를 사고 간단히 인사만 하고 나올 생각이었다. 방해가 될 수 없으니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목이 뻐근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러자 약사는 몇 가지 제품을 꺼내 각각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평소에는 어떻게 관리하면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궁금한 것을 몇 가지 더 물었고,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잠깐 들렀다 나올 생각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약국을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예상보다 더 그곳에 머물렀을까.

 

물론 궁금한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요한 제품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내가 이야기한 불편함을 듣고, 그에 맞는 정보를 하나씩 설명해 주는 과정에서 약을 사고파는 것 이상의 경험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제품은 다른 약국에서도 살 수 있다. 가격에도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곳은 필요한 것만 사고 바로 나오게 되고, 어떤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나 더 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곳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경영학의 마케팅에서는 이러한 고객경험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게 되는 순간부터 구매하고 사용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도 어떤 경험을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객이 기업이나 브랜드와 만나는 여러 순간이 쌓여 결국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HR에서 일하면서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 장면을 생각하게 됐다.

 

그 고객경험을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품 자체였을까. 매장 분위기였을까. 아니면 잘 만들어진 서비스 매뉴얼이었을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날 내가 경험했던 것은 결국 한 사람의 행동에서 시작됐다.

 

고객의 말을 조금 더 듣고, 필요한 것을 하나 더 설명하고, 질문에 답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하는 행동이다.

 

이런 행동은 생각보다 조직에서 중요하다.

 

회사가 직원에게 요구하는 과업에는 일정한 범위가 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지켜야 할 절차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을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정해 놓은 매뉴얼도 있다.

 

하지만 실제 고객이 경험하는 서비스의 차이는 매뉴얼의 문장 몇 줄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같은 질문을 받아도 누군가는 필요한 답만 하고 대화를 끝낸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객이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한 번 더 묻는다. 같은 업무를 맡아도 누군가는 정해진 범위까지만 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조금 더 활용한다.

 

둘 다 자신의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고객이 느끼는 경험에는 분명 차이가 생긴다.

 

직원은 언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보다 한 걸음 더 움직이게 되는 것일까.

성과급을 많이 주면 그렇게 될까. 친절교육을 자주 실시하면 가능할까. 고객 만족도 점수를 인사평가에 반영하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고객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일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의미 있다고 생각할 때 조금 더 움직이기도 한다.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알고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보다 책임부터 묻는 조직에서는 굳이 주어진 일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고객경험과 HR이 만난다.

우리는 흔히 고객경험(CX, Customer Experience)직원경험(EX, Employee Experience)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생각한다.

 

보통 고객경험은 마케팅이나 영업 분야이고, 직원경험은 HR 분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직의 현업에서 둘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직원이 조직 안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순간은 결국 직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상사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지, 노력한 만큼 인정받는다고 느끼는지, 업무를 수행하면서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는지, 실수를 했을 때 무조건 책임부터 묻는지 아니면 함께 해결책을 찾는지와 같은 경험들이다.

 

이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 직원이 조직을 바라보는 태도가 된다. 그리고 그 태도는 다시 고객을 대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고객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이다.

 

조직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직원에게 고객 존중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직원이 행복하다고 해서 반드시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경험이 좋으면 고객경험도 좋아진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도 다소 억지스럽다.

 

기업의 경쟁력에는 좋은 제품이 필요하고, 가격도 중요하다. 기술도 필요하고 마케팅 전략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다만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면, 그 경험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조직 안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HR과 마케팅은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처럼 보인다. HR은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을 바라본다. 즉, 적합한 인재를 채용하고,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평가·보상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에 반해 마케팅은 조직 밖에 있는 사람을 바라본다. 고객이 중심이 되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제품과 서비스를 알리고, 선택하게 만들고, 다시 찾도록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두 분야가 고민하는 문제에는 닮은 점이 많다.

 

사람들은 왜 이곳을 선택하는가.

왜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가.

어떤 경험을 했을 때 다시 찾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리고 어떤 순간에 마음을 돌리고 떠나는가.

 

대상이 직원인지 고객인지가 다를 뿐이다.

 

좋은 인재가 한 회사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과 고객이 하나의 브랜드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 직원이 조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일하고 싶게 만드는 것과 고객이 다시 제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른 현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결국 사람의 선택과 경험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채용에서도 기업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과거에는 회사가 지원자를 평가하는 것이 채용의 중심이었다면, 이제 지원자 역시 회사를 평가한다. 채용공고와 홈페이지를 꼼꼼히 보고,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현직자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면접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도 기억한다.

 

채용 과정에서의 작은 경험 하나가 입사 여부를 결정하기도 하고, 입사하지 않은 사람에게조차 그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남긴다.

 

이 지점에서는 채용과 마케팅의 경계도 조금씩 흐려진다. 마케팅이 고객에게 선택받기 위한 활동이라면, 채용 역시 좋은 인재에게 선택받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원이 회사에 입사한 순간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된다.

 

회사는 직원에게 계속해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첫 출근 날 어떤 환영을 받았는지, 처음 만난 상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신의 의견을 얼마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지, 열심히 일했을 때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조직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이런 순간들이 쌓여 직원에게 그 조직이 어떤 곳인지 인지시켜준다.

 

고객 역시 비슷하다. 처음 광고를 본 순간부터 제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문제가 생겨 고객센터에 문의하고, 다시 구매하기까지의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그 조직이 어떤 곳인지 판단하게 된다.

 

결국 조직은 안과 밖에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HR과 마케팅이 바라보는 방향도 지금보다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날 약국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거창한 서비스가 아니었다. 고객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조금 더 설명해 준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개인의 친절이나 성향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직원의 행동 뒤에는 그 사람이 가진 전문성도 있고, 일에 대한 태도도 있고, 그동안 조직에서 경험해 온 수많은 순간도 있다. 그래서 좋은 고객경험을 만들고 싶다만 고객만 바라봐서는 부족할 수도 있다. 그 경험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직원이 조직 안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고객경험은 고객에게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먼저, 직원의 경험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윤
오윤
조직행동을 연구하며 사람과 조직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HR분야에서 사람과 조직을 경험하며, 조직행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다양한 사례를 연구와 연결해 조직문화, 리더십, 구성원의 행동을 주제로 꾸준히 기록해 왔습니다. 사람의 성장이 조직의 성과로 이어지고, 건강한 조직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믿음으로 일터에서 마주하는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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