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가치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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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가치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다들 그 가치, 정말 지키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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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환 Oct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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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지 못한 질문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지원자가 물었다. "핵심가치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구성원 모두가 그걸 잘 지키고 있나요?" 그리고 하나 더. "핵심가치를 내재화하기 위한 교육은 잘 되어 있나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핵심가치가 정해지면 그것을 내재화하기 위한 활동과 교육이 이어져야 하고, 그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경험이 쌓일수록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문화답게' 작동한다는 것을. 그런데 지금 우리 상황을 솔직히 떠올려보니, 핵심가치는 그저 벽에 걸린 구호에 가까웠다. 말문이 막힌 건 그래서였다.

나는 핵심가치가 기업 문화의 가장 큰 축이라고 믿는다.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되고, 어떤 일 앞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공통의 관념이 있다는 것. 그 위에서 각 조직의 하위 문화가 파생되고, 그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돌아갈 때 이상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분명한데, 현실은 그 믿음을 배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은 그 지원자의 질문에 대한 뒤늦은 답이다. 핵심가치가 진짜 가치가 되려면, 인사기획과 인사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먼저 인정할 것: 왜 구호에 그치는가

마침 좋은 참고가 되는 글을 읽었다. HBR에 실린 닉 홉슨과 마지 워렐의 "Will Your Organization Stand By Its Values—Even When It's Hard?"(2026)다. 이 글의 질문이 오래 남았다. "조직의 가치는 대체 언제 진짜 가치가 되는가?"

답은 역설적이다. 매출이 잘 나오고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을 때 가치를 지키는 건 어렵지 않다. 진짜 시험대는 정반대의 순간이다. 원칙을 지키면 돈을 잃고, 일정이 늦어지고, 중요한 고객이 화를 내는 바로 그때다.

HBR은 1996년 존슨앤드존슨 CEO 랄프 라슨의 말을 인용한다. 요지는 이렇다. 핵심가치는 경쟁우위를 주기 때문에 갖는 게 아니라, 때로 경쟁에서 불리해지더라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즉 가치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이 비용을 감수할 각오가 없으면, 그것은 가치가 아니라 희망사항이다.

여기서 우리 핵심가치가 구호에 그치는 이유가 보인다. 대부분의 핵심가치는 '해야 할 것'만 담고 있다. 정직, 존중, 협업, 고객 중심. 모두 추상명사다. 추상명사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성과 압박이 커질수록 해석의 폭은 더 넓어진다. "혁신을 위해 이번 한 번만", "고객을 위해 일단 납기부터", "회사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은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의 판단 기준이 비어 있는 것이다.


전환점: 가치를 '하지 않을 일'로 다시 쓰기

HBR이 제안하는 해법은 발상의 전환이다. 가치의 힘을 '거부(refusal)'의 관점에서 보라는 것. 무엇을 추구하는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홉슨과 워렐은 이를 '가치의 거부 프레임워크(Refusal Framework of Values)'로 정리하고, 세 가지 도구를 제시한다.

1.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명확히 긋는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하지 않을 행동을 정한다.

2. 그 선을 집행할 권한과 용기를 가진 사람을 지정한다: 멈출 권한이 없으면 선은 작동하지 않는다.

3. 그 교훈을 이야기로 보존해 문화로 만든다: 원칙을 지킨 사례를 조직의 서사로 남긴다.

이것이 왜 강력한가. 추상명사 "정직"은 해석이 갈리지만, "매출을 놓치더라도 고객의 판단에 중대한 정보를 감추지 않는다"는 문장은 해석의 여지가 없다. 가치가 비로소 행동의 언어가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조직문화는 말이 아니라 예외에서 드러난다. 벽에는 "고객 중심"이라 써 있는데 최고 실적자가 고객을 기만해도 매출 때문에 넘어간다면, 구성원이 배우는 진짜 가치는 "실적만 좋으면 된다"이다. Mayer 등(2012)의 윤리적 리더십과 문화 연구가 보여주듯, 사람은 슬로건보다 보상과 처벌을 훨씬 빨리 읽는다. 봐주는 행동이 진짜 가치다.

