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첫날, 내년 사업계획을 앞둔 경영자와 실무자들이 모이는 포럼 FORESIGHT KOREA 2027에 다녀왔다. 올해 주제는 "AX: Transforming into an AI-Native Company", AI를 도구로 쓰는 회사를 넘어 AI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회사로 바뀌는 것이었다. 경제, 경영전략, 기술, 마케팅, 조직과 HR까지 다섯 갈래의 강연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각 강연의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후기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이 글에서는 강연 하나하나보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큰 흐름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그 흐름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AI를 쓰는 방식,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미 바뀌기 시작했고, 앞으로는 더 빠르게 그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회사에서 AX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변화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과거: 무엇부터 해야 하나 | 현재: 다 쓰는데 왜 성과가 없나 | 미래: 일을 다시 짠다 | |
|---|---|---|---|
AI를 쓰는 방식 | 써야 하나, 어떻게 시작하나를 고민하는 개인 단위의 실험 | 누구나 쓰지만 기존 업무 위에 얹은 '덧대기' | 업무 흐름 안에 AI가 들어가고, 에이전트가 동료가 된다 |
조직을 보는 시각 | 몇 명이, 누가 이 일을 맡는가 | 몇 명이 얼마나 AI를 쓰는가 | 사람과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구조를 누가 설계하고 책임지는가 |
일을 보는 시각 | 직무 단위, 한 사람의 몫 | 과업으로 쪼개 자동화할 것을 찾기 시작 | 이 일이 왜 존재하는지부터 다시 묻고, 사람은 판단과 책임에 선다 |
올봄 오프피스트의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내용이 아주 좋았었고 올해 여러 세미나를 다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자리였다.
불과 5~6개월 전인데, 그때 강연장의 공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 당시에는 기업마다 AX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질문은 대부분 "어떤 도구를 써야 하나", "그래서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기의 AI는 관심 있는 개인이 먼저 써 보는 도구였다. 아니면 조직이 제공해 주기 시작한 단계였다. 누군가는 보고서 초안을 맡겨 보고, 누군가는 회의록을 정리해 봤다. 조직은 그 시도를 지켜보거나 가이드를 만들고 있었다.
조직과 일을 보는 눈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였다. 조직은 여전히 '몇 명이 있는가'로 설명되었고, 일은 '누가 맡는가'로 나뉘었다. 직무가 있고, 그 직무를 맡은 사람이 있고, 사람은 1인분의 일을 했다. AI가 들어왔지만, 그 AI를 놓을 자리를 고민하기보다 사람의 손에 도구를 하나 또는 여러개 제공하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AI를 써야 하느냐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었다. 단순하고 정형적인 일은 AI에게 맡기고, 복잡하고 창의적인 일은 사람이 결정하고 검증한다. 내가 일하는 IT 기업에서도 이 방향은 거의 굳어졌다. AI를 다루는 개인의 역량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팀장과 임원들의 인식도 함께 올라왔다.
그런데 새로운 질문이 자주 등장했다. 다들 쓰는데, 왜 회사의 성과는 그만큼 달라지지 않을까.
컨퍼런스에서 공유된 데이터가 이 고민을 숫자로 보여줬다. AI 도입률은 이미 천장에 닿았지만, 그것을 실제 성과로 바꾼 기업은 15분의 1 정도에 그친다. 시범 프로젝트의 95%는 이익을 만들지 못했다. 개인 생산성이 좋아졌다는 응답은 80%였지만, AI로 아낀 시간의 40%는 결과물을 고치고 검증하는 데 다시 쓰인다.(이중학 교수님 강연 중) 개인은 빨라졌는데, 조직은 빨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AI의 성능보다 일의 구조에 있었다. '덧대기(Bolt-on)'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기존 업무 흐름은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AI를 얹는 방식이다. 이메일 정리나 자료 요약처럼 혼자 바꿀 수 있는 일은 금세 빨라진다. 하지만 회의, 보고서 양식, 결재 단계, 검토 절차처럼 여럿이 함께 합의해야 하는 일은 반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는다.
