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가 사는 숲 ⑤ : 우리 조직에는 코알라가 살아갈 생태계가 준비되어 있는가

코알라가 사는 숲 ⑤ : 우리 조직에는 코알라가 살아갈 생태계가 준비되어 있는가

고용 임팩트의 부피를 키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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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
박수현Aug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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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시대, 사람과 기술과 환경의 황금율을 찾아서

장애인 고용에 관한 일을 하며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장애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상당수의 문제가 사실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작은 글씨를 읽기 어려운 것은 저시력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한다. 복잡한 디지털 시스템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특정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에게도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긴 설명보다 쉬운 글과 그림이 필요한 사람 역시 발달장애인만이 아니다. 외국인과 어린이, 새로운 업무를 처음 배우는 신입사원도 같은 환경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은 장애인 고용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장애인 고용은 소수자를 위해 별도의 제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기업이 만나게 될 다양한 인력을 먼저 경험하는 일일 수 있다. 초고령화와 AX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앞으로 기업의 구성원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고령자와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육아와 돌봄을 병행하는 사람, 질병이나 사고 이후 직장으로 복귀하는 사람, 서로 다른 신체적·인지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 AI와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함께 사용하며 일하게 된다.

이때 기존 HR의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생긴다. 그동안 채용은 적합한 사람을 찾는 과정에 가까웠다. 직무의 요구조건을 정하고, 가장 적합한 역량을 가진 사람을 선발했다. 그러나 AX 시대에는 질문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사람이 현재 직무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가가 아니라, ‘사람과 AI, 기술과 환경을 어떻게 조합하면 이 사람이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의 직무재설계가 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직무에 맞추는 방식에서 사람과 기술에 맞춰 직무를 다시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앞서 3편에서 소개한 청각장애인 검품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청각장애인이 기존 시스템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했다면 아마 채용의 가능성만 검토하다 끝났을 것이다. 대신 매뉴얼을 바꾸고, 교육을 보완하고, AI가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사람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일하는 구조가 바뀌었다. AI 면접의 사례 역시 같다. 지원자가 기존 AI 평가 기준에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평가 기준 자체가 직무와 무관한 편향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살펴야 한다. 결국 AX의 핵심은 사람을 기술에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기술 사이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미래 인재전략, 고용 임팩트의 부피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사회문제의 임팩트는 정육면체의 부피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부피가 커지려면 넓이와 깊이, 길이가 함께 필요하다. 장애인 고용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용 임팩트의 부피가 커지려면 ‘넓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가의 문제다. ‘깊이’는 그 일자리가 단순한 보조업무가 아니라 얼마나 높은 전문성과 가치를 만들어내는가의 문제다. ‘길이’는 만들어진 일자리가 몇 개월의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커리어로 이어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1991년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시행되고, 2018년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의무화되면서 장애인 고용의 넓이와 깊이는 조금씩 확장돼 왔다. 이제는 길이를 고민해야 할 때다. 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이 5년, 10년 뒤에도 자신의 경험을 커리어로 축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기업의 역할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좋은 취지로 설립된 장애인 고용 기업이 있어도 한 기업이 대규모 고객사의 물량을 모두 감당하기는 어렵다. 수요가 갑자기 늘면 오히려 비장애인 보조인력만 늘어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이제 신규 장애인 직무를 계속 만드는 것만큼 기존 직무가 지속될 수 있는 시장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의 의전용 제품을 꽃, 커피, 쿠키로 함께 구성한다면 장애인 플로리스트와 로스터, 바리스타, 파티셰의 일자리를 하나의 기업 수요에 연결할 수 있다. 각각의 사회적기업이 경쟁하는 대신 서로의 역량을 연결해 대기업의 수요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한 명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서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으로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장애인 고용은 교육, 복지, 교통, 여가, 의료, 기술과 경제가 동시에 연결된 다학제 과제다.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고용을 잘하는 조직은 앞으로의 변화에도 강할 가능성이 높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직무를 조정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시니어가 일하는 방식도 설계할 수 있다.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성원도 포용할 수 있다. 장애 유형별 AI 편향을 발견하고 조정할 수 있다면 앞으로 등장할 다양한 AI 윤리 문제에도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결국 장애인 고용은 소수자를 위한 별도의 HR 정책이 아니다. AX 시대에 ‘누구까지 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를 먼저 실험하는 미래 인재전략이다. 코알라 한 마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코알라 한 마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곳에 먹이가 있고, 나무가 있고, 적절한 기후가 있으며, 여러 생물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지속적으로 커리어를 만들 수 있는 조직이라면 그곳에는 채용과 교육, 직무와 기술, 평가와 조직문화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숲은 가장 강한 존재만 살아남는 숲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생태계가 작동하는 숲이다. 앞으로 AX 시대의 좋은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선별하는 능력만 뛰어난 조직보다 더 다양한 사람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일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조직이 강해질 것이다.

코알라가 사는 숲, 새로운 고용 생태계를 꿈꾸며

장애인 고용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이제 달라져야 한다. 의무에서 전략으로, 배려에서 전문성으로, 채용에서 직무설계로, 그리고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새로운 조직의 구조로 확장해야 한다. 나는 그 변화의 가능성을 ‘코알라가 사는 숲’이라고 부르고 싶다. 장애가 커리어가 되고, 기술이 사람의 가능성을 넓히며,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조직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숲이다. 그런 숲이 많아질수록 기업도, 사람도, 그리고 우리 사회도 조금 더 건강해질 것이다. 각자 몸 담고 있는 비즈니스 현장에 코알라가 함께 하는 푸르고 울창한 숲이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수현
박수현
고용 임팩트를 위한 생태계를 설계합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람과 조직의 역량을 지속가능한 임팩트로 전환하는 구조와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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