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는 환경 변화에 민감해 숲과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자주 언급된다. 기업과 사회에도 이와 비슷한 지표가 있다면, 나는 그중 하나가 ‘장애인 고용’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 얼마나 많이 고용되어 있는지를 넘어,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직무와 기술, 제도와 조직문화를 얼마나 잘 설계하고 있는지가 조직의 성숙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장애를 배려와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보다, ‘장애가 커리어가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왔다. 장애를 경험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기술을 활용해 일의 문턱을 낮추며, 기업의 비즈니스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높이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좋은 의도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일자리와 전문성, 지속가능한 시장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코알라가 사는 숲」에서는 장애인 고용을 바라보는 기업의 다양한 선택지에서 시작해, 장애가 전문성이 된 직무개발 사례, AI가 장애인의 일자리를 확장한 경험을 차례로 이야기하려 한다. 동시에 AI가 잘못 설계될 경우 장애의 특성을 역량 부족으로 오인하고 기존의 편견을 더 빠르게 자동화할 수 있다는 문제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 편에서는 AX 시대의 HR이 사람을 선별하는 역할을 넘어, 더 다양한 사람이 기술과 함께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까지 질문해보고자 한다.
좋은 숲은 가장 강한 존재만 살아남는 곳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생태계가 작동하는 곳이다. 조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커리어가 되고, 기술이 사람의 가능성을 넓히며, 서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다섯 번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현장에서 발견한 가능성과 시행착오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애인 고용’은 단순히 몇 명을 채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구성원이 조직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직무와 환경, 평가 기준과 조직문화를 얼마나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지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 고용은 조직의 포용 역량이자 구조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핵심 척도이다.
나는 대기업에서 8년간 인사담당자로 근무하며 생산성과 조직문화 전략을 설계했다. 이후 2018년 ‘직장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의무화 되면서 장애인 고용에 필요한 기업 트렌드를 소개하고, ‘장애가 커리어가 되는’ 직무를 개발하여 사업화하는 일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 담당자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들었다.
“우리 회사에는 장애인이 할 만한 직무가 없습니다.”
“어떤 장애 유형을 채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까요?”
“직접 고용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 질문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장애인 고용을 ‘채용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나는 장애인 고용을 기업과 실무자에게 부담이 아니라, 조직의 혁신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전략적 투자임을 말하고 싶다. 이 글을 통해 내가 걸어온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의 용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단서가 되길 바란다.
장애인 고용에 대해 기업이 갖는 오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직무 기초가 없는 신입사원을 채용해야 한다는 인식, 또 하나는 16가지 장애 유형과 정도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특정 유형을 기준으로 고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 고용은 마치 한 생명을 우리 가정으로 들이는 과정과 유사하다. 한 사람을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동의와 합의가 있어야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정서적 여력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우리 가정의 환경과 여력에 맞춰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를 기업의 장애인 고용에 빗대어 본다면 산업의 특성, 조직의 준비 수준, 고용 의지, 장애 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접근법을 정리해 보면 11단계로 구조화할 수 있다. 특히 ESG 공시를 하는 기업이라면 더욱 ‘장애인’을 고용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잠재고객으로 바라보고, 이를 경제적(정량) 효과와 브랜딩(정성) 효과를 위한 전략으로 접근하길 바란다.
궁극적인 목표는 기업 내부에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처음부터 그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지는 있지만 준비가 부족하다면 신입보다 해당 산업과 직무에 경험이 있는 장애인 경력직을 먼저 채용할 수 있다. 실제로 장애 인구 10명 중 9명이 후천적 장애로 일자리를 잃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기업의 교육·훈련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당사자의 커리어를 이어가도록 돕는 실질적인 대안이 된다.
직접 고용이 어렵다면 간접 고용 방식도 있다. 기업이 매월 사용하는 소모품이나 유지관리 서비스를 장애인표준사업장이나 사회적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내 카페, 편의점, 식물관리, 청소용역, 베이커리, 체육선수단 등 이미 다양한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만약 고용 규모가 크다면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와 시너지를 만드는 장애인 직무를 개발하여 전담 사업부를 만들거나,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 설립도 전략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 고용이 부담스럽다면 장애인 고용이 아니라, 장애인 고객으로 눈을 관점을 옮겨보길 바란다.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가 장애인 고객에게 충분히 접근 가능한지 점검함으로써 기업 내 임직원과 이해관계자들이 ‘장애인’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자연스럽게 장애 유형별 학습을 독려하는 전략이다. 우리 홈페이지는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가. 우리 매장은 휠체어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가. 안내문과 약관은 발달장애인이나 고령자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청각장애인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장애인 고용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고객 경험의 문제로 이어진다.
국내 등록장애인 264만 명 중 65세 이상이 54%를 차지하는 현실은 이들이 중요한 소비 집단이자 잠재고객임을 보여준다. 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에서 고객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기업의 시야는 달라진다. 장애 유형별 특성을 고려해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고령자, 외국인, 어린이, 임산부나 환자와 같이 일시적 불편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문제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경험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2편 ‘장애가 커리어가 되는 직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다루겠다.
사회공헌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공헌 사업을 산업 특성과 연결해 장애인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직간접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사회공헌 전략 사업이 반복되어 신사업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완성차를 만드는 기업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이동권 지원이나 특수차량 기부를, 라이트나 조향장치 생산 기업은 ‘앞을 비추고 방향을 인도한다’는 기술적 상징성을 확장해 시각장애인이나 장애 아동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다. 이미 다수의 대기업에서 사회공헌으로 시작해 신기술, 신사업으로 고도화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글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모든 기업이 똑같은 장애인 고용 전략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좋은 기업은 처음부터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기업이 아니다. 자신의 준비 수준을 정확히 알고, 현재 위치에서 실행할 수 있는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기업이다. ESG 역시 거창한 선언보다 이런 작은 이동에서 시작한다. 장애인을 몇 명 채용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채용제도, 직무, 제품과 서비스, 공급망과 사회공헌까지 장애인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장애인 고용은 기업이 얼마나 포용적인지를 보여주는 결과인 동시에, 앞으로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행지표가 된다. 더 나아가 장애 인구 중 90%가 사고와 질병에 의한 후천적 장애이자, 2024년 기준 산재로 인해 장해연금을 받는 규모가 약 56,000명으로 장해급여 수급자가 연평균 4.5%씩 증가하는 추세를 미뤄볼 때 장애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ESG 핵심 키워드인 ‘안전(S)’ 영역에서 산업재해, 시민재해 예방도 장애 고용 생태계에 의미있는 사업이자, 안전에서 시작해 고용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코알라가 살아갈 수 있는 숲이라면 그곳에는 먹이와 나무, 기후와 생태계가 함께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장애인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 조직에는 채용뿐 아니라 직무설계, 조직문화, 리더십, 기술과 제도가 함께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나는 장애인 고용을 기업의 부담이 아니라 조직의 건강성을 확인하는 하나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로써 조직문화와 인재 전략을 8년 간 고민하고, 장애인 고용 생태계로 한 차원 좁여 8년 간 이를 지켜본 나는 이런 질문이 생긴다. ‘장애인이 기존 직무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을 넘어, 장애를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는 일. 즉 “장애가 커리어가 될수는 없을까.” 다음 글에서는 그 질문에서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