이 지점이 나에게는 결정적이었다. 우리가 핵심가치를 내재화하지 못한 건 교육이 부족해도 맞지만,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의 규칙과 그것을 지킨 사람을 지키는 장치가 없어서였다. 그러니 인사기획과 인사교육의 변화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인사기획이 바꿔야 할 것: 가치를 제도의 뼈대에 심기

핵심가치는 교육만으로 내재화되지 않는다. 사람은 교육받은 대로가 아니라 평가받고 보상받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기획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첫째, 채용에 가치를 넣는다: 다만 '적합'이 아니라 '거부선'으로.

흔히 "컬처 핏"을 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자칫 '우리와 비슷한 사람'을 뽑는 동질화로 흐른다. 대신 거부선을 묻자. 예를 들어 '정직'이 가치라면, 면접에서 이렇게 묻는다.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고객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했습니까?" 추상적 동의가 아니라 손해를 감수한 실제 경험을 본다. 앞서 다룬 '왜를 집요하게 묻는 면접'이 여기서 다시 쓰인다.

둘째, 평가와 승진의 기준에 가치를 명시적으로 넣는다.

HBR에 인용된 B회사 사례가 아프게 박힌다. 핵심가치가 '협업'인데, 자기 사업부 숫자를 위해 다른 부서에 비용을 떠넘긴 임원이 연말에 높은 평가와 승진을 받는다. 그 순간 '협업'은 폐기된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기 숫자만 맞추면 된다." 그래서 평가는 무엇을 달성했는가뿐 아니라 어떻게 달성했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 원문에 나온 중소기업처럼 "결과는 CEO가 책임지고 직원은 과정(태도)에 집중한다"는 설계는 극단적일 수 있지만, 방향성만큼은 곱씹을 만하다.

셋째, 원칙을 지킨 사람의 손해를 조직이 떠안는 구조를 만든다.

거부 프레임워크의 세 번째 도구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계약을 포기한 영업사원에게 "왜 숫자를 못 맞췄냐"고 다그치고, 안전 때문에 일정을 늦춘 팀장에게 "일정 관리 실패"라고 평가하면, 다음부터 아무도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가치를 지키다 생긴 손실'을 평가에서 면책하는 규칙이 제도에 명시돼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앞의 모든 선언은 무너진다.

넷째, 가치 충돌의 우선순위를 미리 정한다.

고객 중심과 수익성이 충돌하면 어느 쪽이 먼저인가. 속도와 안전이 부딪치면 누가 멈출 수 있는가. 성과와 존중이 충돌하면 최고 성과자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가. 이 질문들의 답을 평시에 문서로 정해두는 것이 인사기획의 핵심 과제다. 충돌의 순간에 정하면 늦는다.


인사교육이 바꿔야 할 것: '전달'에서 '경험'으로

제도의 뼈대가 섰다면, 교육은 그 뼈대에 피를 돌게 하는 역할이다. 다만 지금처럼 '가치 선언문을 전달하는 교육'으로는 안 된다. 핵심가치는 암기 대상이 아니라 판단의 근육이기 때문이다.

첫째, 온보딩을 '선언 전달'에서 '딜레마 경험'으로.

입사 첫날 가치 문구를 읽어주는 대신, 실제로 있었던 가치 충돌 상황을 시나리오로 던진다. "매출이 걸린 계약인데 제품 한계를 설명하면 계약이 미뤄진다. 당신이라면?"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토론하게 하고, 그다음 회사가 실제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온보딩은 하루 행사가 아니라 30-60-90일의 여정으로 설계해, 멘토와 버디가 그 가치를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게 한다.

둘째, 케이스 기반 '가치 딜레마 워크숍'을 정례화한다.

우리 회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가치 충돌 사례(익명화)를 가지고, 팀 단위로 "이 상황에서 우리 가치는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가"를 토론한다. 추상명사를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가치를 적용하는 연습이다. 앞서 동기와 OCB 글에서 강조했듯, 태도와 판단은 강의가 아니라 경험의 반복으로 형성된다.

셋째, 리더 교육을 최우선에 둔다.

사람은 슬로건이 아니라 리더의 행동을 읽는다. 리더가 가치를 어겼을 때 조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곧 진짜 교육이다. 그래서 관리자 교육의 핵심은 "가치를 설명하는 법"이 아니라 "가치를 지키다 손해 본 부하를 어떻게 보호하는가", "최고 성과자가 가치를 어겼을 때 어떻게 다루는가"여야 한다. 리더 교육 없는 구성원 교육은 밑 빠진 독이다.

