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조직, 다시 돌아온 사람들
logo
Original

무너진 조직, 다시 돌아온 사람들

人事萬史 : 칭기즈칸, 씨족에서 제국으로 ④
리더십리더임원CEO
영준
유영준Sep 20, 2026
912

0. 초원 앞에서

13익 전투에서 패한 뒤 테무진의 행적은 한동안 기록에서 선명하지 않다. 『몽골비사』와 후대 사료를 이어 붙여도 이 시기의 모든 일을 촘촘하게 재구성하기는 어렵다. 훗날의 칭기즈 칸만 알고 보면 계속 승리하며 세력을 넓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과정에는 공백과 후퇴, 동맹의 변화가 반복되었다.

초원의 정치에서 한 번의 패배는 전투 하나를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사와 가축을 잃고 사람들이 다른 지도자에게 이동하면 세력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반대로 다시 사람을 모으고 전리품과 지위를 나눌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패배한 지도자도 돌아올 수 있었다.

테무진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 전투에서 이기는 것’만이 아니었다. 다시 이 사람을 따라도 된다고 사람들이 판단할 이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세력이 커질수록 그 이유는 개인적인 친분만으로 만들 수 없었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새로 들어온 사람도 예측할 수 있는 질서를 보여줘야 했다.

재기는 사람을 다시 모으는 일과 함께 그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일이었다.

1. 우리 회사는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진 회사가 있다. 핵심 거래처 두 곳이 동시에 빠졌고 직원 열두 명 가운데 세 명이 회사를 떠났다. 남은 사람들도 다음 급여가 제대로 나올지 걱정한다. 불안을 눈치챈 대표는 매주 회의를 연다.

“우리는 다시 할 수 있습니다.”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직원들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위기 때 낙관적인 문장보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오래 함께한 영업팀장이 큰 실수를 한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고객에게 대표와 합의하지 않은 조건을 약속했고 손실이 생겼다. 예전의 대표라면 “초창기부터 함께한 사람이니까”라며 조용히 넘어갔을 것이다. 이번에는 다르게 처리했다.


잘못의 크기를 확인하고 다른 직원에게 적용하던 기준과 똑같이 책임범위를 정했다. 대신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한 부분까지 평가에 반영했다. 영업팀장을 공개적으로 망신주지도 않았고 친하다는 이유로 없던 일로 만들지도 않았다. 직원들의 반응이 조금 달라졌다.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적어도 누구에게는 예외가 있고 누구에게는 원칙이 적용되는 회사는 아니구나’라는 신호가 생겼다. 무너진 조직을 다시 세울 때 사람은 대표의 약속보다 다음 행동을 본다. 테무진의 재기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사람을 다시 모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2. 패배 뒤 기록이 흐려지다

13익 전투 이후 테무진이 정확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빈틈이 많다. 이 시기의 연대와 사건배치는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사라지지 않았고 1190년대에 다시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재기의 과정에서 테무진은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케레이트의 토그릴, 곧 훗날 옹 칸으로 불리는 인물과 다시 관계를 강화했고 주변의 더 큰 정치적 흐름을 활용했다.


1196년 무렵 금나라가 타타르 세력을 공격했을 때 토그릴과 테무진도 그 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여러 사료에 나타난다. 타타르는 예수게이의 죽음과 관련된 오랜 원한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이 전쟁은 복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세력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군사적 성과와 정치적 인정, 전리품을 얻을 기회이기도 했다.


실패한 조직이 다시 일어설 때도 비슷하다. 과거에 하던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고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새 시장에 들어가거나 더 큰 파트너와 협력하거나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른 판에서 증명해야 할 때가 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작은 역할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대표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재기는 ‘예전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건에서 다시 자리를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테무진에게 타타르와의 전쟁은 그런 기회 가운데 하나였다.

3. 더 큰 판에 다시 들어가다

테무진은 타타르와의 전쟁을 통해 다시 세력을 키웠다. 금나라와의 관계, 토그릴과의 동맹, 타타르라는 공동의 적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한 방향으로 묶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테무진이 약해졌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초기 조직에서 관계는 완성된 자산이 아니라 필요할 때 다시 작동시켜야 하는 자산이다. 보르테를 구할 때 도움을 받았던 토그릴과의 관계도 이후 여러 번 가까워지고 멀어졌다.


