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욜로족'(YOLO - You Only Live Once)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이른바 '탕진잼'의 길로 이끌었다. '탕진잼'이란 탕진(돈을 다 써버림)과 재미의 합성어로, 돈을 아낌없이 쓰면서 느끼는 짜릿함과 재미를 의미한다. "한 번뿐인 인생, 즐겁게 살다 가자!"라는 슬로건과 함께 회사를 퇴사하고 해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노후 준비보다는 당장의 쾌락을 위해 '탕진잼'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에 따라 마케팅 전략이 세워지고 제품과 다양한 서비스가 출시되기도 했다. '무엇을 파는가'보다는 '어떤 경험을 주는가'가 경쟁력의 기준이 되었다.
놀랍게도 이러한 변화는 조직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YOLO 세대 직원들은 일과 삶의 균형, 자기실현, 의미 있는 일을 중시했고, 기업은 내부 문화를 재정비하는 계기를 가졌다. 유연근무제, 원격근무, 안식년 제도가 증가하며 직원의 경험(EX)이 곧 기업 이미지와 고객 경험(CX)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2026년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예측이 이어지면서, 국내 실물경기는 수출 둔화 및 내수 부진, 환율 상승의 우려 속에 고물가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 환경은 소비 트렌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과거의 '욜로(YOLO)'는 '요노(YONO, You Only Need One - 현명한 절약)'로 대체되었다. 소비자들은 무조건 아끼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를 추구하며, 비싼 브랜드 대신 고품질의 대체재(Dupe, 듀프)를 찾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
기업 내부의 '소비'를 담당하는 총무팀 역시 이러한 '요노' 트렌드를 반영한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 2026년 총무팀의 아젠다는 단기적이고 일회성인 '비용 절감'에서 데이터 기반의 지속 가능한 '전략적 비용 통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총무 업무를 하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어려운 시기의 회사를 경험하게 된다. 필자 또한 첫 번째 회사였던 'P'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극단적 긴축재정에 돌입한 적이 있다. 법정관리를 경험해 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모든 지출에 대해 법원의 통제를 받는다. 지출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옐로 페이지 북(Yellow Page Book), 한국이라면 전화번호부(요즘은 보기 힘든 물건이다) 정도 두께의 서류를 준비하는 상황도 다반사다.

<엄청 두꺼운 전화번호부, 우리집 정보를 찾아 보곤 했다>
당장 내일 지불해야 하는 임차료도 법원에서 서류 보충 지시가 떨어지면 지불하지 못한다. 보통 제출하는 서류는 비교 견적서와 이 지출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정말 꼼꼼한 지적에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힘든 시기였다. 이를테면 "쓸 만한 국산 모나미 볼펜이 있는데, 왜 일본제 비싼 볼펜을 제공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정말 짜증 나지만, 한 번쯤 합리적 지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컬러 인쇄는 금지되고 A4 인쇄용지는 최저가 용지로 바뀌었다. 극단적 비용 절감 속에서 직원으로서 느껴지는 것은 '회사가 이렇게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하는구나'보다는 '차라리 이럴 거면 다른 비용이나 줄이지, 얼마 되지도 않는 비용으로 직원을 괴롭힌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간혹 이런 주문을 내리는 분들에게는 좀 더 전략적인 절약을 권하고자 조언한다. '
전략적 소싱(Strategic Sourcing)'이 그 핵심 방법론이다. 전통적인 조달은 단순히 '가장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2026년의 총무팀은 제품의 구매 단가(Price)가 아닌 '총 소유 비용(TCO, Total Cost of Ownership)'을 분석해 나가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는 소비자가 가격의 구성요소를 해독하길 원하는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 트렌드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총무팀은 기업을 대표해 TCO라는 전문적인 '디코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즉, 제품의 조달 비용, 취득(물류) 비용, 사용(유지보수, 변환) 비용, 그리고 수명 종료(폐기) 비용까지 모두 포함하는 총체적 관점에서 '납득 가능한 가격'을 찾아내야 한다.
필자가 영화사에서 일할 때 영화관 프로젝터 구매 방식에 대한 고민을 총무 사수와 나눈 적이 있다. 위에서 언급된 비용은 물론이고, 교체를 위한 전문 인력, 기술 진부화 리스크(4K 시장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8K 화질의 프로젝터), 초기 절감된 투자비용을 마케팅 등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비용까지 다채롭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LED 교체 붐이 일었던 시절에는 아래와 같은 사례도 있었다.
사례: 사무실 조명 교체 (실제 사례)
LED 교체 프로젝트 TCO 분석
- 초기 투자: 2,000만원
- 연간 전기료 절감: 800만원
- 교체 주기: 기존 3년 → LED 10년
- 유지보수 인건비 절감: 연 200만원
→ 2년 만에 투자금 회수, 10년 TCO 8,000만원 절감'요노족' 소비자와 '듀프' 트렌드처럼, 총무팀은 기존 공급업체와의 단가 재협상뿐만 아니라 품질은 유지하되 비용은 합리적인 '대체 브랜드'를 적극 발굴하여 TCO를 최적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총무팀은 조직 내 포지셔닝을 재정립할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비용 절감'을 외치는 총무팀은 현업 부서의 필요를 막는 '반대자'나 '악역'이 되기 쉽다. "그거 꼭 필요한가요?", "꼭 지금 사야 하나요?" 같은 질문도 총무 직무에서는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2026년의 사회적 트렌드인 '요노(YONO)'는 단순한 비용 '절약'을 '현명하고 합리적인 행동'으로 재정의했다.
