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월, 전사 회의에서 공유되지만 누구의 가슴도 뛰게 하지 못하는 숫자,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비즈니스와 멀어진 지표. 나는 그것을 '죽은 KPI'라 부른다. AI로 인해 환경이 급속도로 변하는 지금, 어제까지 유효했던 지표는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유의미했던 지표라도 시간이 지나면 효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더는 늘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관리해야 할 지표'가 무엇인지 세심하게 정의하고 소통해야 한다. 특히, 새해의 '첫 번째 전체 회의'와 '목표 공유'는 중요하다. 현재 상태를 조망하는 '거울'이자, 앞으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시리즈 A부터 D까지, B2C에서 B2B까지 다양한 스타트업을 거치며 목표 설정과 관리에 따라 조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B2C와 B2B 비즈니스는 고객의 구매 결정 과정과 만족을 경험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집중해야 할 KPI도 다르다. 오늘은 비즈니스 맥락에 따라 지표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그리고 무미건조한 숫자에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표가 생명력을 잃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비즈니스의 '맥락'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2C와 B2B는 고객이 우리를 선택하는 이유도, 수익을 내는 구조도 완전히 다르다. 살아있는 지표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우리 비즈니스의 본질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이직을 할 때마다, 가장 두드러지게 보였던 차이다.
1) B2C 비즈니스의 특징
B2C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구매 주기'가 짧고 '전환율'과 '편의성'이 중요하다. 즉,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Traffic), 얼마나 효율적으로 구매하고(CAC), 다시 돌아오는가(Retention)가 핵심이다. 과거 쿠팡이 '원클릭' 구매 기능을 선보였을 때, 그 속도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과거 B2C 회사에서는 전환율을 높이기 위해, "시간 내에 구입해야 할인된다"는 식의 긴박감 부여 전략이 주를 이뤘다.
B2C 주요 KPI
- ROAS (광고비 대비 매출액): 마케팅 효율성을 측정
- CAC (고객 획득 비용): 한 명의 고객을 데려오기 위해 쓰는 비용
- Conversion Rate (전환율): 방문자가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
- Retention Rate (재방문/재구매율): 충성도를 보여주는 지표
2) B2B 비즈니스의 특징
반면, B2B는 기업 간 거래이기에 의사결정 단계가 다층적이며, 결정 기간도 길다. 따라서, 단순한 '트래픽'이나 '구매 편의성'은 허영 지표에 가깝다. 그보다는 담당자와의 '관계'나 '제품 신뢰도'가 더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리드 퀄리티"나 'LTV(고객 생애 가치)', 'NRR(순매출 유지율)' 등이 비즈니스 성장을 증명한다. B2B는 특히 고객 획득 비용이 높기 때문에, 한 번 확보한 고객을 오래 유지하고, 계약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대략 20:80의 파레토 법칙이 작동했다. 일부 대형 기업이 큰 매출을 만들지만 대응이 복잡하고, 그렇다고 소규모 롱테일을 놓칠 수는 없는 이중의 어려움도 존재한다.
B2B 주요 KPI
- MQL/SQL (마케팅/영업 적격 리드): 구매 가능성이 높은 잠재 고객의 수
- ACV (연간 계약 가치): 한 계약당 발생하는 평균 매출
- LTV (고객 생애 가치): 계약한 고객이 이탈 전까지 가져다주는 총수익
- Churn Rate (이탈률): 브랜드 충성도를 보여주는 지표
정리하자면, B2C는 유입 트래픽 및 구매 전환에 사활을 걸고, B2B SaaS는 고품질 리드 확보 및 고객 이탈을 막는데 집중한다. 이렇게 비즈니스와 얼라인된 KPI는 일의 시작이며, 그렇게 지표를 설정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많은 조직이 실제 운용 과정에서 그 숫자를 '죽은 상태'로 방치하기 때문이다. 지표를 관리하며 반드시 경계해야 할 함정은 무엇일까? 다음 장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다뤄보려 한다.
지표가 '죽었다'는 것은 더 이상 조직의 의사결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뜻이다. 특히 측정하기 쉬운 것만 측정하거나, 숫자의 이면에 숨겨진 '퀄리티'를 놓칠 때 KPI는 독이 되어 돌아온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리더는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1) '허영 지표(Vanity Metrics)'를 경계하고 '쌍'을 묶어 관리한다
앤디 그로브는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에서 상충되는 지표를 한 쌍으로 묶어 관리하라고 조언한다. 단순히 양적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는 기분을 좋게 하지만, 비즈니스의 진정한 상태를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2C에서 공격적인 할인을 통해 '판매량'을 높였다면, 반드시 'ROAS'나 '반품률'을 함께 봐야 한다. 판매량은 늘었으나 수익성이 악화되었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미래를 팔아 현재를 채우는 행위'일 수 있다. HR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입사자 수'라는 숫자에 매몰되면 안 된다. 그들이 조직에 안착해 성과를 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1년 내 리텐션'이나 '성과 평가 결과'를 함께 보며 채용의 밀도를 점검해야 한다.