현대 회사에서 네트워크를 명함의 수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정작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는 파트너가 있는지, 새로운 고객을 소개해줄 사람이 있는지, 내가 먼저 도움을 줬던 관계가 실제로 남아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관계는 평소에는 숫자로 잘 보이지 않는다. 위기가 오면 늘어선 명함들이 자산인지 장식인지 드러난다.


그렇다고 오래된 관계에만 기대어 재기할 수도 없다. 과거의 인연은 문을 열어줄 수 있지만 그 문 안에서 다시 성과를 만드는 것은 현재의 능력이다. 그러나 테무진이 다시 커지기 시작하면서 곧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늘어난 뒤의 문제였다.

누구에게 예외를 허용할 것인가. 오래된 사람과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4. 친족과 예외의 문제

주르킨은 테무진과 가까운 혈통의 유력 집단이었다. 『몽골비사』에는 잔치에서 벌어진 충돌과 이후의 군사행동을 거치며 양측 관계가 악화되는 과정이 묘사된다. 테무진이 자리를 비운 사이 주르킨이 그의 진영을 공격하고 약탈했다는 서술도 이어진다.


테무진은 돌아와 주르킨을 공격했고 지도층을 제거한 뒤 그 구성원들을 자신의 세력 안으로 흡수했다.


이 사건을 현대의 공정인사와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 당시의 처벌은 군사적 폭력과 권력투쟁의 방식이었고 패배한 집단의 선택권도 오늘의 조직과 비교하기 어렵다.


다만 같은 혈통이라고 해서 끝없이 예외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읽을 수 있다.


작은 회사에서는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 규칙보다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창업멤버가 법인카드를 조금 자유롭게 써도 넘어가고 대표의 친구인 팀장이 보고를 생략해도 “원래 저 사람은 그래”라고 말한다.


직원이 다섯 명일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직원이 쉰 명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입은 규정대로 결재를 올리는데 오래된 직원은 대표에게 직접 전화해 예외를 받는다. 같은 직급인데 누구는 재택이 되고 누구는 안 된다. 실적이 비슷한데 오래된 사람에게만 더 큰 고객이 배정된다.

직원들은 규정집보다 예외를 먼저 본다.

예외가 반복되면 그것이 실제 규칙이 된다.

대표가 아무리 공정을 말해도 “친하면 다르다”는 경험이 한 번 쌓이면 조직은 공식규정보다 관계를 학습한다.

5. 전리품을 먼저 챙기지 못하게 하다

테무진의 조직이 커지면서 전리품을 다루는 방식도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몽골비사』에는 1202년 무렵 타타르와의 전쟁에서 전투가 끝나기 전에 개인적으로 약탈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부 유력자들이 이를 어기자 가져간 것을 다시 회수하게 했다고 전한다.

전리품은 당시 전사에게 생계이자 보상이었다.

먼저 달려가 가축과 물건을 차지할 수 있다면 힘이 센 집단과 유력자는 계속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반대로 전투에서 역할을 했어도 약탈에 늦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 있다. 당시 전투가 끝난 후의 약탈과 전리품 분배는 힘의 상징이었으며 전쟁을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전리품을 중앙에서 통제하고 다시 나누려는 방식은 지도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개인이 알아서 챙기는 것을 막고 분배권을 중앙에 모으면 칸의 통제력은 커진다. 따라서 이것을 현대의 성과급제도나 공정분배와 같은 것으로 미화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한 가지 변화는 분명하다.

‘먼저 챙기는 사람이 임자’인 상태에서 조직이 정한 방식으로 나누려는 방향이다. 오늘의 HR에서는 이를 절차적 공정성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모두가 같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누가 왜 더 받았는지 설명할 수 있고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직원이 평가결과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

“저 사람은 왜 예외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제도는 빠르게 신뢰를 잃는다.

6. 다시 모으는 것보다 다시 믿게 하는 일

조직이 무너진 뒤 대표는 흔히 사람을 붙잡는 데 집중한다. 연봉을 올리고 직함을 주고 “조금만 버티자”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떠난 원인이 기준의 붕괴라면 보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이 다시 믿게 하려면 작은 사건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친한 사람의 실수도 같은 기준으로 처리하고, 성과를 낸 사람에게 실제 기회를 주며, 대표 자신도 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말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초기 구성원은 “우리가 이 회사 만들 때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그 고생은 가치가 있다. 경력기술서로 측정하기 어려운 암묵적인 지식과 관계, 위기대응 경험이 있다.


