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사담당자로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연혁이 오래된 제조업 회사였다.
1층 로비의 쇼룸에는 세계지도를 배경으로 기업의 핵심 가치와 비전, 슬로건 적혀있었고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인사제도와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당장에 필요한 업무들도 많았지만 대체로 탑-다운으로 내려온 업무들은 큰 규모에 긴 결재라인만큼 장기간 준비하고, 또 장기간 운영하며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처음으로 이직한 스타트업은 30명이 남짓한 IT회사로 나는 첫 인사팀의 단 한명뿐인 인사담당자로서 새롭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후, 들뜬 포부와 패기로 여러 업무를 해나갔다.
그러던 중, 기존 채용공고를 보며 기업의 핵심 가치와 인재상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채용을 비롯하여 인사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껴 핵심 가치와 인재상을 수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당 업무를 첫 주간 회의에서 이야기했을 때 경영진 한 분이 던진 질문은 내가 완전히 다른 곳에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핵심 가치와 인재상? 그게 왜 필요하죠? “
“그것이 없으면 채용을 못 하나요? 기존에도 없었지만 채용은 계속 했는데”
누군가는 들으면 당연한 질문일 수 있지만 인사담당자로서 나에게는 당시 저 말이, 굉장한 충격이었다.
핵심 가치와 인재상의 필요성이란 나에겐 ’왜 숟가락, 젓가락을 쓰면서 밥을 먹나요?’ 라고 질문을 받은 느낌이랄까. 나는 늘 그렇게 밥을 먹어왔는데 말이다.
물론 질문을 받고 내 생각을 말씀 드렸지만 회의를 마친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 뿐일 수 있다고 느꼈다. 지금 조직은 당장 인력이 부족하여 연쇄적으로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내가 경영진이나 직원들을 인터뷰하며 핵심 가치를 수립하고 있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
그것보다 실제 채용을 위한 인재 서칭이나 다이렉트 제안이 당장에 더 필요한 게 아닐까, 그렇게 인력을 구하고 채용해서 직원들의 고충과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핵심 가치와 인재상이 없으면 조직에 맞는 직원을 구할 수 없는 것일까.
결국 숟가락, 젓가락 없이도 밥을 먹을 수 있고 배가 고프면 나뭇가지, 하물며 손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건데. 오랫동안 굶어 배가 고픈 상황에서 숟가락, 젓가락 찾는 담당자가 충분히 더 이상할 수 있었다.
사실 업무의 난이도를 떠나 이러한 조직의 분위기는 나에게 큰 어려움이었다. 내가 지금까지의 경력에서 배워온 경험, 내가 자신 있는 방식과 단계별로 업무를 진행하고자 했던 것들, 그 모든 것은 다시 리셋되어야 했다.
결국 현실을 깨닫고, 조직을 다시 바라보았다.
새로운 TF에 참여하듯 접근을 달리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일상적인 HR이 아닌, 현재 조직의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찾았다. 그리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업무를 최우선으로 빠르게 진행했다. 사실 인력이나 업무에서 여유 없이 모두 주요한 업무를 하며 회사에 빠른 성과를 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