AI 도구 배포 → 개인의 속도 상승 → 회의·보고·검토 절차는 그대로 → 아낀 시간이 수정과 재작업으로 회수 → 조직의 성과는 제자리
이 도표을 보며 꽤 뜨끔했다. AX를 맡은 사람으로서 나 역시 그동안 "몇 명이 쓰는가", "얼마나 자주 쓰는가", "몇 명이 교육을 들었는가"를 먼저 세고 있지 않았나 돌아보게 됐다. 사용량은 변화의 출발점일 뿐, 변화 그 자체는 아니다. 앞으로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이 바뀌었는가"다. 일의 순서가 바뀐 업무가 몇 개인지,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끝난 일이 얼마나 되는지, 시작부터 끝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었는지 같은 것들이다. AI 투자의 성과는 '아낀 시간'이 아니라 '바뀐 결과'로 재야 한다.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 동안 여러 강연을 들으며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조직과 일을 바라보는 단위와 시각이었다.
일을 보는 눈: 직무에서 '동사'로
지금까지 우리는 일을 '직무'로 묶어 이야기했다. 마케터의 일, 인사담당자의 일, 기획자의 일. 그런데 직무 단위로는 AI에게 무엇을 넘겨야 할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을 '자료를 모은다, 표로 정리한다, 초안을 쓴다, 우선순위를 정한다, 최종 승인한다' 같은 동사 단위로 쪼개면 그림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매주 6시간이 걸리던 시장동향 보고서를 다섯 개의 동사로 나눠 보면, 자료 수집과 정리처럼 규칙이 분명하고 반복되는 일은 AI가 맡을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나눠 보니 6시간 중 3.5시간이 자동화 후보였다고 한다. 사람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일이다.
직무 → 동사 단위의 과업으로 분해 → AI가 맡을 일 / AI와 사람이 함께할 일 / 사람만 할 일로 분류 → 사람의 시간을 다시 배치 → 직무를 다시 조립
이렇게 보면 "AI가 내 일을 대체할까"라는 질문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대체되는 것은 직무가 아니라 그 안의 동사다. 그래서 먼저 쪼개 봐야 한다.
조직을 보는 눈: 사람에서 '사람과 에이전트'로
조직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조직은 사람의 합이었다. 몇 명을 뽑고, 누가 잘했는지 평가하고, 얼마를 보상하고, 무엇을 가르칠지가 조직 운영의 중심 질문이었다.
이제는 사람 곁에 AI 에이전트가 동료처럼 들어온다. 법률 검토를 돕는 에이전트, 반대 의견을 내 주는 에이전트, 사업계획 초안을 잡는 에이전트가 팀원 명부처럼 나열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장면을 포럼에서 직접 봤다. 사람과 AI를 함께 하나의 '자원'으로 보는 이 관점을 하이브리드 리소스라고 부른다. 그 화면을 보며 메모장에 "이게 기본이다"라고 적었다.
그러면 조직이 던지는 질문도 바뀐다.
사람을 관리할 때의 질문 | 일을 설계할 때의 질문 |
|---|---|
몇 명을 뽑을 것인가 | 이 일은 어떤 동사로 이루어져 있는가 |
누가 잘했는가 | 사람과 에이전트에게 일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
얼마를 줄 것인가 |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확인하고 판단할 것인가 |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성과는 누구의 것으로 기록할 것인가 |
'사람(人)'을 관리하던 시선이 '일(事)'을 설계하는 시선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그동안 '사람'을 기본 단위로 일을 이야기해 왔다. 누가 이 일을 맡을지, 몇 명이 필요한지, 누가 잘했는지. 이제는 질문의 단위가 '과업'으로 내려와야 한다.
체감상 예전에는 한 사람이 0.3인분에서 많아야 2인분 정도의 일을 했다면, 에이전트 동료를 둔 지금은 그 범위가 10인분까지 넓어진 느낌이다. 사람 수로 일을 세던 방식으로는 이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지금 시작된 변화는 앞으로 더 빠르게 진전될 것이다. AI는 몇 주 단위로 새로운 기능을 내놓고, 생성과 추론을 넘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까지 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 여행 계획을 짜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약과 결제까지 알아서 하는 식이다. 도구가 이렇게 빨리 바뀔수록 도구에 맞춰 일하는 조직은 계속 흔들린다. 일의 구조를 바꿔 둔 조직만 도구가 바뀌어도 성과를 쌓을 수 있다.