문제는 과거의 기여가 미래의 모든 예외를 정당화하기 시작할 때다. 과거에 기여했다는 이유와 지금 이 역할을 가장 잘할 수 있다는 판단은 다르다. 테무진의 재기 과정에서 관계와 규칙은 함께 움직였다. 토그릴 같은 오래된 동맹을 활용했고 새 사람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가까운 친족과 충돌했고 전리품을 둘러싼 통제를 강화했다.


역시나 그가 현대적 ‘공정경영’을 위해 이런 일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권력을 강화하고 군사조직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더 직접적이었다. 그러나 구성원에게는 최소한 하나의 신호가 생겼다. 지도자와 가깝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신호다. 재기의 핵심은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는 데만 있지 않다.

이전보다 더 큰 집단이 같은 기준 아래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위기 뒤에 기준을 다시 세울 때 한 가지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과거의 기여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다. 오래된 사람이 위기 때 회사를 지켰다는 이유로 모든 예외를 허용하면 새 사람은 공정성을 믿기 어렵다. 반대로 회사가 살아났다고 과거의 희생을 아무 의미 없는 일로 취급하면 초기 구성원은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재기의 인사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기여와 현재의 역할을 분리해서 보는 일에 가깝다. 어려운 시절 함께한 사람에게 감사와 보상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다음 팀장과 다음 본부장을 정할 때는 앞으로 필요한 능력을 다시 봐야 한다.


이 구분이 되지 않으면 회사는 두 극단을 오간다. 어느 순간에는 창업멤버에게 모든 특권을 주고, 다음에는 외부 전문가를 데려오며 기존 사람을 낡은 인력처럼 취급한다. 둘 다 조직을 갈라놓는다. 재기는 사람을 다시 모으는 일보다 서로 다른 시간의 공을 공정하게 해석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표 자신도 예외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직원에게 비용규정을 지키라고 하면서 대표만 개인적 판단으로 비용을 쓰고, 보고체계를 만들면서 대표가 수시로 팀장을 건너뛰면 제도는 시작부터 힘을 잃는다. 조직은 리더가 규칙을 어기는 순간보다 그 규칙이 누구에게만 적용되는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7. 다시 우리 회사로

매출이 반 토막 난 그 회사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해보자. 새로운 거래처가 생기고 떠났던 직원 한 명이 돌아오겠다고 연락한다. 대표는 안도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재기는 숫자가 돌아온 순간이 아니다. 회사가 다시 어려워져도 사람들이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초기의 회사는 관계가 규칙을 대신한다. 오래 함께한 사람의 말 한마디가 공식 절차보다 강할 수 있다. 그 관계 덕분에 빠르게 움직이고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성장하려면 그 관계를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 위에 기준을 올려놓아야 한다.

오래된 사람을 무조건 밀어내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경험을 인정하되 그 경험이 영구적인 특권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테무진도 패배 뒤 사람을 다시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친족과 오래된 동료는 여전히 중요했지만 그들만의 조직으로 남지 않기 위해 새로운 통제와 분배의 방식을 만들어갔다.


우리 회사에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도 설명하기 어려운 예외가 허용되고 있을까.


그 예외를 다른 직원에게 공개해도 납득할 수 있을까. 사람은 회사가 어려워서만 떠나지 않는다. 사정이 어려워도 기준을 믿을 수 있으면 남는다. 잘되는 회사에서도 기준이 무너지면 떠난다.


무너진 조직이 다시 일어서는 첫 번째 신호는 매출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씨족에서 제국으로, 칭기즈칸이 된 테무진의 이야기

1편. 고아로 버려진 테무진은 어떻게 자기 사람을 만들었을까
2편. 혈연이 아닌 능력을 택한 리더, 테무진

3편. 테무진과 자무카, 같은 인재를 두고 다른 조직을 만들다



영준
유영준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
일과 사람을 잇는 한량입니다.

댓글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오프피스트 | 대표이사 윤용운
서울특별시 서초구 사임당로8길 13, 4층 402-엘179호(서초동, 제일빌딩)
사업자등록번호: 347-87-03493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25-서울서초-2362호
전화: 02-6339-1015 | 이메일: help@offpiste.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