넷째, 스토리텔링으로 가치를 문화로 전환한다.

거부 프레임워크의 세 번째 도구가 교육의 언어로 옮겨지는 지점이다. 원칙을 지키느라 손해를 감수한 사람의 이야기를 조직의 영웅 서사로 공유한다. "작년에 OO팀장이 안전 때문에 납기를 늦췄고, 회사는 그 결정을 지지했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면, 그것이 신입에게 "우리 회사는 이런 곳"이라는 문화로 전수된다. 가치는 문서가 아니라 구성원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비로소 내재화된다.


구체적으로: '존중'이라는 가치 하나를 예로

예를들어 '존중'이라는 흔한 가치 하나를 다음과 같이 끝까지 밀어보자.

  • 거부선 정의: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공개적 모욕과 인격적 공격은 허용하지 않는다."

  • 집행 권한: 폭언을 목격한 누구나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고, HR과 해당 임원이 성과와 무관하게 조치할 권한을 갖는다.

  • 채용: 면접에서 "압박 상황에서 동료에게 날을 세웠던 경험과, 그때 어떻게 했는지"를 묻는다.

  • 평가: 360도 피드백에서 '존중' 항목이 일정 수준 미달이면, 성과가 아무리 높아도 승진에서 제외한다.

  • 면책: 부당한 폭언을 상부에 보고한 사람이 그 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로 보호한다.

  • 교육: 신입 온보딩에서 "최고 실적자의 폭언을 묵인했던 가상 사례"를 토론하고, 리더 교육에서 "내 팀 에이스가 폭언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실습한다.

  • 스토리텔링: 과거에 성과 좋은 리더에게도 존중 기준을 똑같이 적용했던 사례를 조직의 이야기로 남긴다.

이렇게 하면 '존중'은 벽에 걸린 두 글자가 아니라, 채용과 평가와 교육과 일상에 스며든 살아 있는 기준이 된다. 그 지원자가 다시 "구성원 모두가 지키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나는 완벽하진 않아도 "우리는 이렇게 지키려 설계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남는 생각

핵심가치가 구호에 그쳤던 건, 우리가 가치를 '좋은 말'로만 적어두고 그것을 지키는 비용을 치를 준비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치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 우리는 그 값을 계산해본 적이 없었다.

핵심가치가 진짜 가치가 되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고, 그것을 지킨 사람을 지키는 데서 시작되는 듯하다. 인사기획은 그 거부선을 제도의 뼈대에 심고, 인사교육은 그것을 경험과 이야기로 살아나게 한다. 둘이 맞물릴 때, 비로소 가치는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도 '문화답게' 전해진다.

물론 이 모든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원칙을 지킨 사람의 손해를 조직이 떠안는다'는 대목은, 경영진의 결심 없이는 한 줄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움이야말로, 가치가 가치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잘될 때가 아니라 어려울 때 쓸모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이 핵심가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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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생각 원문: [지금리더] "핵심가치를 좀 더 실효적으로!" (뉴스레터). HBR 아티클 소개 및 가상 사례(A기업 신뢰, B회사 협업), 거부 관점 3단계 실천법 제시.

  • Nick Hobson & Margie Warrell (2026). "Will Your Organization Stand By Its Values—Even When It's Hard?", Harvard Business Review. — 'Refusal Framework of Values' 세 도구: ①넘지 말아야 할 선 긋기, ②집행할 권한·용기를 가진 사람 지정, ③이야기로 교훈 보존. J&J Ralph Larsen(1996)의 핵심가치관 인용. https://hbr.org/2026/09/will-your-organization-stand-by-its-values-even-when-its-hard

  • Mayer, Aquino, Greenbaum & Kuenzi (2012).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 조직 여러 계층의 윤리적 리더십과 윤리적 문화가 구성원의 윤리적 인식·행동에 미치는 영향. 보상과 처벌이 슬로건보다 강하게 작동.

  • 핵심가치 내재화 실무 자료(2025~2026): 가치 기반 인정·보상(value-based recognition), 미션 연계 온보딩(30-60-90일),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의 번역, 채용·승진·보상 의사결정에의 반영 등.



환
현지환
프로액티브 한 문제해결자
L&D 직무를 졸업하며, 개발자에서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 교육과 조직문화 담당자로 일하면서 얻은 모든 인사이트와 노하우를 공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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