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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자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다잉 메세지

퇴사자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다잉 메세지

퇴사면담에서 HR은 왜 항상 두 개의 얼굴을 갖게 될까
조직문화기타전체
승란
이승란Jan 12, 2026
99413

퇴사면담 자리에서 HR이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늘 비슷하다.
“개인적인 사정이에요.”
“학업을 병행하려고 합니다.”
“커리어를 한 단계 더 넓혀보고 싶어요.”

말은 정중하고, 태도는 성숙하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오해한다.
이 퇴사는 ‘깔끔한 이별’이라고.

하지만 퇴사면담을 여러 번 진행해 본 HR이라면 안다.
이 문장들은 진짜 이유가 아니라,
조직을 떠나기 위해 선택된 가장 무난한 언어라는 것을.

퇴사는 종종 다잉메세지처럼 남겨진다.
짧고, 애매하고, 지나치게 매너가 좋다.
그러나 그 안에는 조직이 끝내 마주하지 못한 신호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든 퇴사가 성장 서사는 아니다

물론 긍정적인 퇴사도 있다.
학업을 선택하거나, 더 넓은 무대에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떠나는 경우.
서로를 응원하며 비교적 평온하게 마무리되는 면담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HR이 마주하는 퇴사의 다수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 조직 내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쌓여온 경우

  •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낀 순간들

  • 팀 혹은 개인 간의 반복된 다툼과 방치

  • 연봉과 보상 구조에 대한 불만족

이 퇴사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어느 날 갑자기 결심된 선택이 아니라는 것.

퇴사는 사건이 아니다.
퇴사는 경험이 누적된 결과다.


퇴사 사유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MBTI처럼 번역될 뿐이다

퇴사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직을 배려한다.
그래서 진짜 이유는 이렇게 정리된 문장으로 나온다.

  • “조직 문화가 맞지 않았어요.”

  • “제가 원하는 방향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HR의 시선에서 보면, 이 말들은 이미 한 번 번역된 결과다.
감정이 제거되고, 관계가 고려되고, 갈등이 정제된 언어.

말하자면 F를 거쳐 T처럼 들리게 만든 문장이다.

실제 다잉메세지는 그 이전 단계에 있다.

  • “그때 한 번만 제대로 피드백을 받았어도요.”

  • “계속 참고 넘기다 보니, 어느 순간 버티기만 하고 있더라고요.”

  • “문제를 말해도 결국 제 일이 되는 구조였어요.”

중요한 건 ‘왜 떠났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반복되었는가다.


퇴사면담에서 HR은 매번 MBTI를 바꿔 입는다

퇴사면담이 시작되는 순간, HR은 의식적으로 극 F가 된다.
공감하지 않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감정은 먼저 다뤄져야 하고, 관계는 마지막까지 존중받아야 한다.

“그때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런 상황이면 누구라도 지쳤을 것 같아요.”

이 단계에서 HR이 T처럼 굴면, 면담은 바로 닫힌다.
퇴사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직은 또 하나의 ‘무난한 퇴사 사유’만 얻게 된다.

하지만 면담이 끝나는 순간, HR은 다시 극 T로 전환된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로 믿지 않기 위해서다.

  • 이 감정은 개인의 성향 문제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 이 불만은 단발성 사건인가, 반복된 패턴인가

  • 이 퇴사는 예외인가, 이미 여러 번 관측된 신호인가

퇴사자가 남긴 말은 대부분 F의 언어다.
서운함, 억울함, 지침, 체념 같은 감정의 언어.

반면 조직을 바꾸는 언어는 늘 T의 언어다.
구조, 기준, 반복, 설계, 의사결정 같은 언어.

그래서 퇴사면담은
F로 시작해 T로 끝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T로만 시작하면, 애초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퇴사면담이 어려운 이유는 단 하나다.
HR에게 상황에 따라 MBTI를 바꿔 입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퇴사자는 떠난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이상 신호를 가장 먼저 감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퇴사자를 실패 사례로만 보면
퇴사면담은 관계의 종료로 끝난다.

하지만 퇴사자를

조직의 센서로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왜 이 팀에서는 같은 이유의 퇴사가 반복되는가

  • 왜 특정 시점에만 퇴사가 몰리는가

  • 왜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고 느꼈는가

퇴사면담은 설득의 자리가 아니다.
조직을 점검하는 인터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퇴사면담 기록을 다시 펼친다

면담이 끝난 뒤, 나는 종종 기록을 다시 읽는다.
그 사람이 남긴 말보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표정과 침묵,
그리고 끝내 말하지 않은 문장들을 떠올리면서.

어떤 말은 감정이었고,
어떤 말은 구조였고,
어떤 말은 아직 조직이 해석하지 못한 신호였다.

퇴사는 끝이 아니다.
우리 조직이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에 가깝다.

나는 오늘도 그 다잉메세지를 완전히 해독하지는 못한다.
다만 다음 퇴사면담에서는,
조금 더 빨리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면 HR의 일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이별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직을 조금씩 바꾸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승란
이승란
미니멀을 지향하지만, 쉽게 비워지지 않는 사람.
사람의 경험을 살피고, 조직이 더 나아질 질문을 만드는 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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