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쎄, 당장 옮길 생각은 없는데... 좋은 기회 오면 가야지."
이 말은 꽤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현재의 안정감을 누리면서도 더 나은 가능성에는 문을 열어두겠다는 '전략적 개방성'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때론 회전초밥집 레일 앞에 앉아 하염없이 내 취향의 접시가 오길 기다리는 손님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커리어 개발과 준비의 능동성(Proactivity)과 수동성(Passivity)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회전초밥 레일은 매혹적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화려한 메뉴들이 내 눈앞을 지나가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변수가 있습니다. 내 바로 앞 테이블에 나랑 입맛이 똑같은 사람이 앉아 있을 확률입니다.
내가 '연어 뱃살'을 기다리고 있다면, 앞사람도 그것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가 먼저 접시를 낚채 간다면, 나에게 오는 것은 빈 레일이거나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평범한 유부초밥뿐입니다.
커리어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기회(연봉 상승, 유연한 근무 환경, 네임밸류)'는 모두에게 좋은 기회입니다. 내가 수동적으로 레일만 보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이미 헤드헌터와 소통하고, 링크드인을 업데이트하며, 업계 컨퍼런스에서 '앞자리'를 선점합니다. 수동적인 기다림은 결국 남들이 먹고 남은 선택지 중 최선을 골라야 하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습니다.
반면, 커리어를 능동적으로 설계하는 사람들은 '회전초밥집'에 자신을 가두지 않습니다. 이들은 마치 특정 메뉴를 먹기 위해 맛집을 검색하고, 예약하고, 셰프의 철학을 공부하는 미식가와 같습니다.
타겟팅(Targeting): "어디든 좋은 곳"이 아니라, "나의 기술 스택을 가장 가치 있게 써줄 조직"이 어디인지 명확히 합니다.
사전 준비(Preparation): 단순히 경력기술서를 쓰는 것을 넘어, 그 식당(기업)이 어떤 재료(인재상)를 선호하는지, 최근 어떤 요리(비즈니스)를 선보이는지 분석합니다.
주문(Ordering): 레일에 올라오길 기다리지 않고, 셰프에게 직접 "이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듯 제안합니다. (사외 네트워킹, 직접 지원 등)
이들에게 이직은 '운 좋게 걸리는 로또'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는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기회는 알아서 온다'는 믿음입니다. 성실함은 미덕이지만, 커리어 관리 측면에서 방향성 없는 성실함은 위험합니다.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시장 가치 측정 불가: 레일 위 초밥의 가격표를 모르면, 내 몸값이 적정한지 알 수 없습니다.
도태된 스킬셋: 레일은 계속 도는데, 나는 10년 전 유행하던 '롤'만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선택권의 상실: 위기가 닥쳐서야 급하게 이직을 준비하면, 나쁜 조건의 '나머지 접시'를 집어 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동적인 '대기자'에서 능동적인 '기획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메뉴판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라: 분기에 한 번은 자신의 경력기술서를 업데이트해 보세요. 쓸 내용이 없다면, 지난 3개월간 당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만 한 것입니다.
식당 밖의 셰프들과 대화하라: 사내 정치를 넘어 업계 사람들과 교류하세요. 다른 식당에서는 어떤 요리법이 유행하는지 알아야 내 주방의 경쟁력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개발하라: "나는 뭐든 잘한다"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시장이 당신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즉각 떠올릴 수 있는 전문성(Keyword)을 확보해야 합니다.
회전초밥집에서 운 좋게 맛있는 접시를 집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소중한 20년, 30년의 커리어를 '운'에 맡기기엔 너무 리스크가 큽니다.
진정한 커리어의 고수는 자신의 식탁을 오마카세처럼 운영합니다.
여기서 셰프는 회사나 헤드헌터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본인이 엄선한 재료로, 본인이 원하는 순서대로, 여러분의 가치를 알아주는 손님(기업)에게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는 과정.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능동적 커리어 개발의 본질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레일 위에는 어떤 접시들이 지나가고 있나요?
혹시 앞사람이 가로챌까 조마조마하며 빈 접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나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분이 진짜 원하는 메뉴가 있는 그곳으로 직접 걸어 들어갈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