포럼에서 들은 이야기 가운데, 앞으로의 방향을 보여주는 인상 깊은 결론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질문의 수준이 조직의 수준이 된다
"이 업무에 AI를 어떻게 붙일까?"라고 물으면 덧대기가 되고, "이 일은 왜 존재하는가? 오늘 처음 만든다면 지금과 똑같이 설계할까?"라고 물어야 일의 구조가 다시 그려진다는 이야기였다. 앞으로 일 잘하는 사람은 좋은 질문을 던지고, 판단 기준을 분명히 하고, AI의 결과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 말하자면 '결정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도 함께 나왔다.
둘째, 조직이 사람의 일을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진다.
AI가 실행을 맡을수록 사람에게는 방향을 정하고,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일이 남는다. 공감하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일도 사람의 몫이다.
이와 함께 두 가지 숙제가 제시되었다. 하나는 기록되지 않은 감각이다. 오래 일한 사람의 몸에는 본인도 설명하기 어려운 판단의 감각이 있는데, AI는 기록되지 않은 것을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이 감각을 꺼내 조직의 지식으로 남기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다른 하나는 신입이다. 자료 조사, 보고서 초안, 번역처럼 신입에게 먼저 맡기던 일부터 AI가 가져가고 있다. 신입을 뽑지 않으면 당장은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중간관리자와 리더를 키울 길이 끊긴다. AI가 신입의 일을 가져간다면, 신입이 경험을 쌓을 길을 조직이 새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람이 머물 이유도 설계의 대상이 된다
"사람은 월급 때문에 입사하지만, 감정 때문에 퇴사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 내 일에 담긴 이야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 같은 것을 '정서적 연봉'이라고 부른다. 일하는 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사람이 회사를 고르는 시대가 오고 있고, AI가 일을 가져갈수록 사람을 회사에 머물게 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것들이라는 이야기였다. AX는 일을 기계에게 넘기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이 회사에서 일할 이유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2027년에 우리가 붙잡게 될 질문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구조는 누가 설계하고,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하루를 마치고 나오면서 머릿속 문장 몇 개가 바뀌어 있었다.
"AI를 잘 쓰면 성과가 난다"에서 "일의 구조를 바꿔야 성과가 난다"로.
"몇 명이 얼마나 쓰는가"에서 "무엇이 바뀌었는가"로.
"누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에서 "이 일은 어떤 동사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로.
"AI에게 이 일을 어떻게 시킬까"에서 "이 일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로.
포럼의 주제였던 'AI Native'라는 말도 다르게 읽혔다. 모국어(native language)처럼 AI를 쓰며 일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언어 없이 일할 수 없고, 언어 없이 소통할 수 없으며, 언어 없이 성과를 낼 수 없다. AI가 그 언어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조직에도 AI를 하나의 인재로 받아들이고,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제대로 익힌 사람을 더 높은 성과로 인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솔직히 일을 오래한 세대인 나에게 이 변화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원치 않게 다가온 디지털 세상 앞에서 두 손 들고 항복해야 하는 기분도 든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 일을 동사로 쪼개고, 어느 지점에 사람이 서야 하는지 판단하는 감각은 그 일을 오래 해 본 사람에게 있다. 그 감각에 AI를 얹을 수 있다면, 항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의 경쟁력은 하나의 질문으로 정리된다. 나는 AI와 함께 몇 인분까지 해낼 수 있는가. 그리고 AX를 맡은 사람으로서 질문이 하나 더 남는다. 우리 조직은 AI를 얹고 있는가, 일을 다시 짜고 있는가.
아직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가진 조직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AI 도입 그다음을 고민하는 분들께 이 글이 작은 질문 하나를 건넬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포럼에서 들은 강연별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후기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