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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리더십(1): "리더십은 모두 리더에 관한 것이다"
가짜 리더십(2): "위대한 리더는 타고난 자질을 가진다"
가짜 리더십(3): "위대한 리더가 하는 특정한 행동이 있다"
가짜 리더십(4): “우리는 위대한 리더를 동일하게 인식한다”
"축구 명장을 CEO로 영입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출신이 제조업체를 맡게 됐습니다", "스타트업 창업가가 대기업 사장이 됐습니다" -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리더십은 어디서나 통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2019년 국내 한 대기업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글로벌 테크 기업 출신의 신임 CEO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치며 실리콘밸리식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했다. 하지만 1년 후 그는 조용히 사임을 종용 당했다. 무엇이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을까? 바로 리더십에 대한 다섯 번째 착각, '모든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경영진의 믿음 때문이었다.
리더십 만능론의 탄생: MBA와 컨설팅사 합작품
이런 착각은 어디서 왔을까? 1980년대 이후 급성장한 MBA 교육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계 각지의 비즈니스 스쿨들이 거의 동일한 케이스 스터디를 사용하고, 비슷한 리더십 이론을 가르치면서 '글로벌 리더'라는 표준화된 인재상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맥킨지, BCG, 베인 같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이런 표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이들은 전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리더십 베스트 프랙티스'를 만들어냈다. 복잡한 조직 현실을 단순한 프레임워크와 체크리스트로 압축하면서, 리더십을 마치 조립식 가구처럼 어디서나 똑같이 설치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사실 그들의 사업은 비슷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범위’의 경제를 지향한다)
2024년 기준 미국에서만 연간 68억 달러가 리더십 교육에 투자[진김1]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막대한 투자의 상당수가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서 '원사이즈 핏 올(One Size Fits All)' 방식의 획일적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다. 마치 모든 사람이 같은 사이즈의 옷을 입을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리더십 이식의 실패: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2015년 굿올과 포그레브나(Goodall & Pogrebna)의 연구[진김2] 는 인상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리더가 다른 분야로 이동할 때 성공확률은 크게 높지 않다는 것이다. 상당수는 실패한다는 의미다.
또한, Lord & Hall(2005)의 모델[진김3] 에 따르면, 리더십 스킬은 자기 정체성, 경험, 내면화된 지식 구조(예: 원칙 기반 사고)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행동적, 기술적 역량과 달리 다른 사람에게 직접 이전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밝혔다.
업종별 리더십의 근본적 차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업종과 기업마다 리더십의 본질적 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정확성, 안전성, 효율성이 핵심이다. 리더는 표준 프로세스를 준수하고, 위험을 최소화하며, 점진적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반면 IT 업계는 신속성, 혁신성, 적응력이 중요하다. 실패를 용인하고, 실험을 격려하며,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금융업은 또 다르다. 신뢰성, 리스크 관리, 규제 준수가 최우선이다. 리더는 보수적이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리더의 과감함, 창의성, 자원 최적화가 핵심이다.
어느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2020년 국내 한 대기업 그룹에서 계열사 간 임원 순환보직을 실시했다. 건설회사 출신이 IT 계열사로, IT 출신이 화학회사로 이동했다. 같은 그룹 내에서도 1년 반 만에 절반 이상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거나 퇴직했다. 업종의 벽은 그만큼 두꺼웠다.
조직 생애주기와 리더십의 변화
시기적 맥락도 무시할 수 없다. 같은 조직이라도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리더십이 완전히 다르다.
창업 단계는 리더의 비전 제시와 자원 동원 능력이 중요하다.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을 잡고, 사람들을 설득해 따라오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하지만 성숙 단계는 시스템 관리와 효율성 증대가 핵심이다. 감정적 호소보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혁신적 아이디어보다는 안정적 운영이 중요해진다.
실제로 2022년 Tristan J. Fitzgerald의 연구[진김4] 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창업자 CEO는 창업자 CEO는 내부 혁신 중심 전략을, 전문경영인은 외부 성장·재무 안정성 중심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어떤 CEO유형이 더 우월하다’가 아니라 기업의 상황(혁신 vs 안정/확장 필요성)에 따라 최적 선택이 달라진다는 결론을 보였다. 조직 생애주기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적합한 리더십은 차별화돼야 한다는 소리다.
시대별 리더십 패러다임의 변천
더 넓게 보면, 시대별로도 요구되는 리더십이 달라진다. 1950년대에는 권위적 리더십이 효과적이었다. 명확한 위계질서 속에서 지시와 복종의 관계가 성과를 냈다. 1980년대에는 변혁적 리더십이 주목받았다.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이끄는 리더가 각광받았다.
