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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리더십(2): "위대한 리더는 타고난 자질을 가진다"

가짜 리더십(2): "위대한 리더는 타고난 자질을 가진다"

리더십은 개인의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 속에서 누구나 발휘할 수 있다
진영
김진영Jul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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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가짜 리더십(1): “리더십은 모두 리더에 관한 것이다”

'위대한 리더의 자질 다섯 가지', '성공하는 CEO의 10가지 습관', '카리스마 리더의 핵심 역량' - 이런 제목들은 리더십 교육과 도서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서점 경영 코너를 둘러보면 ‘리더는 이런 자질을 가져야 한다’는 처방전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이런 '완벽한 자질'을 갖춘 리더를 찾기도, 키우기도 어렵다는 것이 조직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최근 한 글로벌 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이 필자에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찾는 이상적인 리더의 조건을 나열해보니 15개가 넘더라고요. 전략적 사고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팀워크, 혁신성, 추진력, 겸손함... 그런데 이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요?”

바로 여기에 현대 리더십의 두 번째 함정이 있다. 우리는 리더십을 마치 슈퍼히어로의 능력처럼 여기며, 완벽한 자질을 갖춘 개인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리더십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

리더십 로맨스: 완벽한 영웅을 꿈꾸는 환상

1985년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마인들(James Meindl)과 그의 동료들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조직의 성공과 실패를 설명할 때, 복잡한 시장 상황이나 기술 변화, 팀워크 같은 요인보다 리더 개인의 능력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리더십의 로맨스(Romance of Leadership)"라고 명명했다.

마치 로맨스 소설에서 완벽한 남주인공을 그리듯, 우리는 리더를 이상화하고 신비화한다. 조직이 잘되면 ‘CEO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고, 안 되면 ‘리더의 역량 부족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해석한다. 하지만 실제 조직 성과는 시장 환경, 기술 변화, 경쟁사 동향, 내부 시스템, 구성원의 역량 등 수십 가지 변수들의 복합적 결과다.

이런 로맨스적 사고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현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이 스타 CEO 영입에 수십억 원을 쏟아붓고, 조직의 모든 문제를 새로운 리더 한 명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현상이 바로 이 로맨스의 산물이다.

MBA 문화가 만들어낸 리더십 상품화

현대적 자질론이 확산된 데는 1980년대 이후 급속히 성장한 MBA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경영대학원들은 리더십을 하나의 '상품'으로 포장했다. "우리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 뒤에는 ‘리더십은 배울 수 있는 기술의 집합’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물론, 리더십은 일정 정도 개발될 수 있다는 주장이 다수설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리더십이 더욱 개인화되었다는 점이다. MBA 커리큘럼은 주로 개인의 분석 능력, 의사결정 기법, 프레젠테이션 스킬에 초점을 맞췄다. 리더십을 마치 골프나 피아노처럼 개인이 연마할 수 있는 기예로 취급한 것이다.

동시에 '셀러브리티 CEO' 현상이 등장했다. 잭 웰치는 20년간 GE를 이끌며 '중성자 잭'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재건하며 기술계의 아이콘이 되었다. 미디어는 이들의 개인적 습관과 철학을 마치 성공의 비밀 레시피인 양 포장했다.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질문했다", "웰치는 모든 회의에서 반드시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 이런 일화들이 마치 그들의 DNA를 복사하면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처럼 포장되어 유포되었다.

리더십 산업 복합체의 허상적 약속

이러한 개인 숭배 문화는 거대한 '리더십 산업 복합체'를 낳았다. 2019년 기준 북미에서만 1,694억 달러가 리더십 훈련에 투자되었다. 연간 10% 성장률을 보이는 이 시장은 "적절한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적합한 코치를 고용하면 누구나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매력적이지만 기만적인 약속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떨까? 조직의 리더십 개발 활동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평가하는 HR 전문가는 겨우 16%에 불과하다.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실제 조직 현장에서 체감하는 리더십 수준 향상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인사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매년 수십억 원을 리더십 교육에 쓰지만, 정작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상사의 리더십'은 항상 하위권이에요.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 같아요."

자질론의 치명적 모순들

그렇다면 실제로 모든 위대한 리더들이 공유하는 특별한 자질이 있을까?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규명하려 노력했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용기, 학습 능력, 비전을 강조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지능, 외향성, 성실성, 정서적 안정성을 제시한다. 어떤 연구는 겸손과 끈기를, 다른 연구는 개방성과 민감성을 핵심으로 본다.

문제는 이런 목록들이 서로 모순되거나 상충한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과감함이 필요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신중함이 더 중요하다.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필요하고, 때로는 겸손한 리더가 더 효과적이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이런 자질들의 실제 예측력이다. 리더십 연구에서 가장 유력한 예측 변수로 여겨지는 지능조차 리더십 효과성 구성의 4% 정도만을 설명할 뿐이다. 99년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CEO들을 추적한 연구에서도 학업 성적과 CEO로서의 성과 사이에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리더의 자질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리더의 성공을 좌우할까? 놀랍게도 리더 개인의 자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요인들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학자 딘 시몬톤(Dean Simonton)이 미국 대통령들을 분석한 연구는 기존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결과를 보여준다. 대통령 평가 분산의 86%는 다음 다섯 가지 요인으로 설명된다:

  1. 재임 기간의 길이

  2. 재임 중 전쟁 기간의 비율

  3. 스캔들의 부재

  4. 암살 당했는지 여부

  5. 전쟁 영웅이었는지 여부

이 중에서 일부나마 대통령 개인의 성격이나 자질과 관련된 것은 마지막 항목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운이나 외부 환경의 영향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죽은 리더가 살아있는 리더보다 더 카리스마 있고 위대하다고 평가받는다는 연구 결과다. 케네디, 링컨, 처칠 같은 인물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더 이상 실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팔로워의 눈에 달린 리더십

이 모든 연구가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다. 리더십의 '질'은 리더 개인의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평가자, 즉 팔로워들의 눈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같은 리더라도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가된다. 보수적인 직원은 안정감 있는 리더를 선호하지만, 혁신을 추구하는 직원에게는 도전적인 리더가 더 매력적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단호한 리더가 필요하지만, 평상시에는 합리적인 리더가 더 효과적이다.

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사례를 보자. 같은 파트너가 한국 지사에서 '소통 부족'으로 비판받았지만, 독일 지사로 옮긴 후에는 '명확한 지시'로 호평받았다. 리더는 같은 사람이었지만, 문화적 맥락이 다르니 평가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맥락을 무시한 자질론의 함정

자질론의 가장 큰 문제는 리더십을 맥락에서 분리된 개인의 고정된 속성으로 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리더십은 항상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공정성'을 예로 들어보자. 누구나 공정한 리더가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공정한가는 상황과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성과급을 똑같이 나눠주는 것이 공정할까,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것이 공정할까? 신입사원에게는 전자가, 고성과자에게는 후자가 공정하게 느껴질 것이다. 더욱이 같은 행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우리 편' 리더가 할 때와 '저쪽 편' 리더가 할 때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르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성공 비결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기존 엘리트들의 '불공정'을 공격하며 자신만의 공정성 기준을 제시한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 진짜 공정한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안타깝지만 최근 우리는 이런 리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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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비즈니스 코치
『위임의 기술』 『팀장으로 산다는 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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