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면담을 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순간이 옵니다.
떠나는 이유를 묻는데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만도 없고 사건도 없고 섭섭한 일도 없답니다.
그냥 좋은 제안이 와서 간다고 합니다.
예전 회사에서 그런 팀장 한분을 보냈습니다.
그 팀은 회사에서 제일 조용한 팀이었습니다.
민원이 올라온 적이 없고 사람이 나간 적이 없고 다른 팀과 부딪힌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팀장에 대해 회사가 아는게 별로 없었습니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할 사건이 없었으니까요.
떠나고 반년이 지났을 때 그 팀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나갔습니다.
그다음 달에 다른 팀과 처음으로 부딪혔습니다.
그해 말에는 그 팀 이야기가 임원 회의에 올라갔습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올라간 적 없던 팀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그 팀이 조용했던 건 아무 일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일이 생기기 전에 누군가 치우고 있었던 겁니다.
조직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사건이 있어야 기억합니다.
밤늦게까지 남아서 터진 일을 수습한 사람은 다음 날 아침 전사에 이름이 돕니다.
대표가 직접 고맙다고도 합니다.
연말 평가에 그 사건이 한줄이 아닌 여러줄로 적힙니다.
그런데 그 일이 애초에 터지지 않게 한 사람은 이름이 돌 사건 자체가 없습니다.
적을 한줄조차 없습니다.
저도 평가 양식을 정말 많이 보고 만들어 봤습니다.
보통 성과를 적고 해결한 문제를 적습니다.
막은 문제를 적는 칸은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저조차도 넣으려고 해도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기지 않은 일은 증명이 안 됩니다.
그래서 조직은 불 끄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듭니다.
불이 안나게 한 사람은 그냥 운이 좋은 팀장이 됩니다.
저 팀은 사람 복이 있다. 저 팀은 원래 일이 수월하다.
그 팀장이 매일 하는 일이 그렇게 운으로 번역됩니다.
그 팀장이 실제로 뭘 했는지는 떠난 뒤에 팀원들한테 들었습니다.
누가 요즘 말수가 줄었다 싶으면 일 핑계로 불러서 밥을 먹었답니다.
두 팀원이 서로 안 맞는걸 알고는 같은 프로젝트에 넣지 않았답니다.
위에서 무리한 일정이 내려오면 팀에 전달하기 전에 먼저 올라가서 깎아 왔답니다.
다른 팀이 서운해할 만한 일은 미리 찾아가서 설명해뒀답니다.
전부 결과가 같은 일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음.
이런 일은 보고서에 안 들어갑니다.
주간 업무 보고에 팀원 둘을 떼어놓았다고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쓴다고 해도 읽는 사람은 그게 뭘 막았는지 모릅니다.
막힌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팀장일수록 보고가 짧습니다.
보고할 사건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보고가 짧은 팀장은 회의실에서 존재감이 작습니다.
요즘 그 팀은 뭐 하나? 라는 말이 가끔 나옵니다. 칭찬이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안 보이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팀장이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닙니다. 안에서 안 보일 뿐입니다.
밖에서는 다르게 보입니다.
같은 업계 사람들은 그 회사에서 어느 팀이 사람이 안나가는지 압니다.
거래처는 어느 팀장이 일정을 지키는지 압니다.
전에 그 팀에 있다가 이직한 사람들은 새 회사에서 그 팀장 얘기를 합니다.
거기는 팀장이 좋아서 다닐 만했다고요.
조직 안에서 사건이 없다는 이유로 평가가 안된 사람이
조직 밖에서는 사건이 없다는 이유로 평판이 쌓입니다.
똑같은 사실이 안에서는 운이고 밖에서는 실력입니다.
그래서 제안은 밖에서 먼저 옵니다.
회사가 이 사람의 가치를 계산하기 전에 경쟁사가 먼저 계산을 끝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요란하게 떠나지 않습니다.
불만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니까요.
퇴사 면담에서 할 말이 없는 이유가 그겁니다.
조용히 사라진 게 아닙니다. 조용했기 때문에 사라진 겁니다.
막을 방법이 있냐고 묻는다면 완전히는 없습니다.
생기지 않은 일을 세는 제도는 아직 못 만들었습니다.
다만 늦게 알아차리는 걸 조금 앞당기는 방법은 있습니다.
성과를 적는란에 하나의 예시를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올해 무엇을 해결했습니까 옆에 올해 무엇이 생기지 않았습니까를 넣어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다들 빈칸으로 낼겁니다.
몇번 묻다 보면 팀장들이 자기가 매일 하는 일 중에
뭐가 예방이었는지 세기 시작할겁니다. 세기 시작하면 보입니다.
팀장이 바뀐 팀은 6개월 뒤에 다시 봅니다.
이직률 민원 다른 팀과의 마찰. 전임자가 있을 때와 비교해서 뭐가 늘었는지 봅니다.
늘어난 만큼이 전임자가 막고 있던 양입니다.
떠난 뒤에라도 그 사람의 성과를 숫자로 복원해두면 다음에는 같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조금 생깁니다.
그리고 조용한 팀의 팀장에게 먼저 갑니다.
인사팀은 보통 시끄러운 팀에 갑니다.
문제가 있는 곳에 가는 게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몇 년째 아무 일 없는 팀이 있다면
그 팀장은 지금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고 누구보다 적게 들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가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문제가 없어서 가는 면담이 하나쯤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팀장에게 제가 뭐라고 했었는지 떠올려봤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가 고마운지는 말한 적이 없습니다.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질문 두 개를 남겨봅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팀에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건 누구 덕이었나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해준 적이 있나요?
말해주지 않으면 그 말은 다른 회사에서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