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에서 나온 연구 결과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15개 기업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100:80:100' 모델을 실험했다. 임금은 100% 그대로, 근무시간은 80%로 줄이되, 산출량은 100%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답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고, 6곳은 오히려 생산성이 올랐다. 그리고 15곳 중 14곳이 실험이 끝난 뒤에도 4일 근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Natur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이건 호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 연구: 호주, 캐나다, 아일랜드, 뉴질랜드, 영국, 미국의 141개 조직의 2,896명을 분석한 결과, 번아웃 / 직무만족 / 정신건강 / 신체건강 모두 개선됐다. 근무시간을 줄이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변화였다.
독일: 2024년 45개 기업이 6개월간 시험했는데, 매출은 전년과 큰 차이 없이 유지됐고 이직은 약 42% 줄었으며 번아웃은 크게 감소했다. 참여 직원의 약 90%가 웰빙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영국: 200곳이 넘는 기업이 임금 삭감 없이 4일 근무제를 영구 도입했다. 마케팅 에이전시부터 IT 기업, 컨설팅, 자선단체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소식들은 분명 반갑다. 매주 하루를 더 쉬는데 월급은 그대로고 회사도 손해를 안 본다니, 이보다 좋은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실제로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심각한 번아웃 문제가 있다. Beyond Blue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호주 노동자 2명 중 1명이 번아웃을 겪고 있고, 특히 18~29세 청년층이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지쳐 있다. 덜 일하고 싶다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생존의 신호에 가깝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데이터를 보면서 나는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질문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변화의 속도가 낯설다. 한국이 주 6일에서 주 5일로 넘어오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기억한다. 주 5일제는 2004년부터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됐고, 사회 전체에 자리 잡기까지 다시 여러 해가 걸렸다. 주 52시간제만 해도 2018년에야 우여곡절 끝에 시행됐다. 우리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언제나 긴 진통을 겪어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진통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 4.5일제', 나아가 '주 4일제' 이야기가 나온다. 방향은 옳을지 몰라도, 사회가 이 속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는 다른 문제다.
둘째, 성공 사례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위의 실험들을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하루를 줄인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했다. 불필요한 회의를 없애고,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거나 위임하고, 가치가 낮은 일을 아예 제거했다. 즉 '5일 치 일을 4일에 욱여넣는' 게 아니라 '더 집중된 4일'을 만든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조직의 업무 밀도, 관리 역량,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과연 모든 조직이 이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정직하게 말하면, 4일 근무제 연구에는 한계와 반론도 분명히 있다.
신기성 효과(novelty effect): 실험에서 나타난 생산성 향상 중 일부는, 직원들이 '관찰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거나 변화가 새롭고 흥미로워서 더 열심히 일한 결과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이 효과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업종의 벽: 의료, 응급 서비스, 물류, 접객·숙박업처럼 사람이 상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산업에서는 구현이 훨씬 어렵다. 근무시간 단축 논의는 이런 부문을 없는 것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도 이미 건설업계 등에서 공사 기간 연장과 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측정의 문제: 위 연구들은 '생산성'의 정의를 각 기업이 스스로 정하게 했다. 덕분에 업종별 현실은 반영했지만, 기업 간 직접 비교는 어려워졌다. 좋은 결과가 곧 '어디서나 통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반론이 데이터를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순한 축하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한국의 상황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2025년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정부는 2026년부터 근무시간 단축을 지원하는 장려금 사업을 전국 단위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 조사에서는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주 4.5일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배경 데이터를 보면 방향은 이해가 된다. 2022년 기준 한국 임금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4시간으로 OECD 평균(1,719시간)보다 185시간이나 많다. 우리는 여전히 오래 일하는 나라다. 줄일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찬성'과 '준비'는 다르다는 데 있다. 하루를 더 쉬고 싶은 마음은 대부분 같다. 하지만 그 하루를 감당하기 위해 조직이, 산업이, 그리고 사회 전체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훨씬 얕다. 임금은 유지될 수 있을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는? 서비스가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업종은?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 채 제도만 앞서가면, 좋은 취지가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 수도 있다.
이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AI다. 호주 연구를 이끈 존 홉킨스 교수도 이 지점을 직접 짚었다. AI가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개인의 산출량을 끌어올릴수록, 그렇게 확보된 생산성을 '누가, 어디에 쓸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된다.
선택지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같은 근무일에 더 많은 일을 얹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시간을 일부 되찾도록 하는 것. 4일 근무제는 후자의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언제나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가정은, 사실 자연법칙이 아니다. 주 5일 40시간이라는 기준도 원래 자연법칙이 아니라 20세기 노동운동이 만들어낸 합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AI가 만든 여유를 어디에 쓸지 다시 합의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흐름은 반갑고, 데이터도 대체로 그 방향을 지지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됐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방향이 옳다는 것과 지금 당장 갈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니까.
그래서 이 글은 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끝내려 한다.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당신의 일터에서 근무시간을 하루 줄인다면, 그 일은 실제로 4일 안에 소화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야근으로 돌아올까?
당신은 '덜 일하는 것'과 '덜 버는 것' 사이에서 어디쯤에 서 있나?
의료, 물류, 서비스처럼 상시 근무가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이 변화가 공평하게 닿을 수 있을까?
AI가 만들어줄 여유가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삶' 중 무엇에 쓰고 싶은가?
주 6일에서 5일로 오는 데 우리는 오랜 시간을 썼다. 다음 한 걸음은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그 걸음을, 우리는 함께 감당할 수 있을까.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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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Natur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 호주 15개 기업 100:80:100 4일 근무제 연구
- Nature Human Behaviour (2025), "Work time reduction via a 4-day workweek finds improvements in workers' well-being" — 6개국 141개 조직·2,896명 분석.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2-025-02259-6
- 독일 뮌스터대학교/4 Day Week Global, 2024 독일 45개 기업 파일럿 결과. https://www.4dayweek.com/germany-2024-pilot-results
- 영국 4 Day Week Foundation — 200개 이상 기업 영구 도입 (2025). https://www.theguardian.com/money/2025/jan/27/two-hundred-uk-companies-sign-up-for-permanent-four-day-working-week
- Beyond Blue (2025) — 호주 노동자 번아웃 조사, 2명 중 1명 경험. https://www.beyondblue.org.au/about/media/media-releases/1-in-2-Australians-Facing-Workplace-Burnout
- 고용노동부, 경기도 주 4.5일제 시범사업 및 2026년 워라밸+ 4.5 프로젝트 관련 국내 보도 (2025) — 한국 연평균 노동시간 1,904시간(OECD 평균 1,719시간), 직장인 찬성률 등
- 원문: GeekNews, "호주 4일 근무제 연구 데이터, 생산성 향상 보여줘" (news.hada.io/topic?id=29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