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에서는 고객이 중요하다. 상품, 서비스, 가격 모두 중요하지만, 결국 제품을 구매하고 이용하는 고객으로 귀결된다. 그러기에 비즈니스에서는 고객의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UX(User Experience), CX(Customer Experience)라는 용어와 직무가 익숙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HR에서도 고객 경험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HR에게는 내부구성원, 경영진, 외부 파트너 등 다양한 고객이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채용 과정에서 만나는 지원자(Applicant)와 후보자(Candidate)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원자 경험(CX, Candidate Experie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지원자라는 잠재적 동료에게 제공하는 경험도 소중히 다루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이력서를 저희 회사 양식으로 다시 작성해주세요.”
한 회사에 지원한 경험이 있다. 서류전형 합격 후에 이력서를 다시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담당자는 임원들이 면접을 보기 위해서 회사 양식으로 이력서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짜증이 났다. 이미 이력서를 쓰느라 소중한 시간을 투자했는데, 다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게 답답했다. 처음부터 회사 양식을 요청했다면 오히려 편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력서를 두 번이나 써야 하는 번거로움을 스스로 참아내고 있었다. 그것도 임원 보고를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임원의 편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든지 할애해야 하는 고요한 지원자이어야 하는가?
“명찰을 달아주세요.”
인터뷰 기회가 있어 한 회사를 찾았다. 당시 면접 대기실에서 채용담당자가 명찰을 착용해 달라고 했다. 옷핀이 달린 플라스틱 투명 명찰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명찰? 신입사원 면접 때 경험하고 20여년 만에 차보네. 그런데 요즘에도 명찰을 차던가?’
‘옷에 구멍이 나면 어떡하지? 고가의 옷을 입고 온 사람은 어떡하나?’
‘혹시 면접관들도 함께 명찰을 착용하고 있을까?’
명찰을 착용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짜증이 났다. 내 옷에 구멍을 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도 많을 텐데, 왜 옷에 구멍을 내면서까지 명찰을 달아야 하나? 그리고, 면접장에서는 면접관들의 명찰과 명패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누구인지 소개 받지도 못했다.
나는 명찰이 싫어도 싫다고 대답 못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내 이름과 정보 모두가 까발려진 채 놓여진 존재였다.
“명찰을 꼭 착용해야 하나요?”
채용전형이 끝난 후에 채용담당자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명찰을 왜 착용하냐고 물어봤다. 담당자는 면접관들이 후보자 이름을 확인하고 싶어서 명찰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 목적이라면 명찰 외에 다른 방법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임원이 명찰이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본인도 후보자들이 불편하다는 것을 이미 많이 들어왔지만, 임원의 지시라 후보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
지원자는 임원을 위해 불편을 감내하고 희생하는 존재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답답함이 밀려왔다. 채용담당자에 대한 원망 보다는 지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문화가 아쉬웠다.
그 회사의 상황을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나의 고지식함을 드러내고자 함도 아니다.
핵심은 채용 전형 과정에 있는 지원자도 소중히 모셔야 할 잠재적 고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를 막론하고 HR 현장에서는 지원자의 소중함과 경험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겪을 때 나는 ‘꼭 이 회사여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문화에서 내가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HR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