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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협상이 끝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02 협상이 끝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협상의 성과를 다시 정의하는 연구
노무리더십미드레벨시니어리더임원CEO
보드
스프링보드Jan 28, 2026
5715

왜 어떤 협상은 숫자로는 성공했음에도 현장에서 실패로 기억되고, 어떤 협상은 큰 양보 없이도 ‘잘 된 협상’으로 회고될까요? 이러한 현장 경험을 출발점으로, 협상 성과를 다뤄온 주요 연구들을 하나씩 면밀히 검토해보는 <좋은 협상은 무엇을 남기는가> 시리즈 입니다.


1. 성과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이유

지난 글에서 우리는, 신뢰가 협상에서 공동 성과는 분명히 높이지만, 개인 성과에는 복잡한 영향을 준다는 연구를 살펴봤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다음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협상에서 성과란 정확히 무엇인가?”

대부분의 협상 연구는 오랫동안 경제적 성과, 즉 “얼마나 많이 가져갔는가”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실제로 1993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의 협상 연구를 분석해보면, 사회심리적 요소를 결과 변수로 포함한 연구는 25%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들리는 문장은 조금 다릅니다.  

“돈은 더 받았는데 왜 이렇게 찝찝할까요?”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참 좋은 협상이었어요.”  

이 간극은 무엇을 말해줄까요.

우리가 협상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 자체에, 이미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오늘 글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2. 오늘의 질문: 사람들은 협상에서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

오늘 소개할 논문은 Curhan, Elfenbein, Xu(2006)가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주관적 가치(Subjective Value)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네 개의 연구를 통해 협상의 사회심리적 결과를 체계적으로 탐색하고, 이를 측정하는 도구인 주관적 가치 척도(Subjective Value Inventory, SVI)를 개발했습니다.

이 논문이 던지는 질문은 아주 명확합니다.

협상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 마음속에는 무엇이 남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돈과 조건을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서 분류하고, 이를 다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언어로 정리해보는 작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3. 연구가 밝혀낸 것들

3-1. 연구 1: 사람들이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연구진은 학생, 지역 주민, 협상 실무자 103명에게 최근 경험한 비즈니스 협상과 개인 협상을 떠올리게 한 뒤,
“그 협상에서 무엇이 중요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평균 4.4개의 요소를 적었고, 연구진은 이를 20개 범주로 코딩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옵니다.  

객관적 성과(금액, 품질 등)는 가장 자주 언급되긴 했습니다(31.1%). 그런데 “얼마나 중요했습니까?”라는 중요도 평가에서는, 공정성(5.9점), 신뢰(6.3점), 도덕성(6.7점) 등이 객관적 성과(5.4점)와 비슷하거나 더 중요하게 평가됐습니다.

더 놀라운 건, 참가자의 20%는 객관적 성과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사람들은 말로는 ‘돈이 최고’라고 하지만, 실제로 기억하고 신경 쓰는 것은 훨씬 더 다층적이다”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3-2. 연구 2: 하버드 협상 전문가들의 ‘인지 지도’

이번에는 하버드 협상 프로그램(HNP) 소속 전문가 15명이 등장합니다. 이들에게 연구 1에서 나온 40개 요소를 보여주고, 서로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끼리 묶어보도록 했습니다. 군집분석과 다차원척도법 분석 결과, 네 가지 요인이 도출되었습니다.

도구적 성과에 대한 느낌(Instrumental)

승리감, 금액, 객관적 성과, 공정성에 대한 평가 등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느낌(Self)

체면을 지켰는지, 내 가치관·원칙을 지켰는지, 스스로를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입니다.

협상 과정에 대한 느낌(Process)

내 이야기가 경청됐는지, 절차가 공정했는지, 과정이 존중받는 경험이었는지입니다.

관계에 대한 느낌(Relationship)

신뢰, 유대감, 앞으로도 함께 일하고 싶은지, 관계의 기반이 강화됐는지입니다.

흥미롭게도, 전문가들의 인식에서는 Process와 Relationship이 더 큰 ‘라포(rapport)’라는 개념의 하위 요인으로 묶였습니다. 즉, 사람들은 “절차가 괜찮았다”와 “관계가 좋아졌다”를 서로 깊게 연결된 경험으로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3-3. 연구 3: 측정 도구(SVI) 개발과 검증

이제 연구진은 이 네 가지 요인을 실제로 재기 위한 도구를 만듭니다. 총 16개 문항으로 구성된 Subjective Value Inventory(SVI)입니다. 413명의 MBA 학생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인적 요인분석을 수행한 결과, 4요인 구조가 통계적으로 잘 맞는 모형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각 요인의 신뢰도(Cronbach’s α)는 .70~.88로 양호했지만, Self 요인은 비교적 낮은 .70 수준을 보여, “자기 자신에 대한 느낌”이 그만큼 복잡하고 다면적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3-4. 연구 4: 주관적 가치는 실제로 무엇을 예측하는가

마지막 연구는 “이게 정말 현실에서 중요한 걸 예측하느냐”를 보는 단계입니다. 104명의 MBA 학생이 혼합동기 협상 시뮬레이션을 한 뒤, SVI와 여러 척도에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 이전 협상 상대와 다시 팀을 이루고 싶은지(실제 성적에 영향을 주는 선택)를 물었습니다. 결과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수렴 타당도

  • 신뢰는 Relationship 요인과 가장 강하게 상관했습니다(r=.61).