하지만 2020년대의 리더십은 다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공감형 리더십', '회복탄력적 리더십'이 부상했다. 불확실성과 원격근무 환경에서 직원들의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2024년 하버드 비즈니스 퍼블리싱의 글로벌 연구[진김5] 에 따르면, 리더십 개발 전문가의 70%가 "리더들이 현재와 미래의 비즈니스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더 넓은 범위의 리더십 행동을 마스터해야 한다"고 답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HR의 새로운 접근: 맥락적 리더십 개발
그렇다면 HR 담당자와 현업 리더들은 어떻게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 업종별 맞춤형 리더십 모델 개발
첫 번째는 업종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획일적 모델에서 벗어나, 우리 업종과 조직에 최적화된 리더십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독일의 지멘스는 이를 체계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 디지털 팩토리 부문, 헬스케어 부문별로 서로 다른 리더십 역량 모델을 운영한다. 각 부문의 고유한 비즈니스 모델, 고객 특성, 기술적 요구사항을 반영한 차별화된 접근이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가 주목할 만한 사례다. 삼성전자의 사업은 크게 반도체 부문(DS: 메모리, 파운드리 등)과 비반도체 부문(DX: 모바일, 영상디스플레이, 생활가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대부분 B2B이며 후자는 B2C이다. 같은 회사 안에 성격이 다른 사업 부문이 혼재된 상태다. 그래서 DS 부문은 가치체계를 새롭게 제정한바 있다. 결국 필요한 인재상을 별도로 정립하게 됐다. 당연히 필요한 리더상 역시 달라지게 된다.
(2) 조직 진화 단계별 리더십 전환 시스템
두 번째는 조직의 성장 단계에 맞는 리더십 전환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가령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리더십 역시 함께 진화해야 한다.
미국의 세일즈포스는 이를 위해 '리더십 진화 트랙'을 운영한다.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6가지 유형의 리더들에게 새로운 리더십 교육을 제공한다. 각 단계에서 요구되는 리더십 스킬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체계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리더십 전환점 관리'다. 기존에 성공했던 리더십 방식을 의도적으로 '언러닝(Unlearning)'하고, 새로운 방식을 학습하도록 돕는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이다.
(3) 리더십 이식 전 적합성 진단
세 번째는 리더의 외부 영입이나 순환보직 전에 철저한 적합성 진단을 실시하는 것이다. 단순히 과거 성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 가능성을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일부 국내 공공기관은 ‘인바스켓' 방식을 적용했다. 후보자를 가상의 상황에 노출시키고, 기존과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의사결정하고 행동하는지를 관찰한다. 특히 자신이 익숙한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국내 한 중견기업은 더 간단한 방법을 사용한다. 임원 후보자에게 "당신이 가장 성공했던 리더십 경험이 우리 조직에서는 왜 실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성공 경험을 객관화하고, 맥락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조직 학습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한 학습이다. 리더십 이식 실패 사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어느 글로벌 기업은 매년 '리더십 개발 보고서'를 발간한다. 내용 중 일부는 리더십 이식을 다룬다. 여기서 다른 업종이나 지역에서 온 리더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솔직하게 분석하고, 향후 영입 정책에 반영한다. 특히 '성공 편향'을 경계한다. 성공한 사례만 강조하고 실패 사례는 감추려는 조직적 편향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리더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맥락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 전환이 진정한 학습을 가능하게 만든다.
결론: 다양성이 경쟁력이다
"모든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믿음은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할 위험한 착각이다. 이런 사고는 리더십을 평면화하고, 조직의 고유성을 무시하며, 결과적으로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실제 연구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명확하다. 리더십은 업종, 조직,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고도로 맥락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만능 도구가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만 효과를 발휘하는 전문화된 능력이다.
HR 담당자와 현업 리더들의 진정한 과제는 '모든 곳에서 통하는 완벽한 리더십'을 찾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조직의 고유한 특성과 요구사항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최적화된 리더십을 개발하며, 획일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리더십의 미래는 '원사이즈 핏 올'이 아니라 '컨텍스트 핏(Context Fit)'에 달려 있다. 다양성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리더십 만능론의 환상에서 벗어나 맥락적 지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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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리더십(1): "리더십은 모두 리더에 관한 것이다"
가짜 리더십(2): "위대한 리더는 타고난 자질을 가진다"
가짜 리더십(3): "위대한 리더가 하는 특정한 행동이 있다"
가짜 리더십(4): “우리는 위대한 리더를 동일하게 인식한다”
[진김1]https://www.expertmarketresearch.com/reports/united-states-leadership-development-program-market
[진김2]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1048984314000794?via%3Dihub
[진김3]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1048984305000652?via%3Dihub
[진김4]https://acfr.aut.ac.nz/__data/assets/pdf_file/0003/690258/Fitzgerald_Til-Death-Do-Us-Part-Relative-Merits-of-Founder-CEOs_July-2022.pdf
[진김5]https://www.harvardbusiness.org/insight/2024-global-leadership-development-study/