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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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

좋은 리더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리더십전체
세진
김세진Jun 26, 2026
202413

한국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로 패했다. 손흥민의 선발 미출전 결정은 경기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경기 직후, 홍명보 감독의 작전 지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손흥민은 이렇게 답했다.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

어느 포지션에서 어떻게 경기를 해야 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특별한 말씀이 없으셔도 내가 해야 될 역할들을 잘 알고 경기장에 들어선다."

이 인터뷰 이후, 많은 사람들이 홍명보 감독의 '특별한 지시 없음'에 분노했다.

감독과 선수 사이의 관계를 유추하는 루머들도 쏟아졌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좋은 리더란 명확하게 지시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구성원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믿고 맡기는 사람일까?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의 두 얼굴

손흥민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가 "역할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수십 년간 쌓인 경험과 명확한 자기 이해 덕분이다.

월드클래스 선수에게 '여기선 이렇게 저렇게 뛰어라'는 설명은 오히려 불필요할 수 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10년차 개발자에게 코드 한 줄 한 줄을 지시하는 리더,

베테랑 영업 담당자에게 고객과의 대화 방식을 일일이 코칭하는 팀장.

이런 모습을 보는 구성원은 '나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느낀다.

마이크로매니지먼트는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런데 이것이 리더의 침묵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역할을 안다'는 것과 '이 경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선수 개인의 역량이고, 후자는 리더가 제공해야 할 맥락이다.

남아공 전, 벤치 지키는 손흥민-국민일보

손흥민은 자신이 윙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안다.

하지만 오늘 이 경기에서 팀이 어떤 전략으로, 어떤 움직임으로 골을 만들어낼지 그건 감독이 말해줘야 한다.

마케터는 SNS 콘텐츠를 어떻게 만드는지 안다.

하지만 이번 캠페인에서 우리가 어떤 고객에게, 어떤 메시지로, 왜 이 타이밍에 말을 걸어야 하는지는

리더가 그려줘야 한다. 그 맥락 없이 각자 잘하는 것을 하면, 팀은 부지런히 움직이되, 방향이 없어진다.

침묵은 곧 신뢰가 아니다.

신뢰와 방임의 구분은, 큰 그림에 대한 방향성을 얼마나 명확하게, 그리고 사전에 공유했느냐에 달려 있다.

지시의 미덕: 명확함은 존중이다

지시형 리더십은 흔히 낡고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명확한 지시에는 종종 깊은 존중이 담겨 있기도 하다.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생각해봤습니다." 이것이 지시의 본질이다.

리더가 상황을 분석하고, 역할을 나누고 전달할 때 구성원은 '내 자리가 여기구나'를 알고 안심할 수 있다.

내 역할을 추측하느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이 효과는 두드러진다.

스타트업이 갑작스러운 서비스 장애를 맞닥뜨렸을 때, '다들 알아서 잘 해봐요'는 자율이 아니라 방기다.

이 때 구성원에게 필요한 건 격려가 아니라 "지금 A는 이것을, B는 저것을"이라는 명확한 판단이다.

혼돈 속에서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리더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문제는 이 미덕이 쉽게 독이 된다는 점이다. 지시가 너무 잦으면 구성원은 생각을 멈춘다.

'어차피 위에서 다 결정해줄 거잖아.' 자율성이 사라진 조직은 리더 없이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강한 지시형 리더가 떠난 자리에 종종 혼란이 찾아오는 이유기도 하다.

자율의 미덕: 신뢰는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반대편에서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가 나를 믿는다는 느낌은 그 자체로 동력이 된다.

"이 프로젝트는 당신이 알아서 이끌어봐요." 이 한 마디에 사람들은 다르게 일한다.

지시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답하고, 판단하며, 결과에 책임을 진다.

그 외롭지만 안전한 과정 속에서 사람은 배우고 성장한다.

손흥민처럼 능력이 충분히 입증된 구성원에게 세세한 지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때가 많다.

능력 있는 사람이 마이크로매니지먼트를 받을 때 느끼는 것은 단 하나다. ‘불신’

내 능력과 판단을 신뢰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의 결말은 대개 조직을 떠나는 데 있다.

그러나 자율에도 함정이 있다. 자율은 '방향이 명확할 때'만 그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의 자율은 각자도생일 뿐이다.

그래서 리더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방향과 목적은 리더의 것이다. 리더가 말해줘야 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가', '이번 경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전략은 무엇인가'

이건 리더가 말해야 한다. 구성원이 스스로 유추하거나, 각자의 기량과 경험에만 맡기면 안 된다.

그리고 방법과 실행은 구성원의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안다.

손흥민에게 드리블 타이밍을 지시하는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 아니듯,

세부 실행까지 리더가 틀어쥐는 건 신뢰의 낭비다.

홍명보 감독의 문제가 있었다면, 어쩌면 그것은 지시가 잘못되었거나 너무 많이 해서가 아니라,

'왜 우리가 오늘 이겨야 하며, 전략적 의도는 무엇인가'라는 맥락을 충분히 공유했는가의 문제였을지 모른다.

그 맥락이 선수들에게 충분히 공유됐다면,

결과는 같았더라도 경기는 달라 보였을 것이다. 졌더라도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아쉬웠던 건 패배 그 자체보다, 전략이나 의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흥민의 "특별한 말씀이 없으셔도"라는 말도, 성숙한 프로의 고백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리더가 채워줬어야 할 자리를 선수가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The Other Game은 스포츠 씬 속 리더십과 마인드셋을 연구합니다.
본게임 너머, 경기장 밖의 ‘또 다른 게임’을 다루는 방식이 개인과 팀의 성장을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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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
The Other Game
스포츠에서의 리더십과 팀 문화를 연구하여, 그 인사이트를 개인과 조직에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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