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Intro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유독 끈끈해 보이는 관계들이 있다. 점심시간마다 늘 함께하는 고정 멤버, 회의실에서도 나란히 앉아 짧은 눈빛과 암호 같은 말로 의사결정을 공유하는 사람들. 얼핏 보기엔 팀워크가 좋아 보이지만, 때로는 조직 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든다.
김미경 대표는 한 강연에서 이를 두고 “업무와 업무 사이에 관계의 팔짱을 끼지 말라”고 표현했다. 관계 자체를 경계하라는 뜻이 아니다. 특정 관계가 업무의 흐름을 가로막는 순간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팔짱을 끼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결속은 단단해진다. 하지만 그 원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다른 구성원에게는 친밀함이 곧 벽이 된다.
2. 관계의 팔짱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자신과 유사한 배경, 가치, 경험을 지닌 대상에게 더 쉽게 끌린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유사성 매력 효과(Similarity-Attraction Effect)다. 낯선 조직 환경에서 ‘내 편’을 찾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적응 전략이며, 초기 조직 사회화 과정에서는 안정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관계가 업무 공간에서 고착화될 때 발생한다. 특정 소그룹의 결속이 강해질수록 정보와 의사결정은 그 안에서만 순환하고, 외부와의 소통은 점차 줄어든다. 이는 조직 차원에서 사일로(silo) 현상으로 이어진다.
“우리 팀 일은 여기까지”, “저 부서와는 말이 안 통한다”는 태도가 쌓이면, 협업이 전제된 현대 조직은 필연적으로 민첩성을 잃는다. 관계의 문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흐름의 문제다. 팔짱 낀 관계는 의도와 무관하게 조직의 정보 비용과 조정 비용을 증가시킨다.
3. ‘관계’는 ‘실력’을 대체하지 않는다
조직에서 개인의 생존과 성과는 ‘업무 역량’과 ‘관계’라는 두 축 위에 놓인다. 그러나 이 둘의 위계는 분명하다. 관계는 실력을 증폭시키는 요소이지, 실력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다.
충분한 전문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는 협업 속도를 높이고, 갈등 조정 비용을 줄이며, 성과를 가속화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작동한다. 반면 역량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팔짱을 통해 관계에 의존하는 사람은, 그 관계를 협업을 위한 연결망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거나 입지를 방어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조직에서의 관계는 언제나 경제적이다. 성과를 키우는 자산이 되기도 하고, 정보 흐름을 막는 비용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관계의 존재가 아니라, 그 관계가 성과 창출에 기여하는가다. 동료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를 감지한다. 관계가 업무를 매끄럽게 만드는지, 아니면 공적 기준을 흐리는지 조직은 침묵 속에서도 평가를 내린다.
4. 성과 중심 조직은 ‘팔을 뻗는 사람들’로 움직인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관계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팔짱을 끼는 대신 팔을 뻗는다. 자신이 모르는 영역의 전문성을 가진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타 부서의 맥락과 제약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들에게 관계란 ‘내 편 만들기’가 아니라 업무의 지평을 확장하는 네트워크다.
팔짱을 풀어야 옆 사람이 보이고, 다른 부서의 언어가 들린다. 폐쇄적인 소그룹의 안락함을 벗어나 조직이라는 광장으로 나올 때, 개인의 학습도 조직의 혁신도 시작된다. HR이 강조하는 협업, 심리적 안전감, 학습 문화 역시 이런 개방된 관계 위에서만 작동한다.
5. 마무리. 당신의 관계는 성과로 연결되고 있는가?
지금 나의 조직 생활을 돌아보자. 특정 동료와의 친밀함이 혹시 다른 구성원의 제안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친밀함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조직은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젓는 공동체다. 각자가 맡은 역할에서 전문성을 다하되,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는 열린 관계가 필요하다. 이제 팔짱을 풀자. 그리고 그 손으로 협업을 요청하고, 이해를 구하고, 연결을 확장하자. 실력이라는 단단한 구조 위에 성과로 이어지는 관계가 더해질 때, 조직과 개인은 함께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