총무팀은 이 사회적 내러티브를 차용해야 한다. "비용을 줄이겠다"고 말하는 대신, "전사적 '스마트 소싱'과 '프라이스 디코딩' 캠페인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해야 한다. TCO 분석을 통해 'Corporate YONO'를 실천, 즉 '가장 현명한 구매'를 지원하는 '가치 컨설턴트(Value Consultant)'로 포지셔닝을 변경해야 한다.
가령 이런 변화다.
Before (Gatekeeper 총무): "죄송합니다. 예산이 부족해서 구매가 어렵습니다." → 현업 반응: "총무팀은 항상 안 된다고만 하네"
After (Value Consultant 총무): "요청하신 제품을 TCO 분석했습니다. 제안하신 A안 대신 B안을 선택하시면, 동일한 성능에 연간 300만원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절감된 예산으로 추가로 필요하신 장비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현업 반응: "총무팀이 우리 예산을 늘려줬어!"
대체재(듀프) 발굴 사례:
Case 1: 정수기
-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 렌탈 (월 6만원 × 10대 = 60만원)
- 듀프: 중가 브랜드로 변경 (월 3.5만원 × 10대 = 35만원)
- 연간 절감: 300만원
- 품질 검증: 3개월 파일럿 후 직원 만족도 조사 (차이 없음 확인)
Case 2: 사무용품
- 기존: 대형 오피스 브랜드 일괄 구매
- 듀프: 품목별 최적 브랜드 믹스 (펜은 A사, 노트는 B사, 파일은 C사)
- 연간 절감: 1,200만원 (23% 절감)
- 핵심: 품질 저하 없이 "브랜드 프리미엄" 부분만 제거
Case 3: 복리후생 (간식)
- 기존: 유명 브랜드 과자 정기 배송
- 듀프: 코스트코/이마트 대용량 구매 + 사내 디스펜서 설치
- 연간 절감: 800만원
- 부가 효과: 직원들이 원하는 품목 직접 선택 가능 → 만족도 상승전략적 비용 통제는 정확한 데이터에서 시작된다. 총무팀의 핵심 직무인 '자산 관리'는 2026년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핵심 영역이 된다. 이는 철저한 계획으로 일상을 관리하는 '레디코어(Ready-core)' 트렌드와도 연결된다. 총무팀은 '레디코어'의 자세로 기업 자산을 꼼꼼하게 계획하고 관리해야 한다.
체계적이고 디지털화된 자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유휴 자산, 중복 구매된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자산의 분실 및 파손 현황을 실시간으로 추적해야 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불필요한 신규 구매를 방지하고 자산의 생애주기를 최적화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자산 관리에 대해 "엑셀로 관리하면 되지", "그거 꼭 그렇게까지 관리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물론 많은 회사에서 한정된 리소스가 주어진 상황에서는 단순하게 관리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과연 전문 자산관리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 리소스 낭비로 이어질까, 아니면 리소스 절약으로 이어질까? 지난 시간에도 언급한 AX의 물결 속에서 해답을 찾아보면 좋겠다. 꼭 고도화된, 잘 만들어진, 비싼 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는 없다. 바이브 코딩으로 제작된 단순한 기능의 프로그램만으로도 기본적인 기능은 충분히 구현 가능할 것이다. 아래 자산관리 시스템 도입 로드맵을 바이브 코딩 기획 시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
단계별 자산관리 시스템 도입 로드맵:
Phase 1: 데이터 수집 (1-2개월)
전체 자산 목록 작성 (바코드/QR 부착)
위치, 담당자, 구매일, 상태 등 기본 정보 입력
사진 촬영 및 첨부
Phase 2: 시스템 선택 (1개월)
예산 10만원 이하: 구글 시트 + Apps Script 자동화
예산 100만원 대: 자산관리 SaaS (예: 플레시블, 에셋리)
예산 500만원 이상: ERP 연동형 AMS
Phase 3: 운영 정착 (3-6개월)
월 1회 자산 실사 루틴화
분기별 리포트 자동 생성
이상 징후 알림 설정 (예: 3개월 미사용 자산)또한 '비용 절감'과 같은 모호한 목표 대신, 명확한 수치로 성과를 관리하는 정량적 KPI를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년 대비 사무용품 소모품 비용 10% 절감" 또는 "자산 관리 오류(누락, 중복) 건수 3% 미만"과 같이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추적해야 한다.
지금까지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당장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작성하면서도 갈수록 내가 해야 할 숙제와 다른 총무님들의 과제를 늘려드리는 것만 같은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번 분기에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들:
Week 1-2: 현황 파악
□ 연간 지출액 상위 20개 품목 리스트 작성
□ 각 품목의 현재 공급업체 및 단가 정리
□ 전체 자산 목록 업데이트
Week 3-4: 분석 및 계획
□ 상위 5개 품목에 대한 TCO 분석
□ 대체재(듀프) 3개 이상 리서치
□ 파일럿 테스트 계획 수립
Month 2: 실행
□ 1개 품목 듀프로 전환 (리스크 낮은 것부터)
□ 결과 모니터링 및 만족도 조사
□ 성과 수치화 및 보고서 작성
Month 3: 확장
□ 성공 사례를 전사 공유
□ 추가 품목 전환 계획
□ KPI 대시보드 구축 시작이번 3편에서는 가치를 숫자로 증명하는 방법을 배웠다.
TCO 분석으로 "왜 이 선택이 더 현명한가"를 설명하고
듀프 전략으로 "어떻게 품질을 유지하면서 비용을 줄이는가"를 보여주며
데이터 기반 자산 관리로 "우리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일하는가"를 입증할 수 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숫자로 말할 수 있는 총무팀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는다.
다음 편은 Trend 4. THE SOCIAL HUB (오피스의 귀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