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판 위에서 중심을 잡는 일

흔들리는 판 위에서 중심을 잡는 일

일터에서 마주하는 치열한 균형 감각과 실무자의 노련함에 대해서
조직문화리더십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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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Grace)Sep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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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 AI Connect 2026 — 데이터로 여는 HR의 다음 단계, 2026.11.6 코엑스 오디토리움 3F

마치 빠른 실행과 빠른 실패가 미덕이 된 것 처럼, 속도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즉각적으로 해결책을 내놓고 강하게 밀어붙여 해결하는 모습이 박수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관망하는 태도는 무능함이나 소극적인 자세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양쪽의 입장을 듣고 고민하는 시간을 답답해하며 적당히 타협해서 빨리 결론을 내리라고 재촉하곤 하죠.

사전적 의미의 중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현실에서는 이처럼 이도 저도 아닌 상태나 우유부단함이 중용으로 잘못 해석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양쪽 의견을 섞거나 결정을 미루며 눈치 보는 것을 포장하여 중용이라 부르는 식의 경우입니다.

이런 케이스들을 종종 접하다보니, 문득 제가 HR 현업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중용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무수한 정보와 엇갈리는 감정들 속에서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내는 치밀하고 날카로운 전문성에 가깝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적절히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선별하는 것

인사 업무를 하며 사람과 제도를 연결하다 보면 늘 엇갈리는 선택지 사이에 섭니다. 조직이 어려울 때는 무조건 숫자를 좇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조직이 안정적일 때는 공격적인 자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이때 양쪽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기계적으로 몇가지 솔루션을 섞어버리면 결국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제도가 탄생합니다.

노련한 실무자는 단순히 의견을 일부씩 섞어 타협점을 찾지 않습니다. 지금 조직의 맥락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할지 냉정하게 선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당장의 효율을 위해 차갑게 선을 그을 시점인지 속도를 조금 포기하더라도 사람을 안고 갈 시점인지 맥락을 읽어냅니다. 겉으로는 양쪽의 말을 다 듣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조직의 상황에 맞는 단단한 기준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멈춰 있는 시간의 의미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다림의 시간이 생깁니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상황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 움직일지 나름의 기준을 세워두고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룰을 바꿀 때 무작정 밀어붙이지 않고 구성원들의 피로도나 리더들의 수용성을 조용히 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속으로 가장 덜 다치고 가장 효과적인 지점을 찾아 조용히 영점을 맞추며 다음을 준비합니다.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조직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시기를 계산합니다. 이 미세한 영점 조절을 거친 타이밍에 내딛는 한 걸음은 여러번의 채찍질보다 훨씬 멀리 조직을 움직입니다.

균형을 잡는 노동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흔들리는 판 위에서 매 순간 미세하게 중심을 잡는 치열한 노동입니다.

배가 크게 흔들릴 때 파도의 방향에 맞춰 몸을 낮추고 움직여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성급한 평가와 무관하게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힘은 끝까지 버티며 적재적소에 힘을 싣는 엄청난 균형 감각에서 나옵니다.

일터에서의 균형은 끊임없이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조직이 크게 흔들릴 때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힘은 평소 조용하게 맞춰둔 영점에서 비롯됩니다.

빠르고 단호한 결정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환경에서 이 고요한 균형 감각은 꽤 큰 힘을 발휘합니다. 매 순간 조용하고 기민하게 영점을 맞추는 이 노련함이 제가 현장에서 목격한 중용의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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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Grace)
치우침 없이 비즈니스와 사람의 교집합을 찾는 HRBP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보다 그 꽃을 받쳐줄 토양을 다지는 일에 마음을 둡니다. 다양한 크기의 숲을 지나며 흔들리지 않는 제도의 뼈대를 세우려 치열하게 고민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넘치는 데이터와 엇갈리는 마음들 사이에서 늘 묵묵하게 무게추를 맞춰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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