  • 결과 만족도는 Instrumental 요인과 가장 강하게 상관했습니다(r=.80).

  • 분배 공정성은 Instrumental과(.65), 대인 공정성은 Relationship과(.62) 가장 강하게 연결되었습니

변별 타당도  

SVI 점수는 성격 특성(Big Five, 마키아벨리즘 등)과는 거의 상관이 없었습니다(대부분 r<.20). 즉, SVI는 “그 사람의 성향”보다는, 그 협상에서의 경험을 포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측 타당도

가장 중요한 결과는 이것입니다. 몇 주 후 “저 사람과 다시 팀을 이루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예측할 때, 주관적 가치가 객관적 성과보다 훨씬 강한 예측 변수로 나타났습니다

즉, “얼마나 많이 따냈느냐”보다 “그 협상을 어떻게 느꼈느냐”가, “다시 함께 할 것인가”를 더 잘 설명해준다는 결과입니다.

4. 현장 사례: 공급업체 선정 협상

한 제조사 구매팀이 다섯 개 공급업체와 단가 협상을 진행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최종 후보로 남은 곳은 A업체와 B업체입니다.  

A업체: 가장 낮은 단가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구매팀장은 “무시당한다”, “억지로 끌려간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B업체: 두 번째로 낮은 단가를 제시했습니다.

대신, 협상 과정이 공정했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로 진행됐습니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A업체가 더 “좋은 딜”입니다. 하지만 6개월 후 추가 계약 기회가 생겼을 때, 구매팀이 먼저 연락한 곳은 B업체였습니다.

팀장의 설명은 간단했습니다.

“단가는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함께 일할 파트너를 고르는 거잖아요.
A업체와는 또 협상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 사례는 연구 4의 발견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주관적 가치가 낮으면, 객관적으로 좋은 조건이라도 관계는 지속되지 않습니다.

5. 다음 협상 전에 던져볼 질문

이제 이 연구를, 다음 협상 전에 써볼 수 있는 질문들로 바꿔보겠습니다.

(1) 협상 전: “무엇이 성공인가?”를 네 차원으로 정의하기

협상 전에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이번 협상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금액이나 조건만 떠올리지 말고, 네 가지 차원에서 한 번씩 체크해보면 좋습니다.

  • 도구적 성과(Instrumental): 이번 협상에서 우리는 어떤 객관적 결과를 원하는가?

  • 자기(Self): 이 협상 후에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싶은가? “그래도 내 원칙은 지켰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하는가?

  • 과정(Process): 어떤 방식으로 협상하고 싶은가? 서로 말이 통했다, 공정했다는 느낌이 중요한가?

  • 관계(Relationship): 이 사람, 이 조직과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은가? 다음에도 같이 일하고 싶은가?

(2) 협상 중: “지금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마음속에서 이렇게 체크해 볼 수 있습니다.  

  • 지금 숫자는 어느 정도 확보했는가?  

  • 지금 나 자신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쓸데없이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지는 않은가?  

  • 과정은 공정하고 존중받는 경험으로 느껴지는가?  

  • 이대로 끝나면, 이 사람과 또 마주 앉고 싶은가?  

특히 Self 차원(자존감·정체성)은 실시간으로 느껴지지만, 협상 목표에는 잘 올라가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3) 협상 후: 주관적 가치 점검해보기

협상이 끝난 뒤에는, SVI 16개 문항(혹은 그 축약 버전)을 활용해 네 차원 각각에 대해 간단히 점수를 매겨 보는 것도 좋습니다.

  • 이번 협상에서 가장 낮게 나온 차원은 어디인가?  

  • 그 낮은 점수가, 앞으로 내 선택(다시 이 상대와 협상할지, 다른 파트너를 찾을지)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은가? 

실무에서는 설문을 그대로 쓰지 않더라도, “이번 협상을 4개의 눈으로 다시 본다”는 것만으로도 회고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4) 전략적 질문: 상대의 주관적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

마지막으로, 관계중심 협상 관점에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상대방의 주관적 가치를 어떻게 높여줄 수 있을까?”

연구는, 상대의 주관적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 장기적 협력과 재협상 의사, 그리고 평판 구축에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숫자는 조금 양보하더라도, 상대가 “존중받았다, 공정했다, 같이 일하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설계는 다음 라운드의 협상력을 오히려 키워줄 수 있습니다.

6. 마무리: 진짜 성과는 어디에 있는가

이 연구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협상 성과는 종이 속 숫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금액, 자존감, 공정한 과정, 신뢰 관계를 동시에 협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얼마나 많이 따냈는가”보다 “그 협상이 나와 우리에게 어떤 경험을 남겼는가”가 다음 기회를 결정하는 진짜 성과가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무엇을 얻었는가”를 넘어서, “무엇이 상호작용 자체를 바꾸는가”의 문제로 넘어가 보려고 합니다. 어떤 행동과 전략이 이런 다차원적 성과를 만들어내는지, 관계중심 협상의 관점에서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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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직의 도전이, 성장의 발판이 되도록.
현직 HRM 전문가로, 조직 성과와 사람의 성장을 연결하는 전략을 고민합니다. 인사제도 기획과 노무 전문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 내 갈등을 해결하는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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