2) 지표 간의 상충 관계(Trade-off)를 이해한다.
모든 지표는 연결되어 있고, 하나를 강조하면 다른 하나는 희생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B2B 영업 팀이 '신규 계약 건수'에만 몰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제품과 맞지 않는 고객까지 무리하게 유치하게 되고, 이는 곧 운영의 과부하와 제품의 복잡화, 'Churn Rate(이탈률)'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리더는 이 상충 관계를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조직의 전략이 '매출 성장'에 있는지 '이익 창출'에 있는지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해, 구성원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B2C 상충되는 지표 예시
- 매출액 ↔ 매출 총 이익률: 할인 쿠폰으로 매출은 급증했지만, 실제론 손해를 보고 있지는 않은가?
- 광고 도달 범위 ↔ 구매 전환율: 대량의 유입을 만들었지만, 허수 고객만 들어온 것은 아닌가?
- 앱 다운로드 수 ↔ 첫 주 삭제율: 혜택만 받고 앱을 지우는 '체리 피커'들을 위해 과도한 비용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B2B 상충되는 지표 예시
- 신규 계약 수 ↔ 고객 획득 비용(CAC): 계약은 많이 따냈지만, 비효율적인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 제품 업데이트 횟수 ↔ 고객 지원 요청 건수: 새로운 기능을 배포하고 있지만, 정작 사용자들은 더 혼란스럽고 운영 비용이 높아지지 않은가?
- 무료 체험 수 ↔ 유료 전환율: 무료 체험 고객이 늘었지만, 기꺼이 유료 계약까지 도달할 준비가 되었는가?
연초에 설정한 목표나 KPI가 전사 공유되었다면, 이제 리더가 해야 할 일은 그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맥락을 입히는 것이다. "올해 우리 목표는 매출 2배 상승입니다."와 "우리의 통합 서비스가 고객사에 깊숙이 뿌리내려, 기존에 불가능해 보였던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 결과가 매출 2배로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전혀 다른 에너지를 준다.
1) 숫자를 '매력적인 서사'로 바꾸는 프레임워크, PRFAQ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숫자에 강한 리더는 서사에 약하고 서사에 강한 리더는 숫자에 약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죽은 KPI를 살려내려면 이 두 가지를 연결해야 한다. 이때 유용한 도구가 바로 아마존에서 활용하는 'PRFAQ(Press Release & FAQ)'이다. 미래의 보도자료를 미리 써보는 이 방식은, 우리가 달성하려는 KPI가 고객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숫자와 서사가 모두 명확할 때, 구성원들은 비로소 목표를 향해 조금씩 발을 움직일 수 있다.
B2B SaaS PRFAQ 예시
"올해 우리 목표는 'NRR 120%'입니다" VS "내년 이맘때, 고객사 담당자들은 우리 제품 덕분에 퇴근 시간이 1시간 빨라졌다는 감사 인사를 보내올 것입니다. 그 결과가 우리의 매출 성장으로 증명될 것입니다"
2) AI로 상상력을 시각화한다.
만약, 숫자를 이야기로 바꾸는 과정이 막막하다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길 권한다. 우리 비즈니스의 맥락과 올해 목표와 핵심 지표를 입력하고 "이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고객이 겪을 변화를 PRFAQ 형식으로 작성해 줘"라고 요청해 보자. 꽤 훌륭한 초안이 만들어진다.
더 나아가 나노바나나와 같은 이미지 생성 AI를 활용해 우리 서비스가 고객 일상에 스며든 장면을 이미지로 구현해 볼 수도 있다.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들이 도달해야 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AI가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리더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에 집중하기에 너무 좋은 시기다.
비즈니스 속성에 따라 관리해야 할 지표는 제각각이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지표는 구성원을 옭아매는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우리 조직이 더 나은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대화와 소통의 도구'여야 한다.
리더는 지표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나침반을 통해 우리가 도달할 미래를 선언해야 한다. 비즈니스 맥락을 기반으로, 상충하는 목표를 고려하며, 의미 있는 서사를 입히는 순간, 죽어 있던 KPI는 비로소 살아 움직이며 조직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목표 설정으로 고심하는 모든 리더와 HR 담당자들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